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속의 고인돌 여행, 고창 고인돌박물관

2022. 10. 9. 06:24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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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속의 고인돌 여행"

[고창 고인돌박물관]

우리나라에는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고, 그 중에서 고창에는 약 2,000여 기가 있으며, 고창고인돌유적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도가 높고,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 

고창고인돌유적은 1965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 및 지표조사, 국제학술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여 역사적 고증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994년 12월 문화재로 지정(사적 391호)되었고,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고창고인돌유적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존 전승시켜 후세의 산 교육장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우리군에서는 2004년 12월에 고창고인돌박물관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들어, 2008년 9월 25일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고창고인돌박물관은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기에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감동과 만족을 드릴 것이며, 우리 역사의 바탕이 되었던 선사인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찾아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국내 유일의 고창고인돌박물관이 여러분에게 아득한 시절의 옛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것입니다.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여러분을 모시겠습니다. 편안한 학습과 정신적인 휴식을 드리는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무한한 선사인의 숨결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고창군청


[계산리 고인돌 Gyesan-ri Dolmen 鷄山里支石墓]

이 고인돌은 2003년 농촌 용수 개발 사업을 위해 발굴 조사한 다음 학전리에 이전 복원하였다. 그 후 고창 고인돌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0년 4월에 고인돌박물관으로 이전하였으며, 형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초대형급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무게 90톤, 길이 6.5m, 너비 3.5m, 두께 3.4m)


고창고인돌박물관 입장권 구매시 고창사랑상품권을 준다.


"전시실 안내"


"고인돌과 함께 살아온 그들"


[거석문화의 유산 고인돌 Dolmen, the Heritage of Megalithic Culture]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거석문화유산으로 지석묘(支石墓)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인돌은 주로 무덤으로 사용되었으며, 기념물이나 제단 혹은 고인돌 묘역을 알리는 묘표석의 기능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고인돌은 집단 공동체 생활이 가능해진 청동기시대에 만들 수 있었던 상징적 문화유산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세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당시 사회구조와 문화 등을 파악하는 열쇠가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3만 여기가 분포하고 있어 세계 최대의 분포 양상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고창·화순·강화의 고인돌은 밀집도가 높으면서 다양한 형식을 보이고 있어 고인돌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제C-977호)으로 등재되었다.


"고인돌 운반하는 고창의 선사인"


[움집생활 죽림리 매산마을을 재현한 모습]

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보편화되면서 정착생활이 가능해짐에 따라 더욱 발전된 마을이 나타났다. 움집이 밀집화 되고, 공동생활에 필수적인 취사, 집회, 제사 등의 기능을 수행하던 공터가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주위에는 목책과 환호를 둘러 외부의 침입을대비하였다. 주거생활은 사냥과 고기잡이 등 수렵과 어업활동이 지속되는 동시에 벼를 비롯한 조, 피, 수수가 집중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더욱 다양한 농기구가 만들어지고, 개, 멧돼지 등의 가축을 사육하였다.

고창지역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움집터는 평면형태가 대부분 원형이다. 내부에는 타원형의 작업공과 그 양단부 안팎에 기둥 구멍 2개가 배치되어 있고, 집의 규모는 대체로 직경 5~6m 정도이다. 이 시대 남녀 복식은 주로 가죽이나 천(삼베류)으로 만든 유고(저고리, 바지)차림으로 옷의 색은 황토색, 풀색, 청색, 적색 정도였을 것이다. 저고리의 경우는 왼쪽자락이 밑으로 들어가는 좌임이고,곧은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천의 풀림을 방지하기 위해 둘레에 다른 천을 덧대어 마무리를 하였다. 사냥 시에는 가죽으로 된 조끼형의 옷을 덧입었을 것으로판단된다. 발에 신는 신발은 지배층들은 주로 가죽신을, 일반인들은 주로 초리(짚신류), 사냥 시에는 가죽부츠를 착용했을 것이다. 장신구로는 주로 옥을 사용한 목걸이, 팔찌 등을 착용했을 것이다.


"고인돌 출토 유물 부장 무기류"


"고인돌 출토 유물 부장 토기류"


[농경생활]

고창 고인돌군은 본격적인 논농사가 시작되는 청동기 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논농사의 흔적인 논자리가 확인되며, 잡곡농사를 했던 자리도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농경지는 벼의 집단재배와 더불어 탄화곡물의 분석을 통해 콩류(콩, 팥), 맥류(보리, 밀), 잡곡(조, 기장) 등도 재배되어 오늘날 곡식과 별차이가 없음이 밝혀졌다.

논은 낮은 구릉 사이의 계곡 입구를 주로 이용하였고 네모지게 3~8평 정도의 규모로 구획한 논들과 조그만 농수로 물막이용 보 등도 발견되고 있다. 밭은 강변의 충적대상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으며, 오늘날 밭과 같이 넓은 지역에 고랑과 이랑이 그대로 발견 되고 있다. 곡식을 추수할 때는 돌칼을 사용하여 이삭만 따서 바구니에 담았을 것이며, 돌낫의 등장으로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고 곡식 줄기까지 생활에 이용하게 되었다. 곡물 생산이 많아지면서 껍질을 벗기는데 사용된 갈판과 갈돌 대신에 곡식을 쌓거나 찧는 식량 조리도구인 절구가 나타났다. 절구는 광주 신창동에서 발견된 나무 절구공이로 보아 나무절구로 발달하였을 것이다.

농경문청동기에 나타난 농경모습을 보면 괭이와 따로 밭을 일구고, 바구니를 들고 추수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새와 솟대의 묘사는 기계화되기 이전의 우리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고창고인돌의 분포현황, 형식"


"묘제 양식의 변천"


[다양한 장묘문화]

고인돌의 다양한 장묘문화를 위해 펴묻기(신장), 굽혀묻기(굴장), 다시묻기(세골장, 이차장)에 대한 연출을 보여준다. 펴묻기는 돌널 길이 160cm 이상에 폭이 40~50cm 정도이며, 굽혀묻기는 길이 120cm, 폭이 50cm 안팎이면 가능하다. 이에 반해 다시묻기는 길이가 100cm 이내거나 돌널 너비가 2~30cm로 좁은 경우일 것이다.

펴묻기는 주검(시신)의 얼굴이 하늘을 향하도록 곧게 펴서 묻는 장법으로 간돌검 등 부장품이 발견된 경우가 많다. 굽혀묻기의 모습은 주로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다리를 굽힌 것이 많다. 다시묻기는 주검의 살이 썩으면(대개 3년) 뼈만 추려서 다시 묻는 방법이다. 이외에 사람뼈가 불에 의해 터져있는 상태 즉 화장한 흔적이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고창운곡리 B-3호 고인돌은 무덤의 크기가 가로 110cm, 폭 44cm로 작고, 무덤방의 흙에서 칼슘(인) 성분이 많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뼈만 추려 묻은 것(이차장)으로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고인돌에서의 부장품은 펴묻기에서 많이 발견되며, 굽혀묻기나 다시묻기의 경우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창에서의 고인돌 조사"


"고인돌의 기원, 분포 현황"


"고인돌의 형태와 구조, 기능, 주인공"


"고인돌의 축조 방법과 순서"


"청동기, 초기 철기, 백제 시대의 고창"


"세계문화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문화관광도시 고창"


"고창고인돌유적 전경"


"지석묘와 고인돌박물관"

[지석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지석묘(支石墓)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先史時代)에 속하는 청동기시대(BC4~5세기경)의 무덤형식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고창군에는 2,000여기의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창읍 죽림리 지역에만 각종 형식의 지석묘 447기가 분포되어있어 1994년에 국가지정 문화재(사적 제391호)로 지정되고 2000년 12월 2일에 세계문화유산(977호) 으로 지정 되었다. 이 지석묘는 죽림리 일대의 지석묘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결정된 기념으로 제25회 모양성제(1998.10.28) 날에 강호상공고 재학생 200여명이 지석묘 축조과정(築造過程)을 재현(再現)하면서 만든 것이다.

돌 기증자 :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 안병태


[봉산리 고인돌떼 Dolmens in Bongsan-ri 蜂山里 支石墓群]

봉산리 고인돌은 고창 산업단지 인접마을 진입도로 확·포장공사 부지에서 발굴조사된 것으로, 2기의 고인돌은 2018년 5월 17일~2018년 6월 25일까지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였고 2018년 11월 이곳으로 이전·복원하였다.

봉산리 고인돌떼는 2009년 지표조사를 통해 알려졌으며, 원래 받침돌(지석)이 있는 바둑판식 지석묘로 확인되었으나 현재 받침돌(지석)은 사라진 상태로 2기 모두 윗돌(상석)만 남아있다. 2기의 윗들(상석) 무게는 1.5ton내외이며, 길이 2.0~2.5m, 너비 1.1m, 높이 0.7~1.0m이다.


[금평리 고인돌떼 Dolmens in Geumpyeong-ri 金坪里 支石墓群]

이 고인돌떼는 고창 무장 - 금평간 확포장공사구간내에서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 의해 2013년 8~12월에 발굴조사된 것으로서 2015년 5월에 이 곳으로 이전·복원하였다. 이 곳에는 받침돌(지석]이 있는 바둑판식 2기와 받침돌(지석]이 없는 개석식 1기 등 3기의 고인돌과 돌널무덤[석관묘], 돌덧널무덤[석곽묘] 1기 등 모두 5기가 자리하고 있다.

3기 고인돌의 상석 크기는 무게 4.8~18톤, 길이 2.1~2.7m, 너비 1.6~1.8m, 두께 0.6~1.8m 내외이다.


"모로모로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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