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109_순천_베네베네식당

2023. 3. 1. 05:28구석구석 먹거리/백반

반응형

[백반(白飯)]

백반은 '흰밥'이 아니다. '백(白)'은 '희다'는 뜻도 있지만, '비다', '가진 것이 없다'는 뜻도 있다. 백반은 밥이 희어서 백반이 아니라 아무런 반찬이 없는 밥상을 말한다.

국(羹)과 밥(飯)은 한식 상의 기본이다. 여기에 밑반찬을 곁들이면 백반이다. 밑반찬은 반찬이 아니다. 밑반찬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장(醬), 지(漬), 초(醋)에 속하는 것들이다.

음식평론가인 황광해 씨는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 밥+국+장, 지, 초의 밥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밑반찬 중 김치, 나물무침 등은 지(漬)에 속하고 초(醋)는 식초, 장(醬)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담북장 등 모든 장류를 포함한다. 장, 지, 초는 밑반찬이지만 정식 반찬은 아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정식백반 이란 문구가 쓰인 식당을 자주 목격한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어머니가 차려준 집밥처럼 정성이 담긴 상차림을 맛보게 하려는 의미인 듯 하다. 그렇다. 백반은 수수하고 소박하다. 평범하지만 집밥처럼 친근하고 푸근하다.

좋은 백반집의 모든 음식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끼니마다 밥과 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경북 구 안동역 벽화


[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109_전남_순천_베네베네식당]

순천 와온마을 가는 길 해창리 우측 대로변에 있다. 건물은 친정 언니분 소유이고 1층에 식당이 있다. 2015년 은퇴하신 노수녀님이 운영하신다. 함께 은퇴하셨던 수녀님 한 분이 도와주셨는데, 다리를 다쳐 입원 중이셔서 홀로 상차림을 준비하신다. 메뉴는 9,000원에 판매하는 시골밥상 한 가지다. 하루 30인분 정도 음식을 만드신다. 

식당 이름의 '베네'는 이탈리아어 좋다는 뜻이다. '베네 베네'는 아주 좋은, 최상급의 말도 되지만 반대로 형편없이 안 좋은 욕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극과 극은 서로 닿는다. 

주변에 주말농장 가지고 계신 분들이 주 손님층이고 알음알음 소문으로 찾아오는 분들도 계신다.

가정집 출입문에 '베네베네식당입구'란 글이 쓰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아담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십자가와 기도하는 손이 그려진 액자 위로 '주님은 나의 목자'라 쓰여 있는 나무 조각물이 보인다. 은퇴한 노수녀님의 물증이다. 그 밖에는 방학 때 놀러 간 시골 할머니 집과 다름없다.


처음 들렸을 때 식당 입구에 고양이 두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병든 고양이들을 치료해 주고 보살펴 지금은 집고양이가 된 희망이 와 까망이었다. 1년 넘어 다시 찾았더니 새끼를 낳았다. 노수녀님 도움의 은총이 고양이 가족을 만들었다.


"노수녀님의 은총이 담긴 시골 밥상"

시골밥상 백반(와온해변 '남도삼백리길'을 걸은 후 노수녀님께 전화를 미리 드리고 찾았다. 노수녀님이 점심 손님 받으시며 식당 한쪽에 뜨내기 여행객을 위해 시골밥상을 준비해 두셨다.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다.

하얀 김이 오르는 따뜻한 쌀밥과 늙은 호박을 넣어 끓인 된장국이 식탁 앞에 놓인다. 뒤쪽으로 텃밭에서 키운 채소들로 만든 밑반찬과 노릇하게 구워진 가자미구이 반찬이 하얀 사기그릇에 담겨 있다. 색감이 알록달록하다. 눈맛을 자극한다. 식탁 한쪽 휴대용 가스버너 위엔 불판이 놓여 있고, 삼겹살 두 줄은 기다란 그릇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황토색 된장국을 건더기와 함께 크게 한술 떠 입에 넣는다. 부드러운 늙은 호박의 은은한 단맛이 구수한 된장국에 녹아들었다. 발효와 늙음의 맛이 입안을 감친다.

밑반찬들도 밥과 함께 맛본다. 알맞게 익은 김치, 고구마 순 김치, 열무김치는 식감은 유지한 채 새곰한 시간의 맛이 더해졌고, 쪽파를 넣은 김무침은 달고 향긋하다. 작은 고추가 보이는 고춧잎무침은 푸릇한 싱그러움이 그대로다. 작두콩 깍지를 짭짤하게 무쳤는데 사근사근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채 썬 고구마 무침, 감자볶음, 가지나물, 호박 나물, 갓나물들도 자기 색과 풍미를 간직하며 각각의 식감을 뽐낸다. 텃밭에서 공들여 키운 식자재의 맛을 잘 살려 간을 맞춘 손맛이 오롯이 느껴진다.

짙은 갈색 껍질의 가자미구이를 뒤집어 본다. 하얀 뱃살이 노릇노릇한 게 먹음직스럽다. 젓가락으로 살밥을 길쭉하게 집어 맛본다. 담백함에 얕은 짠맛이 스친다. 좀 더 살을 발라 양파, 고추를 넣은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다. 뽀얀 살 틈으로 갈색 간장의 감칠맛이 파고들다가 매칼한 고추가 씹히며 맛의 변주를 준다.

밥 반 공기가 사라진 후, 삼겹살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불판 닦는 수고를 생각하면 내주지 않아도 그만이다. 외국산이지만 9,000원 시골 밥상에 단백질을 제공하려는 노수녀님 마음 씀씀이가 엿보인다.

노지에서 키운 상추에 밥과 구운 삼겹살을 얹고 견과류를 넣은 달금하고 구뜰한 쌈장을 더하여 쌈을 싸 먹는다. 기름진 맛에 쌈장의 구수한 단맛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 상추의 쌉쌀한 맛이 어우러진다. 삼겹살에 작두콩깍지 무침, 고구마 순 김치, 호박 나물을 얹어서도 쌈을 싸 먹다 보니 밥공기가 바닥을 보인다.

흔히 식당 음식에 가성비(價性比), 갓(GOD)성비 말들을 한다. 그보단 가심비(價心比), 아니 갓(GOD)심비가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뜨내기 여행객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님이 차려준 밥상을 받은 기분이다. 텃밭에서 정성껏 키운 식재료에 정성과 손맛을 더한 음식들이다. 이젠 시골 농부 할머님이 되신 노수녀님의 은총이 담긴 정성 어린 한 끼다.)


"늙은 호박 된장국과 가자미구이"


"쌈장과 밑반찬"


식당 앞에 꼬마 사과나무가 있다. 과일로도 먹고 발효효소로 담아 물에 희석해서도 먹는다. 손님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식사 후 여주 끓인 물과 꼬마 사과를 후식으로 내주신다. 여주 물을 마신다. 쌉싸래하게 목을 타고 넘어간 쓴맛이 입 안에 남아 있을 때 꼬마 사과를 껍질째 베어 문다. 얇은 껍질이 아삭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씹힌다. 깔끔한 신맛 뒤로 단맛이 은은하게 포개진다. 여주 물 쓴맛의 잔상을 지워버린다. 작지만 맛은 깊고 큰 꼬마 사과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