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우금바위 일원&먹거리

2022. 2. 16. 05:03뚜벅뚜벅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반응형

"백제 최후의 항거 거점"

[명승 부안 우금바위 일원 (扶安 禹金바위 一圓)]

고려시대 이규보, 조선후기 강세황의 기록과 그림 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바위 아래의 많은 수행처(동굴)와 주변의 우금산성, 개암사, 산세와 식생이 어우러진 경관적 가치가 있음

우뚝 솟은 지형 특징으로 변산을 바라보는 경관이 한곳으로 모이는 장소로서의 가치가 있음

출처:문화재청

부안 승가산 개암사와 우금바위


"개암사 2.8km"


"대한민국 식품 죽염 명인 정락현 개암 죽염 공장"


개암 죽염으로 담근 장들이 보관된 장독대 뒤로 우금바위가 보인다.


1~3번 구운 일반 죽염과 9번 구웠다는 자죽염(왼쪽 일반 죽염, 오른쪽 자죽염)


"개암저수지와 우금바위"


"승가산 개암사 일주문"


"개암사 전나무 숲"


"나무와 동자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개암사동종 (開岩寺銅鐘)]

개암사 종각에 보관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 89.0㎝, 입 지름 61.5㎝이다.

종의 윗부분에는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용통이 있다. 어깨부위에는 사각형으로 띠를 둘렀으며, 그 안에 다시 원을 그리고 범자를 새겨 넣었다. 일부는 이 사각형의 구획안에 2행의 한자 명문을 양각하였다.

어깨 아래쪽으로는 4각형 모양의 유곽과 보살입상이 4개씩 교차로 배치되어 있다. 유곽 테두리 안쪽으로 9개의 꽃무늬를 한 유두가 있다. 보살입상은 구름위에 천의를 입고 두 손을 모아 꽃을 받들고 있다. 종 입구는 어깨부위와는 다르게 띠를 두르고 꽃무늬를 새겼다.

종의 아랫부분에는 숙종 15년(1689)에 주조했다는 명문이 있어서, 범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동종아래 새 조형물"


"개암사 응진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개암사응진전16나한상 (開巖寺應眞殿16羅漢像)]

개암사는 전라북도 무안군 상서면에 있는 사찰로, 개암사의 응진전에는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는 16구의 나한상(羅漢像)이 모셔져 있다.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로, 온갖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서 세상 사람들의 공양을 받을 만한 공덕을 갖춘 성자를 뜻한다. 

『발원기』와『사적기』등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 의해 조선 숙종 3년(1677)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6나한이 지닌 단아한 형태와 부드러운 양감 등은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관련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양식적으로도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다.

출처:문화재청


"개암사 지장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청림리석불좌상 (靑林里石佛坐像)]

청림리석불좌상은 일명 청림사(靑林寺) 절터로 불리는 곳에 있었던 불상으로 지금은 개암사 경내로 옮겨져 있다. 이 석불좌상은 원래 목과 몸체 부분이 떨어져 있었는데 근래에 복원하였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와 등부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은 오른손 위에 왼손을 포갠 뒤 양 손의 엄지 손가락을 곧게 펴 맞대고 있다. 모아진 손바닥으로 구슬을 감싸 쥐고 있어서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연석을 받침대로 하고 그 위에 아래로 향한 연꽃잎을 조각한 8각형의 대좌(臺座)를 올려 놓았다. 그 위에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낮은 장구모양의 돌을 올려 놓았으며, 맨 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의 대좌를 올려 놓았는데 현재는 뒤집어져 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부안 개암사 대웅전 (扶安 開岩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Gaeamsa Temple, Buan]

개암사의 연혁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안향토문화지》등에는 백제 무왕 35년(634)에 묘련왕사(妙蓮王師)가 변한의 궁궐을 절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개암사중건사적〉을 보면 고려 숙종조에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는데, 당시 개암사는 황금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청연각, 서쪽에 백옥교, 남쪽에 청허루가 있었으며 경내에는 연못이 있어 못 속에 화죽(花竹)이 서로 반영됨으로써 마치 극락세계와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개암사의 현황은 기록상의 배치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지금은 주불전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에 응향각, 동쪽에 응진전이 있고 도량 아래에는 월성대와 요사가 마당 한쪽에 치우쳐 있다. 

대웅전은 울금바위를 등지고 남향하여 높게 자리하고 있다. 기단은 2중인데 장대석을 5단으로 가지런히 쌓은 상부 기단은 원래의 것이고,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하부 기단은 마당을 낮추며 근래에 만든 것이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으로 추녀 끝에는 활주가 받치고 있다. 1636년(인조 14)에 계호대선사(戒浩大禪師)가 중건한 것이며 1783년(정조 7)과 1913년에 중수가 있었다. 

초석은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기둥간에는 창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주간포를 배치하기 위한 평방을 짜 올렸는데 평방을 통부재로 쓰지 않고 두 개의 부재를 맞대고 촉을 끼워 단일재처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이것은 통부재 보다 목재의 뒤틀림에 대해 보다 효과적이며 이와 같은 방법은 위봉사 보광명전이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포의 짜임과 그 부재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이다. 공포는 모두 내외 3출목 구조로서 전면의 공포는 연꽃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주두는 연꽃잎을 조각한 하엽주두(荷葉柱枓)인데 하엽의 형태가 세 가지이다. 어칸의 주심과 주간포에는 복잡한 형태의 두 가지 하엽주두를 번갈아 사용하였고 귀공포와 인접한 주간포에는 단순한 형태의 하엽주두를 받쳐서 통식(通式)의 직절한 귀주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하였다. 숭림사 보광전과 화암사 극락전에서도 하엽주두를 볼 수 있으나 이 건물처럼 다양하지는 못하다. 

이 주두 위에 살미와 첨차가 중첩되어 짜여진다. 각 제공의 외단은 3제공까지 앙서형이고 보 밑의 4제공은 당초문을 초각하였다. 도리 밑의 초공은 전면에서 봉두를 초각한 반면 후면과 측면에서는 당초문을 새긴 형태로서 그 시기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출목첨차의 모습은 그 유래가 드문 독창적인 형태이다. 줄기와 연화문을 초각한 첨차와 소로의 중첩된 모습은 마치 연꽃이 올라가며 겹겹이 피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화려한 공포는 숭림사 보광전과 정수사 법당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숭림사 보광전은 공포의 세부적 수법과 천장의 구성수법 등 전체적인 기법이 이 건물과 거의 유사한다. 지역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동일목수 또는 같은 계보를 가진 목수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 

정면과는 달리 측면과 배면의 공포는 당시 일반적인 교두형 첨차로 꾸며져 있어 정면성을 중시하는 전통건축의 특성을 볼 수 있다. 창호도 전면만 화려하게 꽃살문을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나 이전에는 정자살문이었다. 인근의 내소사 대웅보전에서 볼 수 있듯이 17~18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이 꽃살창을 많이 사용함에 따라 최근에 바꿔 단 것이다. 

17세기에 중건된 건물들은 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적인 건축술을 바탕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 장식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향은 내부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개암사 대웅전도 마찬가지다. 

대웅전의 내부에는 두 개의 고주를 세워 후불벽을 형성했다. 통례와 같이 측면 평주 보다 고주를 뒤로 물려 배치하고 충량이 대량에 걸치도록 하였다. 그 위에 세 단의 층급천장을 구성함으로써 내부 공간은 실제보다 높게 느껴지는데 이 공간을 용과 봉황으로 가득 꾸미고 있다. 

특히 전면 주간포와 귀포 그리고 두 개의 충량에서 뻗어 나온 9개의 용두는 강렬하게 불단을 장엄하고 있으며, 주간포에는 용두와 어우러져 날개를 활짝 핀 봉황을 배치하고 있다. 

불단에는 석가삼존불을 봉안하였고 상부에는 닫집을 설치했다. 닫집은 정자형의 물림닫집으로 정면 처마 위에 박공면을 가진 특수한 형태이다. 그 속에는 세 마리의 번용(飜龍)이 또아리를 틀고 매달려 있으며 공중에는 구름과 여의주를 장식하였다. 이처럼 이 건물은 안팎을 연꽃, 용, 봉황 등 불교적 상징물로 가득 장식하여 부처님이 주재하는 불국토를 상징하고 있다.

[영문 설명]

The Gaeamsa Temple was built by a Buddhist monk named Myoryeon in 634. The name of Gaeam originates from the story of a war that took place in in B.C. 282. When King Mun of Byeonhan (one of three Han Kingdoms that existed before the Three Kingdoms Period) built a fortress here to protect the kingdom from the other two kingdoms of Jinhan and Mahan, he ordered Generals Wu and Jin to build a palace in the left and right valleys. At the time, the east palace was named Myoam, and the west palace Gaeam. Wongam, a Buddhist monk and State Preceptor of the time, rebuilt the temple here in 1314. The temple went through a couple of repairs since then. 

The Daeungjeon Hall of this temple measures 3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by 3 kan under a gable roof, which is supported by solid and elaborately carved columns. 

There is a large rock named Ulgeumbawi about 500m below the temple. The rock has three caves, and the cave named 'Wonhyobang' has small puddles under it. 

A story has it that there was originally no water but the water gushed out from the ground when one of the most revered Buddhist monks named Wonhyo settled here to lead an ascetic life. The Juryu Fortress in the neighborhood is famous for the historic relics of the Headquarter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Baekje Dynasty.

출처:문화재청


"개암사 대웅전 내부 전경"


"개암사 헌식대 보시"


[전라북도 기념물 우금산성 (禹金山城)]

우금산성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의 뒷산에 있는 돌로 쌓은 산성이다.

우금바위와 개암사 저수지까지의 능선 밑으로 산성을 쌓았는데, 남쪽으로 통한 계곡 입구에 남문을 설치하고, 양쪽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장되어 있다.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적절히 섞어가며, 우금바위에서 그 길이가 남쪽으로 563m, 서쪽으로 675m, 동쪽과 북쪽을 합하여 총 3960m 길이의 성벽을 쌓았다.

백제 의자왕 20년(66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자 복신 장군 등은 일본에 있던 왕자 풍(豊)을 맞아 왕으로 추대하고, 백성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 곳은 복신 장군이 나당연합군의 김유신, 소정방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가 패배한 곳으로, 백제 부흥을 줄기차게 벌였던 백제 최후의 항거 거점이었다. 개암사 대웅전을 감고 도는 듯한 우금산성은 백제 문화를 찾는 역사기행 코스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우금바위"


"우금바위 동굴"


우금바위 우측 동굴 내부에 제단이 보인다. 석간수의 흔적도 남아 있다.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대한민국 명승(전라도)

[대한민국 명승] 명승이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로서 역사적·예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며, 자연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고유성·희귀성·

barongl.tistory.com


[전북 부안 개암골곤드레밥]

부안 개암사 못 미쳐 있다. 곤드레밥정식이 대표음식이며 닭백숙, 닭볶음탕, 옻닭등도 판매한다. 여사장님이 특별한 경우를 빼곤 70명 까지 손님도 혼자 받으신다고 한다. 원래 1인 식사는 안되나 여주인분과 친분이 계신 단골 부부분이 멀리서 왔는데 동석해서 먹으라고 해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곤드레밥 정식(고슬고슬한 밥과 곤드레 나물에 깨가루를 뿌린 비빔용 대접을 개인별로 내준다.

산채나물전, 양념하지 않은 바삭하게 구은 김구이, 쌉사래한 오가피나물무침, 도토리묵, 김치, 해초류, 깻잎, 고춧잎, 조기구이, 더덕무침, 고추장 양념한 마른굴비구이, 명이나물, 비빔밥에 비벼 먹거나 구운 김을 싸먹는 용도의 양념간장, 김가루와 비빔용 나물, 두부, 호박, 버섯, 양파등이 들어간 쿰쿰한 향 강하지 않은 구수한 청국장등 소박하지만 허투르지 않은 반찬들이 한상 차려진다. 식자재에 알맞게 간을 맞춘 여사장님의 손맛이 남다르다. 밑반찬들의 다양한 식감과 풍미로 입안이 풍성해진다.)


곤드레나물밥(곤드레나물을 넣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밑반찬으로 나온 무나물, 고사리, 산채, 콩나물, 김가루를 더하여 고소하고 짭짤한 집간장양념으로 비빈다. 채소와 밥, 집간장 양념이 조화롭게 뒤섞여 풍미를 더한다. 구수한 향과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담박하고 구수한 청국장을 곁들여 먹는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