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2022. 12. 5. 05:30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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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석주관 칠의사 사당]

석주관은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전라도 방어사 곽영(郭嶸)이 남원에 진을 베풀고 11월에 이곳에 성을 쌓고,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1597년 8월초 왜군이 석주관으로 쳐들어오자 구례현감 이원춘은 소수 병력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남원성으로 퇴각하여 그곳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그 후 왜군이 구례로 들어와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왕득인의 아들 왕의성과 이 지방 출신 선비인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이 수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들은 화엄사 승병 153명과 함께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왕의성을 제외한 5의사와 대부분의 의병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곳에서 싸운 의병장들을 석주관칠의사라하여 성터 옆에 사당을 세웠으며,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7명 의사의 충절을 기려 각각 관직을 내렸다.

출처:구례군청


"칠의사"


"칠의사에서 바라본 칠의사묘"


"칠의사사적비, 칠의사사당"


"석주관 전투 부조와 칠의사사당"


"칠의사묘와 칠의사사당"


[사적 구례 석주관 칠의사묘 (求禮 石柱關 七義士墓) Tombs of Seven Patriotic Martyrs in Seokjugwan Fortress, Gurye]

정유재란 때 전라도지방의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끝까지 지키다가 숨진 구례출신 의사(義士) 7명의 무덤이다.

석주관은 경상도지방에서 전라도지방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안음의 황석산성·진안 웅치·운봉 팔량치와 함께 영남과 호남 사이의 4대 관문의 하나로, 고려때부터 이곳에 진영이 설치되어 왜군의 침략을 막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왜군은 호남지방을 목표로 하여 이곳을 집중공격하였다. 그러자 왕득인이 의병을 일으켜 적에게 대항하였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그후 왕득인(王得仁)의 아들과 각 지역에서 모여든 의병·승병들이 힘을 합쳐 처절한 혈전을 전개하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의병을 희생시킨 채 끝나고 말았다.

순조 4년(1804)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에게 각각 관직이 내려졌고, 1946년에는 뜻있는 지방 유지들에 의해 칠의각과 영모정이 세워졌다.

[영문 설명]

These are the tombs of the 7 highly principled men who defended the Seokjugwan Fortress, which was the barrier-gate of Jeolla-do, until the end and died. 

Since Seokjugwan is the barrier-gate to Gyeongsang-do from Jeolla-do, it is a very important position strategically. It was one of the four barrier-gates between Gyeongsang-do and Jeolla-do, including Hwangseoksanseong Fortress, Ungchi Pass of Jinan, and Pallyangchi Pass of Unbong. A military encampment was set up here during the Goryeo Dynasty to keep the Japanese army away. 

Whe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7 broke out, the Japanese army launched a converging attack to access Jeolla-do. Wang Deuk-in gathered volunteers and fought the Japanese army but died. After that, his son and the volunteers from several areas and monks fought a bloody battle against the Japanese army, but most died a heroic death.

In 1804, the authorities gave the official post to the 7 highly principled men including Wang Deuk-in; in 1946, some local people built Chiruigak Shrine and Yeongmojeong Pavilion for them.

출처:문화재청 

칠의사묘(칠의사 묘지만 구례현감이자 남원읍성에서 전사한 이원춘을 같이 모셔 8개의 묘가 있다. 좌측부터 이원춘,왕득인,왕의성,이정익,한호성,양응록,고정철,오정 순이다.)


"칠의사 묘역 위 비석과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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