사적 익산 제석사지

2021. 12. 19. 06:36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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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익산 제석사지 (益山 帝釋寺址)]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절이 모조리 불에 탔을 때 탑 아래 넣어 두었던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과 불사리만은 보존되어 다시 절을 지은 후 보관하였다고 한다. 탑터로 생각되는 지역에서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주목되는 점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고 전하는 왕궁평 성안의 석탑에서 발견한 유물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몇 안되는 백제 절터로서 문헌기록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폐허가 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 무왕대의 왕궁평 유적과의 관련성,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영문 설명]

This is a place where King Mu of the Baekje Dynasty built a Buddhist temple worshipping the sculpture of Indra, Guardian of the Buddhist Law, near the palace after moving the capital of his dynasty to Wanggungpyeong.

According to records, the temple was burnt to the ground due to lightning in 639, the 4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 The Diamond Sutra, a Buddhist scripture engraved on copper plates, and the bones of Buddha -- both of which placed under a stone pagoda -- were safe. After the fire, the temple was rebuilt, and the Diamond Sutra and the bones of Buddha were placed in a safe place again. The name of the temple was brought to the fore after a broken roof tile with the phrase “Jeseoksa” written on it was found in the area believed to have been the site of the temple. This temple site has attracted attention because the artifacts excavated from the site are very similar to those found in 1965 from the pagoda in the fortress in Wanggungpyeong, believed to be the palace of King Mu during the Baekje Dynasty.

The temple site contains very important historic remains that are helpful for research on the history of the Baekje Dynasty in several aspects: first, it is one of the few temple sites of the Baekje Dynasty; second, the dates when it was built and destroyed are clear; third, it is obviously related to the palace site in Wanggungpyeong built by King Mu; fourth, a concave roof-end tile was found from the site for the first time among the remains from the Baekje Dynasty.

출처:문화재청


목탑터(목탑터는 중문터에서 약 18.5m 떨어져 있고, 중문터 중심과의 거리는 약 37m이다. 목탑터의 중심에는 길이 182cm, 너비 175cm, 두께 76cm 심초석이 2조각으로 깨진채로 놓여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길이 60cm, 깊이 16cm인 사리공이 뚤려 있다. 목탑은 하층기단의 길이가 21.2m인 이중 기단구조였던 갓으로 보이며, 기단 안쪽에는 한변의 길이가 11.2m인 불단으로 추정되는 단이 설치되어 있다. 목탑의 기초는 약 3m 높이로 정교하게 구분하여 판축해 만들어져 있다. 사방 각 면의 중앙부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지하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작업통로가 네 모서리에서 확인된다.)


목탑터 심초석(목탑터의 중심에는 길이 182cm, 너비 175cm, 두께 76cm 심초석이 2조각으로 깨진채로 놓여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 길이 60cm, 깊이 16cm인 사리공이 뚤려 있다.)


목탑터에서 바라본 금당터(금당터는 목탑터에서 약 17m 떨어져 있고, 목탑터 중심과의 거리는 약 41m이다. 기단은 길이 약 30m, 너비 21m의 상층기단과 길이 약 32m, 너비 23m의 하층기단으로 이루어진 이중기단 구조를 하고 있다. 기초는 적갈색의 사질 점토와 황색 마사토로 정교하게 판축하여 만들어져 있다. 길이가 약 5m, 너비가 약 3m인 계단 시설의 흔적이 앞.뒷면의 중앙 2군데에 있다. 제석사지 금당터는 백제 시대 금당 중에서 규모가 큰 편이고, 가로와 세로의 평면 비율은 1:0.74로 부여 금강사지의 중창금당과 비슷하다. 금당터에서는 인동당초문 암막새기 전형적인 백제 시대 인동 자엽의 수막새와 함께 온전한 형태로 여러 점 출토되어 관심을 받고 있다.)


금당터에서 바라본 강당터(강당터는 금당터에서 약 26m 떵어져 있고, 금당터 중심과의 거리는 약 47m이다. 기단은 길이 약 52m, 너비 약 18m의 단층기단으로 추정된다. 또한 계단은 앞.뒷면과 왼쪽 중앙 3군데에 확인되며 오른쪽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뒷면 중앙 계단의 규모는 길이 약 150cm, 너비 88cm이다. 강당터는 규모나 구조에서 익산 미륵사지의 강당터와 비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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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제석사지 출토 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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