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자랑 100가지, 제일교회

2023. 4. 6. 05:44청주자랑 100가지/근현대건축·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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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구제, 교육의 성지"

[제일교회]

1904년 11월 옛 중영 터에 청주읍교회가 세워지고 청남학교(청남초등학교)를 개교하였다. 활발한 선교활동과 1917년 소민병원 개원, 3·1만세운동 전개, 1926년 상당유치원 개원, 1945년 YMCA 설립, 1953년 세광고 설립 등 지역의 선교 교육활동을 주도하였다. 1999년 교사로 사용하던 망선루를 철거하여 이듬해 중앙공원에 이전하였다.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13번길 15 

출처:청주시


"청주자랑 100가지, 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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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선루터 기념비]

망선루 : 고려시대 세워진 목조 누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1921년 일제의 무덕전 산축으로 망선루가 헐리게 되자, 당시 담임목사 함태영 목사와 독립운동가 김태희 장로를 중심으로 망선루 보존운동을 전개해, 1923년 이곳에 망선루를 이전하였다.

이후 수많은 교육계몽활동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청주시로 기증하여 2000년 청주중앙공원으로 이건, 복원하였다.


"청주 제일교회 기념비"


[창립 100주년 기념비]

교회창립 : 1904. 11. 15

1904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 밀러 선교사와 뜻있는 청년들이 함께 세운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는 충북 선교의 중심지로서의 선교적, 역사적 사명을 감당해 왔다.

2004년 11월 15일, 창립 100주년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선인들의 믿음을 기리고, 새 역사의 시작을 다짐하면서 온 교인의 뜻을 모아 이 기념비를 세웠다.


[로간부인 기념비]

건립 : 1921. 6. 1 (지역 최초 순수 한글비석)

로간 부인은 밀러 선교사의 부인 도티 여사와 함께 교회 학교 교사반, 여성 전도반, 여성 지도자반 등을 지도하면서 충북 지역의 선교와 여성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이에 청주를 비롯한 충북에서 행한 그녀의 활동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본교회 여신도회가 중심이 되어 기념비를 세웠다.


"로간부인 기념비"


[여신도회 창립100주년 기념비]

여신도회 창립 : 1913년 (한국장로교단 최초)

청주제일교회는 초창기부터 여성들의 교육, 사회, 선교 활동을 적극 지원했고, 1913년에는 한국장로교단 가운데 최초로 '부인 전도회(현 여신도회)'를 조직하였다.

이 기념비는 창립100주년을 맞아 전체여신도회 증경회장단, 당시 임원단, 최초 여성 장로가 뜻을 모아 세웠다.


[충북지역 기독운동 기념비]

기념비 건립 : 2004. 11. 13

기독청년정신에 뿌리를 둔 청주제일교회는 이를 계승하여 지역 계몽 운동에도 앞장 섰다. 또한 충북지역 기독청년운동, 기독여성운동, 민주화 운동의 요람으로 교회 공간을 개방하고, 후원함으로 기독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충북기독교교회협의회, 청주YMCA, 청주YWCA, 충북기독교청년동지회에서는 이 역사를 기리며 본교회 백주년을 맞이하여 기념비를 세웠다.


"남신도회 창립 100주년 기념식수"


"청주제일교회"


"청주 제일교회 옛 사진"


[정초석① - 1939년, 정초석②-1950년]

현 예배당 건축 : 1939 (건축 정초석), 현 예배당 건축 : 1950 (증축정초석)

청주제일교회 건축 역사는 다음과 같이 구분 된다.
- 초가예배당 (1904, 남문밖 100m)
- 한옥예배당 (1905-1913, 현위치)
- 목조예배당 (1914-1939)
- 현 예배당 건축 (1939-1950)
- 현 예배당 증축 (1950-현재)

청주제일교회는 1904년 청남문 밖 100m 부근에 위치한 청주선교기지였던 초가집(현 남문로1가 194번지)을 임시예배당 삼아 창립하였다.그때부터 예배당 건축을 추진한 교회는 1905년 옛 청주진영 관사이자 천주교 신자의 순교 터인 이곳을 매입하여 한옥예배당을 세웠고, 1914년 목조예배당으로 증축하였다. 이후 1939년 현재의 벽돌조 중앙고딕양식의 예배당을 신축하였으며, 6.25 전쟁중인 1950년 증축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유적교회 지정 제6호 충북노회 청주제일교회]

이 교회는 미북장로회 선교사 밀러(F.S.Miller)와 지역사회 복음에 앞장선 장로 김흥경(興京)에 의해 1904년에 설립되어, 충북지역 선교에 크게 공헌했으며, 이 지역 최초의 신식 교육기관인 청남학교와, 해방 후 세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인재 양성과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교회터는 조선말기 청주 영장(營將)의 관사가 있던 곳으로, 천주교인들의 순교터이며, 교회 건물은 1939년 10월 중앙 첨탑형 고딕식 벽돌 건물로 신축했던 것을, 1950년에 증축하고 한국전쟁중이던 1952년에 완공하여 건축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한국기독교장로회 제94회 총회(2009)는 청주제일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공인하고, 교회당을 보존하기 위해 ‘총회 유적교회'로 지정하다.

2010년 4월 25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6호 총회유적교회 기념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유적교회 지정 제6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에서 지난 2010년 4월 25일 청주제일교회의 역사적 가치를 공인하며, 교회당을 보존하기 위해 총회 유적교회 제 6호로 지정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교회에서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본 교회에서 제42회(1957년), 제106회(2021년) 교단 총회가 개최되었고, 두 총회 기간 모두 담임 목사가 총회장이던 시기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의 총회유치를 기념하는 동판이 예배당 건물 뒷편에 부착되어 있다.


[청주 진영 순교지]

청주 진영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다섯 진영 중 하나로 천주교 박해 때 마다 신자들을 체포하여 심문하고 사형 판결을 내리던 관청이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진영에서 천주교 신자인 복자 오반지 바오로가 "만 번 죽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없소"라는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다. 또한 하느님의 종 최용운 암브로시오, 전 야고보, 김준기 안드레아도 1866-1868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1892년 한국으로 파송된 미국 북 장로회 소속 민노아(F.S. Miller) 선교사는 자신이 태어난 해에 일어난 병인박해의 순교역사를 기억하고자, 1905년 남문 밖에 있던 청주제일교회를 청주 진영 순교지로 이전하였다. 2017년 천주교 청주교구는 청주제일교회의 협조와 배려로 순교지 기념 표지석을 이곳에 세웠다.


[민주화 운동 기념비]

6월 민주화 항쟁 기념비

청주제일교회는 군부 독재에 항거에 동참하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어려움 속에서도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청주지역 진원으로 역할을 하였다. 이를 기려 지난 2007년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충북 추진위원회"에서 이 표지석을 세웠다.

최종철 열사 추모비 (추모비 이전: 2021년)

본 교회 출신의 최종철 열사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지역 청년들의 계몽을 위해 헌신하던 중 신군부 세력의 탄압으로 젊은 나이에 소천하였다. 1999년 5월 5·18민주유공자로 추서되었다.


"청주 기독교 역사의 요람 제일교회"


"총탄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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