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필응의 절집, 제천 금수산 정방사

2023. 5. 30. 03:34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반응형

"유구필응의 절집"

[제천 금수산 정방사]

자드락길 제2코스 정방사길은 명경지수와 같은 맑고 깨끗한 계곡미와 더불어 선경을 방불케하는 조망미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이다.

제천 금수산 정방사는 조계종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인 정방사는 해발고도 1,016m의 금수산 자락 신선봉 능선에 있는 천년고찰로 신라 시대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절에 오르면 선경을 방불케 하는 청풍호와 주변의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정방사길은 이 정방사 오름길인 셈이다. 원통보전 좌측유구필응('원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응답한다' 라는 뜻이다.) 현판이 걸려있다.

출처.제천시


"걱정하지 마세요"


[정방사 해우소]

법당에 올라서기 전 먼저 해우소에 둘러보길 권하는데, 피로와 근심을 한순간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멋진 비경이 그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창을 통해 한 폭의 수채화나 다름없는 청풍호 절정을 감상할 수 있다.

출처:제천시


"정방사 원통보전"

부처님 오신날이 몇일 남지 않았다. 남불자님이 꽃에 물을 주신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복장유물 (堤川 淨芳寺 木造觀音菩薩坐像 腹藏遺物)]

정방사 법당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관음보살좌상과 안에서 나온 유물들이다. 정방사는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금수산 정상 가까운 곳의 거대한 암벽 아래 자리잡은 사찰로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정방사의 법당에 주불(主佛) 모셔져 있으며,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전형적인 조선 중기 보살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몸에 비해 작은 편이며, 머리 정면에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는 높은 보관(寶冠) 쓰고 있어 관음보살상임을 있다. 신체는 비례가 알맞으나 경직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옷은 오른쪽 어깨를 반달형으로 덮은 형식을 보인다. 목에는 단순화된 2줄의 목걸이를 걸고 있고, 앞가슴에는 가로로 생긴 내의의 주름을 보이고 있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보살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손은 왼손을 들고 오른손을 내리고 있는데, 이와 같은 손의 자세는 보살상이 아미타삼존불의 좌협시보살로서 조성되었음을 보여준다. 

보살상 안에서는 삼존불을 조성하였다고 밝히고 있는 기록과 『묘법연화경』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현재 사찰에서 보관중이다. 그러나 기록에는 불상을 봉안한 사찰의 이름이 보이지 않아 본래부터 보살상이 정방사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인할 없다. 본존상과 우협시보살상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발원문(發願文) '강희이십팔년...(康熙二十八年...)'이라 기록되어 있어 조성 연대가 조선 숙종 15(1689)임을 있다. 

관음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신체 비례가 알맞고 인상도 단아한 아름다운 보살상으로, 보살상에서 나온 기록으로 정확한 조성연대를 있어 불상양식의 변천을 파악할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출처:문화재청


[유구필응(有求必應)]

원통보전 좌측에 유구필응(有求必應) 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유구필응은 '원하는 게 있다면 반드시 응답한다' 라는 뜻으로 정방사 창건 설화와 관련있다.

정방사는 의상의 제자인 정원이 의상의 주장자 즉 지팡이를 따라가다 선 곳에 세운 절집이다. 의상은 정원에게 지팡이가 선 곳의 아랫 마을에 가면 윤석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야기를 하면 절집을 지을 비용을 댈거라 얘기를 했다. 또한 의상은 그날 밤 윤석사를 찾아가 내일 스님이 찾아오거든 무조건 부탁을 들어주라고 얘기를 했으며 정방사는 그렇게 세워졌고 스님이 요청하거든 반드시 응해주라는 '유구필응' 현판을 걸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정방사에서 바라본 청풍호 "


"지장전 풍경과 지장보살"


"지장전에서 바라본 청풍호"


"청풍호를 바라보는 해수관음보살입상"


원통보전 뒤 암벽 밑에 샘물이 보인다. 샘물 옆 맷돌엔 부처님께 공양하는 청수가 올려져 있다.


정방사 뒤 등산로를 오르며 바라본 청풍호와 산봉우리들이 가슴을 활짝 열어준다.


신선봉 방향 암반에 작은 소나무가 자란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