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옥녀봉

2022. 2. 5. 07:32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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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옥녀봉]

선녀들도 반할만큼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강경 제일의 조망을 지니고 있고, 남쪽으로는 강경 읍내, 북쪽으로는 금강 물줄기가 보인다.

유순한 금강이 흐르고, 아담한 옥녀봉과 채운산이 알맞은 거리를 두고 마주한 사이에 올망졸망 읍내가 보이는 강경!

「택리지」저자 이중환은 일찍이 강경의 풍물과 경치에 빠져 이곳에 살면서「택리지」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달 밝은 보름날 하늘나라 선녀들이 이 산마루에 내려와 경치의 아름다움을 즐겼고 맑은 강물에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강경에 가거든 젓갈시장을 들러 보고 꼭 옥녀봉에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부여에서 유순하게 내려오던 금강이 옥녀봉을 밀어내지 못하고 물줄기가 꺾이어 서해로 나간다. 옥녀봉 정자에서 바라보면 사방이 거칠 것이 없이 훤하다. 논산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부여, 익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논산 11경중 7경이라고 하나 풍류와 멋을 아는 사람은 이곳을 주저없이 1경으로 꼽는 이가 많다. 평야와 강이 조화를 이루고 저멀리 산이 배경처럼 서 있어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는 강경읍내와 멀리 논산시내, 드넓게 펼쳐진 논산평야와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출처:논산시청


황산대교(1987년 6월 개통), 갈대밭과 금강 하류 전경


"황산나루터, 강경젓갈축제장, 옥녀봉"


[구 강경침례교회 최초 예배지]

한국침례교회는 1889년 독립선교사로 한국을 방문한 말콤 펜윅 선교사에 의하여 창립되었다. 그는 1895년에 파울링(E.C. Pauling) 선교사 부부와 함께 서울에 도착하여 선교 거점을 충남 공주와 논산, 부여 등으로 정하고 선교 활동을 착수하였다. 강경침례교회의 역사는 1896년 아울링 선교사 일행이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 성도인 지병석 씨 댁에서 첫 예배를 드리고 선교를 시작하였는데 그 예배처소가 강경읍 북옥리에 위치하고 있음.

출처:논산시청


"강경 전망대서 바라본 옥녀봉 전경"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팔괘정 (八掛亭)]

팔괘정은 조선 인조 4년(1626)에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전하는 정자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추모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기르던 곳이다. 

금강변에 남향으로 세워졌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다. 왼쪽으로 2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꾸몄다. 지붕은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건물 안에는 시를 쓴 현판이 걸려있고, 건물 뒤의 바위에 송시열이 새긴 글자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죽림서원 (竹林書院)]

율곡 이이·우계 성혼·사계 김장생·정암 조광조·퇴계 이황·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이(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인 신사임당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아홉 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였다. 그는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원리를 중시한 이황에 맞대어 경험을 중시했다.

성혼(1535∼1598)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젊어서부터 이이와 학문을 교류하였으며 많은 벼슬자리에 추대되었으나 거절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이 서원은 이이와 성혼을 기리기 위해 인조 4년(1626)에 황산서원이라 하여 세웠다. 후에 김장생을 추가하였으며 현종 6년(1665)에 임금으로부터 ‘죽림’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조광조·이황·송시열의 위패를 추가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1946년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오다가 1965년 사우를 다시 세웠다.

서원의 건물은 출입구인 홍살문과 외삼문을 통하면 동재, 서재, 내삼문, 사우가 있다.

사우의 오른쪽에는 죽림서원의 중건비와 황산서원의 지비를 세워 놓았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묘에 모시고 있는 선현들만 모신 서원으로,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임리정 (臨履亭)]

조선 인조 4년(1626) 사계 김장생(1548∼1631)이 지은 정자로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원래의 이름은 황산정이었으나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과 같이, 얇은 얼음장을 밟는 것과 같이, 자기의 처신과 행동에 항상 신중을 기하라”라는 『시경』의 구절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앞면 3칸의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어 왼쪽 2칸은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뒤쪽으로는 사랑방을 2개 꾸며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하였다. 

임리정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자 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출처:문화재청



"임리정 보호수 수령 320년 팽나무"



"어머니 같은 고향 강경, 전통 새우잡이 통발"


"옥녀봉 사랑의 느티나무 벽화"


"봉수대와 옥녀봉 사랑의 느티나무"


"봉수대와 옥녀봉 사랑의 느티나무"


"옥녀봉에서  바라본 전경(금강, 강경읍)"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의 배경이 된 집(박범신 작가는 "강경은 나의 문학적 자궁이다."라고 고백했다. 아버지 오시는 길 햇빛 같은 길,아버지 가시는 길 눈물 같은 길 - 소설 소금에서...)


서창집 가는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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