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3대 길지, 구례 운조루 고택

2022. 12. 6. 07:10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반응형

"우리나라 3대 길지"

[국가민속문화재 구례 운조루 고택 (求禮 雲鳥樓 古宅) Unjoru Historic House, Gurye]

 

조선 중기의 집으로 영조 52년(1776)에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지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은 산과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어 ‘금환락지(金環落地)’라 하는 명당자리로 불려왔다. 집의 구성은 총 55칸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는 T자형으로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랑채에는 큰 부엌이 없는데 이곳에는 안채 통로까지 겸한 큰 부엌이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누마루가 있어 전체 살림을 한눈에 관찰하도록 되어있어 특이하다.

 

안채는 사랑채의 오른쪽에 있는 건물로 사랑채에 비해 규모가 매우 크며 평면이 트인 'ㅁ'자형이다. 중심부분은 대청이며, 좌우로는 큰방과 작은방이 자리잡고 있다.

 

행랑채는 '一'자형으로 2칸이 앞쪽으로 튀어나와 누형식을 취하고 있다. 1칸은 방이고 다른 1칸은 다락으로 되어있다. 누각아래 기둥 서쪽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층계로 하지 않고 경사진 길로 만들어 특이하다.

 

사당은 안채 동북쪽에 있는 건물로 따로 담장을 둘렀으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집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는 건물로 호남지방에서는 보기드문 예이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살림살이와 청주성의 지도, 그리고 상당산성의 지도 등의 유물도 상당수 보존되어 있다.

 

출처:문화재청

구례 운조루(雲鳥樓 ) :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오미마을 전경"


"구례향토문화유산 곡전재 "


"꽝꽝 얼은 연못"


"연못 속 나무 원앙"


"곡전재"


"운조루 유물전시관"


"타인능해"

누구나 열어 쌀을 퍼 갈 수 있다는 운조루의 쌀 뒤주


"운조루를 지킨 사람들"


"운조루 현판, 교지"


"오미동의 풍수지리"


[운조루 돌거북]

 

이전부터 오미동의 집터가 길지라고 전해졌으나 바위가 험하여 누구도 감히 집터로 활용하지 못하였다. 당시 류이주가 이 땅을 보고 하늘이 이 땅을 아껴 두었던 것으로 비밀스럽게 나를 기다린 것이라며 기뻐하며 그날로 수백명의 장정을 동원하여 터를 닦았다. 그런데 터를 닦는 도중 부엌자리에서 어린아이의 머리크기만한 돌거북이 나왔다고 한다. 온조루에서는 이 돌거북을 보고 온조루 집터가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구물니의 땅이라 생각하여 가보로서 소중히 간직해 오다 지난 1989년 도난을 당하였다.


"이산공 류제양 영정"

손자 류형업이 당시 유명한 화가 채용신에게 주문 제작한 영정


"운조루 연못"


"운조루 솟을대문"

대문 옆 방에서 인기척 소리 들으시고 주인 할머님이 문화재 관람료 1000원을 받으신다.


"큰사랑채 마루와 디딤목"


"누마루 아래 농기구"


"타인능해 쌀 뒤주" 


[타인능해(他人能解) 쌀 뒤주]

누구나 열어 쌀을 퍼갈수 있다는 운조루의 쌀뒤주


토지면 오미리에 있는 조선시대 양반가옥 '운조루'는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운조루 사람들은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 얼굴을 대하지 않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랑채와 안채 중간지점에 통나무 속을 비워 만든 뒤주를 놓고 쌀을 채운 후 마개에다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쌀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열어 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뒤주에는 쌀이 약 2가마니 반이 들어갔는데 운조루 1년 소출의 약 20%인 36가마니를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풀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쌀독을 두어 주위의 배고픈 사람이 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나눔의 정신을 실천해 귀감이 되고 있다.


"장독과 안채"


"곶간채와 거북맷돌"


"상량문과 제비집"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