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자랑 100가지, 청주정북동토성

2023. 3. 25. 09:48청주자랑 100가지/역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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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평지의 성 정북동 토성"

[청주정북동토성]

사적 415호, 청주 도심의 서북쪽 미호천변에 자리한 정북동 토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다. 그 모습은 평지에 가까운 낮은 구릉에 네모꼴로 쌓은 것이다. 성벽 둘레는 675m로, 네 성벽의 길이가 비슷하다. 토성 바깥의 2중 해자와 안팎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집터가 발견되었다.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51-1

출처:청주시


"청주자랑 100가지, 청주 정북동 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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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정북동 토성"


[사적 청주 정북동 토성 (淸州 井北洞 土城)]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있는 평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만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궁예가 상당산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는데, 견훤이 산성을 빼앗아 정북동 토성으로 짐작되는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후삼국 쟁란기인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의 위치, 주변 여건이 초기 성곽시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675m이고 높이 3.5m, 폭은 8∼13m 정도 된다. 성안에서는 주거지, 기둥구멍, 길, 돌무더기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성을 둘러싸 보호하는 물길인 해자를 확인했다. 

토성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로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 축조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토성이다.

[영문 설명]

This is an earthen fortification on the plains around Mihocheon Stream. 

The exact date when it was built is unknown, but we could assume that the fortification was built between the late 9th century and the early 10th century when the Three Kingdoms fought one another. This is based on records from Sangdangsanseong gogeumsajeokgi (History of Sangdangsanseong Fortress) saying that Gyeon Hwon built an earthen fortification -- believed to be this fortification -- in Jeongbuk-dong here after he took over Sangdangsanseong Fortress, which was built and used as the capital by Gung Ye. Note, however, that it could be older than assumed considering its location, the excavations from the site, and its excavated facilities, which are very similar to those found in older fortresses. 

The fortification is 675m long, 3.5m tall, and 8 to 13m wide. On the fortification site, old habitats, holes for the poles, roads, and pile of stone have been excavated. On the outside of the fortification, partial traces of a moat have been found. 

With its structure and excavated vestiges, the earthen fortification has given quite valuable clues to research on fortifications of ancient Korea.

출처:문화재청


[북문터]

현재는 겹친 부분이 거의 훼손되어 있으나 남문과 마찬가지로 옹성의 초기 형태를 보인다. 미호천쪽으로 남아있는 성의 하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서문안쪽]

서문은 동문과 마찬가지로 성벽을 절단하여 성문을 만든 구조이다. 서문터의 바닥에 대한 조사로 성문 구조를 알 수 있는데, 4.2m 너비의 개구부를 두고 여기서 다시 좁혀서 3.2m 너비의 문구부를 만들었다. 또 처음에는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웠다가 뒤에는 냇가의 돌을 모아 다진 후 기둥을 세워 문을 다는 형태로 바뀌었다. 서문의 북쪽에서는 돌을 쌓아 만든 너비 6.3m의 성문 기초가 확인되었다.

서문 바로 남쪽에서 확인된 치성(곡성)의 구조는 토루 (체성)보다 너비 4.2m, 높이 80cm 정도 크게 만들어졌다. 치성의 모양은 체성 안팎으로 점토를 덧대어 반원형으로 만들었다.


[남문안쪽]

남문터 안쪽에서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굴되었는데 화덕 ·불탄 흔적 • 숯이 함께 발견되었다. 토성이 만들어지기 전 미호천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이 집터를 가로질러 큰 기둥구덩이 1.5~1.7m 간격으로 20여 개가 확인되었는데 목책을 세웠던 시설로 보인다.

중앙부 남쪽에서는 우물터로 추정되는 네모꼴 큰 구덩이 발견되었고, 남문터에서 서문터로 이어지는 폭 50~60cm정도의 U자형 배수로도 발견되었다. 또 성벽에 잇대어 1~2겹 또는 3~4겹으로 바닥에 깔아놓은 냇돌 무더기가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어른 주먹 크기에서부터 어린아이 머리 크기까지 다양한 냇돌은 전쟁때 적을 향해 던지려고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터]

남문은 좌우의 성벽이 어긋나면서 일정 부분이 겹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옹성*의 초기 형태로 여겨지는데,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앞뒤에서 쉽게 공격할 수 있다.

남문 밖에는 해자**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최대 너비 17m의 1차 해자에 3.5~5m 너비의 2차 해자를 덧붙여 사용하고, 마지막에는 크기가 줄어 9m 정도 너비의 해자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장용으로서의 성곽 기능이 없어진 9세기 이후에는 메워졌고, 적심석***을 이용한 건물터가 발굴되었다.

* 옹성 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글거나 네모지게 밖으로 둘러 쌓은 시설.
** 해자 성벽 주위에 땅을 깊게 파고 물을 채워서 적이 접근하기 어렵게 한 시설.
*** 적심석 기둥을 세우기 위해 돌을 박아 기초를 만든 둥근 형태의 돌무더기.


"남문터 소나무"


"남문터 소나무"


[동문터]

성내에 마을이 있을 당시 주출입구로 이용되던 곳이다. 동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쳐 있다. 동문 북쪽에 드러난 자름면을 통해 중신 토루(체성)에 외피를 덧댄 모습의 성벽 구조를 볼 수 있다. 외피를 포함한 성벽의 너비는 10~11m 정도이다.

성벽의 평면은 안팎과 중간 각 2개씩 4개의 기둥으로 구획된다. 성벽 안쪽, 체성에 해당하는 부분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황갈색의 고운 흙을 다져 쌓았다. 반면 외피에는 모래가 섞인 흙과 함께 교대로 다져 쌓아 구별된다. 또 동문 안쪽 성벽면에서는 체성을 쌓았던 흔적인 기둥구멍이 성벽 방향으로 1.1~1.7m 간격으로 나타났다.


[해자]

해자는 성 주변을 둘러 파서 만든 도랑으로 방어와 배수 등의 기능을 겸한다. 정북동토성의 해자는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번째 해자는 성벽의 바깥을 따라 돌아가면서 파여졌다. 이 첫 번째 해자를 수리하고 만들어진 두 번째 해자는 안쪽과 바깥의 이중으로 만들었다.

정북동 토성 해자의 특징은 바닥면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천천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는 해자가 물을 채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호천의 물을 일부 끌어들여 성을 돌아나가도록 배수시키는 기능을 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두 번째 해자는 토성이 방어의 기능을 잃게 되면서 폐기되어 메워졌으며, 그 메워 다져진 위쪽에 통일신라의 수레가 다니던 도로와 그 이후의 집터를 비롯한 생활유구들이 자리하게 되었음이 발굴을 통해 알려졌다.


[우물]

정북동토성의 성벽 밖 해자가 돌아간 구역의 남쪽 성문과 동쪽 성문 사이의 구역에서는 지금까지 우물 4곳이 확인되었다.

1·3호 우물은 해자 안에서, 2.4호 우물은 바깥쪽 해자의 바깥경계에서 확인되었다.

우물은 모두 등근 강자갈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는데, 1호 우물은 안쪽 해자의 바닥보다 깊은 곳에 폭이 좁은 사각형으로 만든 것이고, 2~4호 우물은 둥근 형태이다. 1호 우물은 깊은 곳이어서 노출시켜 놓을 수 없다. 복원된 우물들은 당초의 원형을 그대로 두고 윗부분을 보강하였으며, 뚜껑은 안전을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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