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백제군사박물관

2022. 1. 29. 07:32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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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군사박물관]

백제군사박물관은 지금으로부터 1,340여년전 백제시대 충절을 상징하는 계백장군이 신라군 5만여명이 사비도성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결사대 5천명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 장열하게 전사하신 충혼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위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하셨던 계백장군의 묘소와, 영정을 모신 충장사, 백제시대의 유물과 군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더불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연학습공원과 호수공원을 비롯한 테마공원, 그리고 국궁과 승마 등 다양한 문화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출처:백제군사박물관


"칠지도와 백제군 모형도"


"결의도, 계백과 관창, 황산벌 전투"


 "황산벌전투 모형도"


황산루(2009년 10월 계백장군유적지 전망공원에 건립된 황산루(연면적51.84㎡, 높이 8.75m)는 계백장군의 최후 격전지인 황산벌과 논산시를 대표하는 "황산"이란 글자를 따서 황산루란 명칭을 붙이게 되었다. 황산루에서는 유적지 및 박물관과 탑정저수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출처:백제군사박물관)


[충청남도 기념물 계백장군유적전승지 (階伯將軍遺蹟傳承地)]

성충(成忠), 흥수(興首)와 더불어 백제의 3충신으로 꼽히는 백제 말기의 명장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계백 장군은 의자왕 20년(660)에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현과 백강으로 진격해오자, 5천여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신라 김유신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웠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는 가족들이 적의 노비가 되는 부끄러움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부인과 자식을 죽이고 떠났다고 한다.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용맹스러운 활약으로 4번의 싸움에서 이겼으나, 수적인 열세로 말미암아 마침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곳을 계백 장군의 무덤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옛 문헌에서 계백의 목이 잘렸다고 전하는 ‘수락산’과 계백의 시신을 급히 거두어 가매장했다는 ‘가장곡’이 바로 이곳이라는 점과 계백 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곡서원이 바로 뒷편에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무덤지역의 동남쪽이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황산벌이라는 점도 있다.

원래 무덤 일원은 돌덧널(석곽)이 노출된 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출처:문화재청


홍살문과 충장사(백제(百濟)말 위기에 처한 조국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5천 결사대 와 함께 황산벌에서 신라군(新蘿軍)과 싸우다 전사한 충절(忠節)의 표상(表象)이신 백제 충신(忠臣) 계백장군(階伯將軍)의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며, 위패에는 백제충신계백장군(百濟忠臣階伯將軍)이라고 적혀 있고 충장사에 안치된 영정은 문화재청에 등록된 계백장군의 유일한 표준영정이다.

또한 충장사는 출입구와 사당에 이르는 길이 각각 세개의 문과 길로 되어있는데 이는 삼문삼도(三門三道)라 하여 궁궐(宮闕)이나 종묘(宗廟) 사원(寺院) 등의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다. 출처:백제군사박물관)


"위패, 계백장군 영정"


계백장군 묘소에서 충장사 쪽으로 고개 숙여 배향하는 듯한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계백장군상과 탑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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