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2022. 1. 8. 08:34바롱이의 쪽지/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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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 (醴泉 開心寺址 五層石塔)]

고려 전기에 창건된 개심사에 있던 탑이었으나, 절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현재는 논 한가운데에 서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4면마다 둥근 테두리 선을 새기고 그 안에 머리는 짐승, 몸은 사람인 12지신상(十二支神像)을 차례로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면을 나눈 다음 그 안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겨 놓았다. 팔부중상은 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에 걸쳐 석탑의 기단에 많이 나타난다.

기단의 맨 윗돌은 그 윗면에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무늬의 괴임돌을 놓았는데, 이것은 고려시대 석탑양식의 한 특징이다. 사리나 법경을 봉안하는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에는 문고리 모양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 인왕상(仁王像)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모두 4단씩의 받침을 깎아두었으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어 탑 전체에 경쾌함을 실어 준다.

기단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세워진 탑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매우 온화하여 좋은 비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탑이다.

[영문 설명]

This five-story stone pagoda, standing in the middle of a rice field, was originally erected at the long-since-disappeared Gaesimsa Temple during the early days of the Goryeo Dynasty.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on the stylobate, the pagoda was built in 1010 (the first year of the reign of King Hyeonjong of Goryeo).

The pagoda is composed of a five-story main body and a two-story stylobate. The bottom tier of the stylobate is engraved with round frame lines on each of its four sides, on which images of the twelve animals of the Chinese zodiac, composed of animal heads and human bodies, are carved in order. Each of the four facets of the upper layer is divided into two spaces, and each space is decorated with one of the Palbujungsang, i.e. the eight guardian deities of Buddhist law who frequently appeared on the stylobates of stone pagodas of the Unified Silla and Goryeo Periods.  

The pagoda retains a characteristic feature from the Goryeo Dynasty whereby a prop with lotus flower patterns is engraved on the surface of the upper layer of the stylobate. The main body of the pagoda, which generally enshrines a sarira or Buddhist scriptures, consists of one piece of stone topped with a roof stone. The middle of the core stone of the first story is engraved with a door handle design, flanked on both sides by an image of a Buddhist Guardian called an Inwang. The roof stone has a four-tier cornice and curves slightly upward around the four corners, giving the pagoda an airy appearance.

출처:문화재청


2019년 첫 답사 시 개심사지 발굴 중으로 파란 천들이 바닥에 깔려있다. 발굴지 옆 좌측 흙더미 안쪽에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이 눈으로 보이지 않아 주변 현지 어르신들에게 위치를 여쭤봐 찾아갔다.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2019년)"

논 가운데 석탑을 향해 난 길을 따라 다가갈수록 보물 제53호인 개심사터 오층석탑의 진면모는 뚜렷해진다. 4.3m의 키로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정연한 비례와 알맞은 상승감을 지니고 있는 이 탑은, 상하 기단부와 1층 몸돌에 베풀어진 조각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탑의 중심이 되는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자물쇠가 꼭 채워진 문 모양의 새김 양옆에 칼을 거머쥔 인왕 두 분이 새겨져 있다. 탑에 봉안한 사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뿍 실은 인왕상이지만 그저 앙증맞을 따름이다. 그 아래쪽 상층기단 면석에는 탱주를 사이에 두고 한 면에 두 분씩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다. 다시 그 아래쪽인 하층기단에는 한 면에 안상이 셋씩 나 있고 그 안상 안에 십이지신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이처럼 탑에 장엄하는 조상을 새기는 것은 9세기 이래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대개 면이 넷일 때는 사천왕을 새기지만, 면석이 좀 커질 때에는 팔부신중을 새기기도 한다. 그러나 하층기단에 이처럼 십이지신상을 새긴 예는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개심사터 오층석탑의 십이지신상은 그중 상이 매우 또렷하게 남아 있는 편이다. 하층기단이 땅속에 파묻혀 있었기에 조각이 손상되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었다. 팔부신중이 지물이나 무기를 든 무관 복장을 한 데에 견주어 십이지신상은 문관 복장을 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십이지신상들이 모두 좌상인 것은 면이 가로로 길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12지의 방위에 따라 북쪽면의 서쪽에서부터 차례로 자—축—인(子—丑—寅), 동쪽면에 묘—진—사(卯—辰—巳), 남쪽면에 오—미—신(午—未—申), 서쪽면에 유—술—해(酉—戌—亥)의 상이 새겨져 있다. 조각은 비교적 얕은 돋을새김이어서 탑 자체의 느낌이 어딘지 빈약해 보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2019년)"


1층 몸돌 인왕상(탑의 중심이 되는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자물쇠가 꼭 채워진 문 모양의 새김 양옆에 칼을 거머쥔 인왕 두 분이 새겨져 있다. 탑에 봉안한 사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뿍 실은 인왕상이지만 그저 앙증맞을 따름이다. -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상층기단 팔부신중상"


"하층기단 십이지신상"


"보물 예천 개심사지 오층석탑(2020년)"


1층 몸돌의 남쪽면 인왕상과 자물쇠(탑의 중심이 되는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자물쇠가 꼭 채워진 문 모양의 새김 양옆에 칼을 거머쥔 인왕 두 분이 새겨져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상층기단 팔부신중상(팔부신중 모두 지물이나 무기를 든 무관 복장을 하고 있지만 신체의 비례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 같다. 신중상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탑에 장엄하는 조상을 새기는 것은 9세기 이래로 나타나는 경향이다. 대개 면이 넷일 때는 사천왕을 새기지만, 면석이 좀 커질 때에는 팔부신중을 새기기도 한다. 

상층기단의 팔부신중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얕은 음각으로 글씨가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이 개심사터 오층석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 탑을 건립한 연대와 건립주체에 관한 글이 상층기단 면석과 갑석의 아랫면을 빙 둘러가며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갑석의 아랫면이어서 비바람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글씨들이 꽤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어 140자 대부분을 판독해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이 탑은 고려 현종 1년(1010) 2월 1일에 돌을 깎기 시작해서, 3월 3일에 광군(光軍) 46대, 수레 18, 소 1천을 들였고, 승려와 속인 1만 인이 힘을 모아 세운 것이다. 이 탑의 건립에는 공사 총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동량’(棟梁)이 예천의 호장인 임씨로 적혀 있으며, 그를 포함하여 미륵향도(彌勒香徒) 36인, 추향도(椎香徒) 50인이 주요 희사자였다고 되어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공사는 다음해인 1011년 사월 초파일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지방의 유력한 가문과 지방민의 경제력과 정치력이 총집중된 탑이 아닐까 한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하층기단 십이지신상(탑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지는 예는 흔치 않아 더욱 소중한 탑이다. 상층기단의 팔부신중이 무관 복장을 한 데 견주어 십이지신상은 문관 복장을 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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