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가 밝혀진 백제 유일한 성, 부여 가림성

2022. 9. 21. 05:20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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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부여 가림성 (扶餘 加林城) Garimseong Fortress, Buyeo]

부여 가림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하여 금강 하류 부근에 쌓은 석성(石城)이다. 산 정상에서는 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며, 백제 동성왕 23년(501)에 위사좌평 백가(苩加)가 쌓았다고 전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성을 쌓은 백가는 동성왕이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것에 앙심을 품고 동성왕을 살해하고 난을 일으켰으나 무녕왕이 왕위에 올라 난을 평정하고 백가를 죽였다고 전한다. 높은 관리인 위사좌평으로 하여금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사실은 이 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성의 형태는 산꼭대기를 빙둘러 쌓은 테뫼식으로,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 안에는 남·서·북문터와 군창터, 우물터 3곳과 돌로 쌓았던 방어시설인 보루가 남아있다. 또한, 백제 부흥운동군의 거점지이기도 한 이곳에는 고려 전기의 장수 유금필이 이곳에 들러 빈민구제를 하였다고 하여 해마다 제사드리는 사당이 있다.

이 성은 백제 때 쌓은 성곽 가운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성이고, 옛 지명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영문 설명]

Garimseong Fortress in Buyeo is known to have been built to protect two successive capitals of Baekje (17 BCE – 660), Ungjinseong and Sabiseong. Located on a site overlooking the entire lower reaches of the Geumgang River, the fortress was completed in 501 under the supervision of a Baekje aristocrat named Baek Ga.

According to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Baek Ga rebelled against King Dongseong (r. 479-501) of Baekje, and slew him. The rebellion was, however, promptly quelled by his successor King Munyeong (r. 501-523).

The fortress contains features of its three main gates along with three wells and other defensive facilities - although they are now nothing but ruins. Its wall, built with stone and earth, was designed to enclose the entire summit. The fortress was also used as the last stronghold of Baekje resistance during the Baekje Restoration Movement (660-663), and contains a shrine built to honor Yu Geum-pil (?-941), a Goryeo general who helped the poor and needy of the area in times of turbulence.

It is an important historical heritage in that its construction date is clearly known along with the old names of the towns scattered around the area.

출처:문화재청

가림성 표지석(임천면과 주변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임천장터 독립만세운동기념비"


"임천면 행정복지센터와 공덕비"


"보호수 수령 320년 임천관아터 소나무"


"Lovely 부여군, 부여 가림성 솔바람길 안내판"


"목은 이색 선생 영당"


"사적 부여 가림성 안내판"

영화, 드라마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충혼사 忠魂祠]

충혼사는 백제 부흥 운동 당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백제의 이름 없는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매년 4월 이곳에서 충혼제를 열어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가림성 오르는 길 나무"


"사적 부여 가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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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부여 가림성"


"가림성 성벽과 천연기념물 느티나무"


"사적 부여 가림성 표지석과 전경"

가림성에서 바라본 전경(강경읍을 비롯한 금강 하류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천연기념물 부여 가림성 느티나무"

부여 10경 성흥산 사랑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깃든 나무로 전해진다.


"우물지"


[임천 유태사 묘 | 林川 庾太師 廟 지정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위 치 : 충남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97번길 167

유태사 묘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고려 개국공신인 태사 충절공 유금필(太師 忠節公 庾黔弼) 장군을 향사하는 사우이다. 부여 가림성(대한민국 사적) 내부에 위치하고 있다.

유금필 장군은 후백제를 정벌하고 태조를 만나러 가는 도중 패잔병의 노략과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는 임천 지역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서기 941년 장군이 죽은 뒤 백성들이 그 공덕을 기리고자 장군당이라는 사당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올려 왔다. 1976년에 장군의 후손들이 부여군의 보조로 옛 장군당을 헐고 바로 옆에 새로 사당을 지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태사유공지묘(太師陳公之廟)'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제사는 매년 음력 3월 18에 지낸다.


"임천 유태사 묘와 비각"


"성흥루, 건물터"


"호리동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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