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2023. 6. 1. 04:29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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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堤川 長樂洞 七層模塼石塔) Seven-story Stone Brick Pagoda in Jangnak-dong, Jecheon]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도 한다. 탑이 서있던 절터가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규모는 알 수 없고, 7층에 이르는 거대한 이 탑이 주위를 압도하듯 버티고 서 있다.

회흑색의 점판암을 사용한 탑으로,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만은 점판암이 아닌 자연석으로 1단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로 벽돌로 이루어진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은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 곳으로, 1층의 네 모서리에는 점판암 대신 화강암을 다듬은 기둥을 세워 그 모습이 특이하다. 또한 남쪽과 북쪽면에 사리를 두는 감실(龕室:불상이나 사리 등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 놓았는데, 현재 남쪽의 것은 없어졌다. 1층의 남쪽과 동쪽면이 몹시 부서져 있는데 이러한 피해는 2층의 지붕돌까지 이르고 있다. 각 몸돌을 덮는 지붕돌은 재료가 벽돌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경사면 위아래 모두 층급을 두었으며 처마도 짧고 수평을 이룬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아래위로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도록 하였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장식받침인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 한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있고 구멍둘레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1967년 무너지기 직전에 탑을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무늬가 조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어 혹 탑의 머리장식이 아닐까 한다.

탑신 전체에는 표면에 회를 칠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만드는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장락사지]

장락사지는 충북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 일원에 위치한 옛 절터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한 차례의 시굴조사와 세 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4개 동의 건물터와 담장지, 보도시설, 우물을 확인하였고, 기와류,토기류, 자기류, 흙거푸집, 글씨 없는 비석, 솨솥, 쇠못, 쇠자물쇠, 청동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락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 되었다. 창건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가장 번성했던 때는 고려시대로 조사지역 전체에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 또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장락사지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제천 지엑에서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과 연화문수막새와 새끼줄무늬 기와 등은 제작 시기가 6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고 있어 고대의 문화 전파경로와 제천 지역의 고대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장락사지와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보물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장락동 칠층모전탑은 높이가 9.1m에 이르며 자연석을 다듬어 단층기단을 만든 후 7층 탑신을 올렸다. 이 탑은 1층 부분이 매우 특이하다. 네 귀퉁이에 굵다란 화강석 기둥을 세우고 남쪽과 북쪽 면에 문기둥과 이맛돌을 얹어 문틀을 만든 후 돌로 문짝을 만들어놓았다. 남쪽 문은 없어지고 북쪽 것만 남았는데 문에는 문고리를 박았던 구멍이 나 있다. 문과 기둥 이외의 부분은 모두 모전석으로 쌓았다. 없어진 문틈으로, 탑 내부에 흙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석만을 쌓아 넣은 모습이 보인다. 2층 이상에서는 각 층의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지붕 아래와 윗면에 모두 층단이 있는데 1층에서 3층까지는 각각 9단, 그 위로 5층까지는 8단, 나머지 6층과 7층에서는 7단씩이다. 층마다 지붕 모서리에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고 7층 지붕 귀퉁이에는 쇠고리까지 남아 있다. 상륜부는 나지막한 화강석 노반만을 남기고 모두 없어졌다. 노반 한가운데에 연판으로 둘린 지름 17㎝의 둥근 구멍이 6층까지 뚫려 있는데 찰주를 꽂았던 구멍으로 여겨진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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