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보현산 보현사

2022. 5. 2. 05:44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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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보현사 종점 하차"

문화유산 답사와 새해 첫 일출 보러 찿았다. 보현사 버스 종점에 내려 도보로 이동한다. 버스 뒤로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보현성지 보현산 보현사"


"보현사 부도탑"


[보물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 (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碑) Stele for Buddhist Monk Nangwon at Bohyeonsa Temple, Gangneung]

보현사에 남아 있는 낭원대사(834∼930)의 탑비로,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의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낭원’이라는 시호와 '오진’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높은 비좌(碑座:비를 꽂아두는 부분)가 마련되어 있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석탑에서처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을 갖추고, 화염에 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고 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 뒤인 고려 태조 23년(940)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짓고, 서예가인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영문 설명]

This stele was erected for Buddhist monk Nangwon (834-930) in 940 (the 23rd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The stele bears an epigraph about his life and achievements including the reverence of King Gyeongae of the Silla Dynasty, who treated Nangwon with great respect. When Nangwon died at the venerable age of 96, King Taejo granted him the posthumous title of 'Nangwon' and named the stupa 'Ojin'.

Th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main stone, and capstone. The tortoise-shaped pedestal features a dragon's head and clouds and hexagonal designs on its back. The capstone, lavishly engraved with two dragons and a lotus flower, has a finial comprising a bokbal (over-turned bowl), a single-tiered boryun (mast with nine discs), and a boju (magic bead) surrounded by flames.

Erected ten years after the death of Nangwon, the stele bears an inscription composed by Choe Eon-wi and handwritten by Gu Jok-dal, who was regarded as greatest writer and calligrapher of the period.

출처:문화재청


"지장선원에서 본 새해 일출"

멀리 강릉 동해바다의 붉은 기운이 느껴진다.


보현사에서 만난 새해 첫 일출 보시는 남불자분이다. 다음날 평창 월정사에서 먼저 말 걸어 주시며 새해 보현사 처음으로 본 사람이라며 새해 인사를 나눴다.


[강릉 보현산 보현사]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 보현산(普賢山)에 자리한 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서 보현사는 대관령과 선자령 바로 아래에 자리하여 산세가 높은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대웅전·영산전·지장전·삼성각.금강루 등의 전각들이 법식에 맞게 자연과 잘 어울려 있어 산사의 그윽한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처음 세운 사찰로, 후에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지장선원(地藏禪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세운 것으로 3단의 장대석(네모지고 긴 석재로 기단에 가로로길게 놓은 돌) 기단을 설치하고 막돌 덤벙 초석을 기둥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정교하게 그레질 한 후, 둥근 기둥을 세웠다.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다포 양식이며,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경내에는 낭원대사의 사리탑인 낭원대사오진탑(보물 제191호)과 낭원대사오진탑비(보물제192호)가 있어 이 사찰의 역사적 가치를 말해 주고 있다.

출처:강릉시청


 

[강원도 문화재자료 보현사대웅전 (普賢寺大雄殿)]

보현사는 신라 진덕여왕 4년(650)에 자장율사가 세운 절이다. 후에 낭원대사가 고쳐 세웠고 ‘지장선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세운 건물로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에는 흙으로 만든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고, ‘도광 2년(1822)’이라고 쓴 기록이 있는 후불탱화와 ‘가경 4년 기미(1799)’라는 기록이 있는 탱화가 있다.

건물 앞에는 석탑재와 석사자 등 화강암 석재들이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 강릉 보현사 석조아미타삼존불상과 복장유물 (江陵 普賢寺 石造阿彌陀三尊佛坐像과 腹臟遺物)]

이 삼존불은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협시보살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진 아미타 삼존불좌상으로 현재 보현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본존인 아미타불은 연화좌대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오른손은 무릎위에 살짝 걸친 아미타 수인의 변형 수인을 짓고 있으며, 왼손은 아미타 수인을 취하고 있다. 불두는 육계가 불분명한 형태로 나발이 작고 촘촘하며, 정상계주와 중앙계주가 뚜렷한 편으로 17세기 불상형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얼굴은 갸름한 방형이며, 불신의 상체는 위아래가 거의 비슷한 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좌우 협시불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연화대좌 위에 왼 무릎위로 오른발을 올린 결가부좌 형태이다. 얼굴은 아미타불과 같은 방형의 얼굴이며, 직사각형의 상체, 삼각형의 다리, 오른손을 오른 다리에 살짝 걸치고 왼손을 왼 무릎위에서 엄지와 구부린 4손가락의 중지와 맞댄 수인 등 동일한 형태이며, 보관과 2중 착의법만 차이가 있다. 

아미타불의 복장공에서 「康熙三十年辛未五月二十四日佛像願文…」의 조성기가 확인되어 이 불상이 1691년에 제작되었으며, 불상을 옮겼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다른 장소에서 불상이 조성되어 보현사로 이운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가는 길에서 바라본 보현사(전설에 의하면 강릉시 동남쪽인 남항진 해안에 당도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문수사(지금의 한송사터)를 세웠다. 어느 날 보현보살이 “한 절에 두 보살이 있을 수 없으니, 내가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절터로 삼아 떠나겠다”고 하며 시위를 당겼다. 그 화살이 떨어진 곳이 바로 이 보현사터였다고 한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죽은 두더지 새끼 사체"


[보물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 (江陵 普賢寺 朗圓大師塔) Stupa of Buddhist Monk Nangwon at Bohyeonsa Temple, Gangneung]

보현사에 자리하고 있는 낭원대사의 사리탑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무너져있던 것을 사찰입구에 복원해 두었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자리인 산꼭대기 주변으로 옮겼다.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세 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가운데받침돌이 없어져 아래받침돌 위에 바로 윗받침돌이 얹혀있다. 탑신의 몸돌 한쪽 면에는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경사가 급하고,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낭원대사탑비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탑도 이 때 같이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영문 설명]

This octagonal stupa was erected for Nangwon, a famous Buddhist monk of the early Goryeo Dynasty, at Bohyeonsa Temple in Gangneung. It collapsed sometime in the past, and was later restored and relocated at the temple entrance, before being moved to its original site at the foot of Manwolsan Mountain in 1991.

The stylobate supporting the stupa originally consisted of three-layer stones, but now the middle layer is missing and the upper layer is directly placed on the lower layer. One side of the core stone of the main body is engraved with a door and lock design. The roof stone is relatively thick and slants sharply. There are some traces which suggest flower patterns were originally engraved at its eight corners. The top ornament is placed on top of the roof stone.

It is believed that this stupa was erected in 940 (the 23rd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at the same time as the Stele for Buddhist Monk Nangwon (Treasure No. 192).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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