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향기, 천년의 사랑을 품은 부여 대조사

2022. 9. 19. 04:56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반응형

"천년의 향기, 천년의 사랑을 품다"

[부여 대조사]

대조사(大鳥寺)는 공주 마곡사(痲谷寺)의 말사(末寺)로서 부여군 남쪽의 임천면을 휘감고 있는 성흥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백제 성왕 5년에 승려 겸익이 5년간에 걸쳐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겸익은 양나라를 거쳐 인도를 다녀온 구법승려(부처의 진리를 구하는 승려)로,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다가 번역하여 백제의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대조사 창건 설화에는 겸익의 이야기가 전한다. 겸익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큰 새로 변해 날아갔다. 겸익이 큰 새를 쫓아 따라가 보니 성흥산 중턱 바위에 앉으므로,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대조사 사적기(寺蹟紀)에는 527년(성왕 5년) 담혜(曇慧)가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부여읍지(扶餘邑誌)에는, 백제불교를 중흥시킨 겸익(謙益)이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기록이 다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6세기 초에 건립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고려 원종 때 장로(長老)인 진전(陳田)에 의해 중창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 ·개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조사는 일반적인 가람 배치처럼 일주문이나 사천왕문, 불이문 등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바로 경내에 이른다. 관음전, 명부전, 산신각, 요사채 등 전각과 삼층석탑이 넓지 않은 언덕 위에 흩어져 있고, 더 높은 언덕 위로 미륵석불과 원통보전이 있다.


"천년의 향기, 천년의 사랑을 품은 대조사"

반응형

"대조사 가는 길"

 

 

떨어진 밤송이(2016년 10월)/좌측은 성흥산성 가는 길이고 우측이 대조사로 가는 길이다.(2022년 9월)


"꽃무릇"


"헌식대, 소전대, 산신각"


"대조사"


[불유정(佛乳井)]

원통보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불유정(佛乳井)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부처님의 젖 샘'이란 말이다. 우물 앞에 쓰인 불유정(佛乳井) 건립기에 의하면, 대조사에 물이 귀해 고생하던 중 충남 예산 성당의 장 끄랭깡 신부님이 물줄기를 찾아주어 감로수가 솟게 되었다고 한다.


"사색에 빠지게 하는 의자"

주변 경치와 원통보전 뒤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바라보며 사색에 젖는다.(2016년 10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대조사석탑 (大鳥寺石塔)]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1975년에 다른 일부를 찾아 다시 세운 것이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탑신의 2·3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단은 각 층마다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지붕돌은 밑면에 받침을 두었는데, 1·2층은 3단, 3층은 2단으로 새겨 불규칙한 모습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가운데에서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위로 들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낮아 안정감을 주고 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문화재청


"원통보전과 대조사 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

원통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보살상은 얼굴이 작고 무릎이 넓어 신체의 비례가 안정감과 균형감이 있으며 상호는 가늘며 반개한 눈, 반듯한 코, 정갈하고 가는 입매, 살짝 올라간 미소를 짓고 있다. 화염문이나 구름문양으로 장식한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계는 가늘고 낮게 뒤로 말려있다. 법의는 배 밑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옷자락으로 장식성이 뛰어나다. 수인은 중품하생인을 결하고 있으며 17세기에 유행하였던 보살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연등, 석조미륵보살입상, 적멸보궁"


"대조사 적멸보궁"


"적멸보궁 내부와 석조미륵보살입상"


"적멸보궁 내부와 석조미륵보살입상"

사진 좌측(2022년 9월)/사진 우측(2016년 10월)


[보물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 Stone Standing Maitreya Bodhisattva of Daejosa Temple, Buyeo]

고려시대에 유행한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의 하나로 논산에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미래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높이가 10m나 되는 거구이다.

머리 위에는 이중의 보개(寶蓋)를 얹은 네모난 관(冠)을 쓰고 있으며 보개의 네 모서리에는 작은 풍경이 달려있다. 관 밑으로는 머리카락이 짧게 내려져 있는데 이와 같은 머리모양은 관촉사 석조미륵보살도 마찬가지이다. 얼굴은 4각형으로 넓적하며, 양쪽 귀와 눈은 크나 코와 입이 작아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양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데 매우 투박한 모습이다. 팔의 윤곽은 몸통에 붙여 옷자락으로 겨우 표현되었고, 손도 간신히 나타냈는데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어 연꽃가지를 잡고 있다. 보살상 앞에는 제사 음식을 차려 놓기 위하여 판판한 돌을 마련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함께 동일한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is one of the large stone Maitreya statues that were once popular during the Goryeo Dynasty. It is matched only by the Standing Maitreya Buddha at the Gwanchoksa Temple (Treasure No. 218) in Nonsan, Chungcheongnam-do. This is a large, 10-meter high statue of a Maitreya Buddha who is believed to be savior of the humanity in the distant future.

The Buddha is wearing a square crown with a doubled canopy. Small bells are hanging on all the four corners of the canopy. Short hair is hanging from the bottom of the crown. The Standing Maitreya Buddha at the Gwanchoksa Temple also has the same hairstyle. The face is square and flat. The ears and eyes are large but the nose and mouth are disproportionately small. The disproportionate facial features have a curious effect, but not as much as the Standing Stone Maitreya Buddha at the Gwanchoksa Temple. One line can be seen on the short neck. The robe covering both the shoulders seems to be very thick and heavy. The outline of the arms is barely expressed in the clothing. The hands are also hard to make out, but the right hand seems to be over the chest while the left hand is holding a lotus flower branch near the stomach. A flat rock is placed in front of the Buddha statue to set sacrificial food on. The Buddha is large, with an exaggerated face.

This statue, along with the Standing Stone Maitreya Buddha at the Gwanchoksa Temple, is regarded as a prominent example of Stone Maitreya Buddha statues of the region.

출처:문화재청


"석조미륵보살입상"


"석조미륵보살입상"


"황금새의 전설을 찾아서"

[부여 대조사와 석조미륵보살입상]

백제시대 대표적인 산성으로 서기 501년에 쌓은 임천 성흥산성 아래에 황금새의 전설을 간직한 대조사와 미륵석불이 있는데 백제성왕 5년부터 5년간에 걸쳐 창건했다는 대조사는 신비스러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백제시대 성흥산 중턱의 커다란 바위아래에 한 노승이 조금만 암자를 짓고 살고있었다. 어느 따뜻한 봄날 노승이 양지바른 곳에서 경건한 마음과 자세로 참선삼매 도중에 그만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한 마리의 커다란 새가 서쪽에서 날아와 신기하게도 황금빛을 발산하면서 현재의 대조사가 있는 곳에 앉아 큰바위를 향해 계속 날개를 저었다. 그러자 햇빛에 반사된 한줄기 광명이 바위에 집중되더니 그곳에서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이후에도 노승은 여러날 동안 같은 시각에 같은 꿈을 꾸게 되어 이를 가림 성주에게 알렸고 성주는 곧바로 성왕에게 보고하였다.

성왕은 사비로 천도할 시기가 왔음을 알고 이곳에 대사찰을 짓도록 하였는데 10년이 걸릴 대규모 사업이었으나 사공을 주야로 투입하여 공사를 서둘렀다.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공사현장에 새가 날아와 울어 주위를 밝혔고 새소리에 사공들은 피곤을 잊고 공사에 매진하여 5년만에 대사찰을 완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절 이름을 황금빛 큰새가 나타났다 하여 대조사(大鳥寺)라 지었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난 큰바위에 석불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온다.

출처:부여군청


"석조미륵보살입상"

사진 좌측(2016년 10월)/사진 우측(2022년 9월)


"석조미륵보살입상 옆 꽃무릇"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