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1. 05:45ㆍ바롱이의 쪽지/강원도
[강원도 문화재자료 고성화암사 (高城禾岩寺)]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화암사(華巖寺)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조선 인조 1년(1623)에 소실되었다가 인조 3년(1625)에 고쳐 짓는 등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고종 1년(1864)에는 지금 있는 자리인 수바위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가 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다시 한 번 불에 타 훗날 법당만 다시 지었다.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 준비를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浮屠群)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출처:문화재청
속초시내에서 3-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델피노 리조트에 하차한다.
"델피노 리조트에서 바라본 설악산 울산바위"
델피노 리조트에서 화암사행 대중교통이 없다. 3.3km 도보로 이동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산화암사"
"화암사 수바위"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
"화암사 부도군"
[초전법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며 삼매에 들어 깨달음의 내용이 매우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때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 번이나 간청하였다.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중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선언하신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 훗라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콘단냐, 마하나마, 바슈파, 아슈바지트, 바디야)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는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아는 체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다가오자 그 위엄과 자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중도와 사성제 팔정도를 내용으로 한 첫 설법을 시작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설법과 대화, 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콘단냐)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수바위와 고성군 금강산 화암사가 암각된 바위"
[고성 금강산 화암사]
신라 혜공왕(서기 769년)때 창건된 사찰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는, 창건 이후 5차례의 화재로 설법전 1동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으나 1991년 제17회 세계잼버리 이 후 널리 알려지면서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수바위가 눈앞에 보이고, 신선봉과 잼버리장, 설악산 울산바위, 콘도미니엄 등이 주변에 밀집되어 있어 돌아볼 곳이 많다. 또한, 사찰내에 전통찻집이 있어 조용한 산사에서 전통차를 즐기는 것도 좋은 듯 하다.
출처:고성군청
"화암사와 수바위"
"감로수와 종각"
"화암사 사리탑"
[보리수와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菩提樹) 아래의 명상 -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은 부처님의 생애를 나타낸 팔상성도의 6번째로 보리수나무 아래에 고요히 선정에 잠긴 수행의 모습입니다.
부처님은 기원전 544년경 인도 카필라 사캬(Kapila Sakya)족의 왕자(싯다르타)로 태어나 29세에 출가하였고, 그 당시 많은 수행자 처럼 극도의 고행으로 “위 없는 깨달음” 을 얻으려 육체적 고통을 가하였다. 그러나 6년 동안 고행이 최상의 깨달음이 아님을 알고, 싯다르타는 삡팔라(Pippala) 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었다. 이 나무는 훗날 보리수(菩提樹)라고 불리게 된다.
그 나무 아래에 반듯하게 앉아 욕망과 고행의 양극단을 떠나 중도 수행으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깊은 선정에 들면서 맹세하였다.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 져도 좋다.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갖은 마라(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평온한 마음으로 깊은 명상에 들었다. 이렇게 해서 칠 일째 되는 날, 동쪽의 새벽녘 샛별을 보고 마침 내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 버릴 "아뇩다라 삼막삼보리,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었다.
이때 싯다르타 왕자 나이 35세, 음력 12월 8일이며, 이 세상의 위대한 부처님이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49일 동안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삼매의 완전한 기쁨을 누렸다. 우리 모두 수하항마상의 석가모니 부처님께 참배 드리고, 수행 정진하여 성불합시다.
[수바위]
신라36대 혜공왕 5년 진표율사가 769년에 창건한 화암사 남쪽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수바위는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하여 왔다.
계란모양의 바탕위에 왕관모양의 또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윗면에는 길이가 1미터, 둘레 5미터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 자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수바위의 전설을 보면 화암사는 민가와 달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 절에 사는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없이 편안하게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객승 한 사람이 찾아와 이 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탓에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수바위"
"미륵불상"
"미륵불상에서 바라본 전경"
화암산 신선대 가는 길, 계곡 얼음 밑으로 맑은 물소리가 들린다.
[신선대.성인대]
아주 먼 옛날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일명 신선대 성인바위는 앞으로 올 어진 이가 탈 ‘말바위' 를 거쳐 토성면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성황산에서 맥의 끝을 맺었다.
아주 먼 옛날 '조' 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모닥불을 피우고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 모닥불에 굽고 있던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다 집어넣었고 이에 호랑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뒹굴다 돌만 뱉어 버리고 죽으니 뱉어 버린 돌의 흔적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훗날 죽은 호랑이는 토성면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 하는 성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바위를 자세히 보면 거북이를 닮았는데 거북 머리 부분이 미시령(해발825m)도로 쪽을 향해 지금도 기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바위 주변에는 성인이 서있는 모습의 입석과 머리바위가 있어 세인들에게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신선대.성인대"
"신선대에서 바라본 경관"
"성인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신선대와 수바위"
"성인대에서 바라본 미시령"
[시루떡바위]
이 산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금강산 화암사 에서 부터 수바위 전설에 이르기 까지 쌀(米)과 연관이 깊은 것을 알 수 있다.
여기 누군가가 정성을 들여 겹겹이 쌓아 올린 듯한 무명의 바위 또한 이러한 배경을 모르더라도 시루떡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모양이 닮아있어 예전에는 이 바에 대한 전설이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성 화암사 란야원과 수바위"
"좋은 글귀"
대추탕(수바위가 바라 보이는 자리에 앉아 따뜻한 대추탕을 마신다. 대추속이 풀어져 있고 잣, 건대추가 고명으로 얹어 있다. 달금한 맛과 진한 대추향이 그윽하다. 수바위의 경치는 덤이다.)
대추탕과 곶감(양양 장날에 산 곶감을 곁들여 먹는다. 검게 말려진 감에 하얀 분이 흥건하게 묻어 있다. 살때 분홍빛 감 껍질도 같이 주셨다. 한 입 베어 문다. 속은 검붉은 빛을 띤다. 쫀득하고 졸깃한 과육의 질감에 기분 좋은 단맛이 입안을 흔쾌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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