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영월 사자산 법흥사

2022. 9. 14. 05:14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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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사자산 법흥사]

사자산 법흥사는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 위해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로 창건했다.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열었고,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이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영월 법흥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곳이다. 영월 법흥사 석분, 영월 법흥사 부도, 흥녕사 징효대사보인탑비, 징효국사 부도 등의 다양한 문화재를 함께 볼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겨주는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절이다.

출처:영월군청


"영월 사자산 법흥사 일주문"

구산산문흥녕선원


"감로수와 스님"


"보호수 수령 200년 법흥사 밤나무"

밤나무와 보물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영월징효국사부도


[보물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Stele for Buddhist Monk Jinghyo at Heungnyeongsa Temple Site, Yeongwol]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석비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그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에 가깝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톱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눈에 띈다. 반구형(半球形)에 가까운 등은 길쭉한 6각무늬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에는 네 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해 마주보고 있다. 눈, 코, 입은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몸에 표현된 비늘은 약하게 새겨져 형식에 그치고 있다.

비문에는 징효의 출생에서부터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비문에 의하면 징효는 19세에 장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75세 되던 효공왕 5년(901)에 입적하였다. 끝부분에는 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지 44년 후인 고려 혜종 원년(944)에 세워진 비로, 글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썼으며 최오규가 비에 새겼다.

[영문 설명]

This stone stele, erected to wish for the prosperity of Heungnyeongsa Temple and honor the life and work of the Buddhist monk Jinghyo, is preserved in a nearly intact condition.

The stele rests on a tortoise-shaped base and is topped by a head stone with sculpted dragon heads. The tortoise at the base has a head that is similar to a dragon’s head and holds a cintamani in its half-open mouth. The paws and claws, sculpted highly realistically, are quite striking. The surface of the tortoise shell, close to a hemisphere in shape, is filled with long hexagonal patterns. There is a rectangular-shaped hole in the middle for fitting in the stele. The head stone features four dragons with their heads turned toward the center in a manner to face each other. Unlike the eyes, snout and mouth that are realistic and detailed, the scale on the body of the dragons is cursorily rendered, in shallow carving. The epigraph recounts the life story of Jinghyo, from birth to death.

According to the epigraph, Jinghyo entered the priesthood at the age of nineteen, in Janggoksa Temple and died in 901 (the 5th year of King Hyogong’s reign). The epigraph ends with praises on his lifetime achievements.

The stele was erected in 944 (the 1st year of King Hyejong’s reign of Goryeo), forty-four years after Jinhyo’s passing. The epigraph was composed by Choe Eon-wi, calligraphed by Choe Yun and carved by Choe O-gyu.

출처: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징효국사부도 (寧越澄曉國師浮屠)]

통일신라의 승려인 징효국사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징효국사는 19세에 탁월한 총명으로 수행을 시작하여 효공왕 4년(901)에 75세로 입적하였다.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였으며 경문왕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부도는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아래받침돌에는 각 면에 안상(眼象)을 1구씩 얕게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각 면마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둥근 윗받침돌은 연꽃무늬를 둘러놓았다. 탑신의 몸돌은 아래윗변의 모서리를 약간 죽인 듯 처리하였는데, 앞 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안에 자물통 모양을 표현해 놓았다. 지붕돌에는 급한 경사가 흐르고,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이 높게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지붕을 축소한 듯한 장식 위로, 공모양의 장식이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으나, 두꺼운 지붕돌표현, 지붕돌의 높은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Y자 소나무 줄기 사이에 핀 어린 솔"


"적멸보궁 가는 길 전나무 숲"


"법흥사 적멸보궁 가는 길 감로수"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보궁 안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것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사리탑이 건물 뒤쪽 언덕에 있기 때문이다. 

츨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법흥사 석분 (寧越 法興寺 石墳)]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석분이다.

바깥부분은 낮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리 높지 않은 봉토를 이루고 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는 있다.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있어서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법흥사 석분과 법흥사 부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법흥사 부도 (寧越 法興寺 浮屠)]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 지지 않았다.

형태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神將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다. 꼭대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법흥사 석분과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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