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입석리 선돌&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

2023. 5. 28. 05:37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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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시멘트공장"


[공덕비와 입석마을 표석]

이 마을은 이조말엽 입석2리(약 400년전)에 제일먼저 촌락이 집성되어 당골, 샛터, 백형, 잔다이, 선돌백이, 잣뒤동 등으로 불리다가 옛날 충주지역에 떠돌던 두 마고할머니가 이곳에서 만나 힘자랑으로 던져진 큰돌이 들녁에 포개져 서 있다는 전설에 따라 입석이라 명명 되었다. 행정구역으로 충북 제천군 송학면 입석 1.2.3리로 분리 되었으며 1995년 1월 제천시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천 입석리 선돌 (堤川 立石里 立石)]

이 선돌에서 유래하여 이 마을의 이름을 「입석리(立石里)」라 불리어지고 있으며, 고대사회 정복의 산물인 부곡(部曲)을 두어 입석부곡이 되었다가 근대에 천민집단이 정리됨에 따라 입석으로 변했고, 1914년 당곡리를 병합하여 입석리라 하여 송학면에 소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돌은 입석마을 입구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으며, 「선돌백이」라 부르고 있다. 

선돌 축조와 관련된 전설과 기자사상(祈子思想)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여오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주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제의(祭儀)를 행하고 있어 수호적(守護的) 기능의 수호신으로서 민간신앙의 대상물로 섬기고 있어 민속학 및 국문학적으로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선돌의 의미와 중요성을 인식한 주민들이 선돌을 보호·보존하기 위하여 1974년 자발적으로 「선돌회」를 조직하여 관리하며, 1986년부터 매년 음력 10월 중에 택일하여 『선돌祭』를 지내고 있으나 선돌의 기능·구조·학술적 의미 등에서 중원지방의 대표적인 선돌로 평가된다. 

이 선돌은 3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아래는 높이 66㎝의 낮고 폭이 넓은 3개의 돌을 놓았고, 그 위에 높이 96㎝·너비 140㎝·두께 96~116㎝ 크기의 돌 3개를 올려 놓아 중앙부를 이루고 있으며, 가장 위에는 높이 245㎝·너비 258㎝·둘레 654㎝의 커다란 돌을 올려 놓아 7개의 돌을 쌓아 하나의 선돌 형태를 이루고 있는 매우 특이한 구조를 띄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제천 입석리 선돌"

선돌 뒤로 아세아시멘트공장이 보인다.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 (堤川 柴谷里 石造如來立像)]

시곡1리 깊은골마을 앞 경작지 옆에 서 있는 상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파손이 심하다. 원래의 위치는 아니나 주변의 사지에서 봉안했던 상으로 추정되며, 1999년도에 도난되었다가 2002년도에 다시 찾아 세운 것이다.

불신(佛身)과 광배는 하나의 돌에 조각되어 있고, 대좌는 따로 만들어져 발부분이 끼워져 있다. 얼굴은 동그란 형태로 뺨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듯하나 상호(相好)는 마멸로 인해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육계(肉)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잘록하며 가슴과 배부분에는 양감이 있는 편이다. 대의는 편단우견(偏袒右肩)으로 입었고 허리 아래 옷자락이 옆으로 넓다. 왼손은 손바닥이 보이도록 가슴까지 들어 올렸고, 오른손은 손가락을 모은 채로 배에 대고 있다. 광배는 불신 주위에 좁게 표현되어 두 줄의 융기선(隆起線)으로 원형 두광(頭光)을 표현하였고 두광과 신광(身光)의 내부에는 화염문 장식이 보인다.

반면에 대좌는 불신에 비해 돌의 재질도 좋고 조각수법도 매우 뛰어 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볼륨감이 큰 복련의 연화대석으로 윗부분에 2단의 팔각받침이 모각되어 있고 그 위에 불상의 발이 조각되어 붙어 있다.

이처럼 불신과 대좌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대좌는 조각수법이 좋지만 불신은 조각수법이 치졸하고 마멸도 심하다. 따라서 대좌는 원래의 것으로 보이고 불상은 일단 파손된 후 후대에 다시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풍화와 인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전통적인 통일신라 여래입상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조각기법은 양감이 떨어지고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대좌의 연판(蓮板)도 통일신라 전성기의 것과 비교해 볼 때 양식적(樣式的)으로 쇠퇴기(衰退期)에 접어든 시기의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제작연대는 고려초기 무렵 제작으로 추정된다.

제천 시곡리 석조여래입상은 불상 및 연화문(蓮花紋) 대좌의 조각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불상의 지방 양식화되는 변천 모습을 알려주는 석불로 그 작례가 많지 않은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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