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곱씹다, 노포 중국집의 추억!

2023. 9. 20. 06:35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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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갑산은 강릉여고 맞은편 대로변에 있었던 강릉분들이 애정한 중화요리 노포였다. 허름한 외관과 내부 메뉴판, 의자, 양념통에서 예스러움이 느껴졌던 곳이었다. 음식에서도 노포의 연륜을 맛보았다. 신축건물이 들어서며 현재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기억을 곱씹다, 노포 짜장면의 추억"

짜장면은 첨가제 사용 적어 보이는 뽀얀 면을 담고 비계, 살코기가 섞인 돼지고기, 호박, 양파, 양배추, 춘장을 넣어 볶은 단맛 강하지 않은 진한 검은색의 짜장 양념을 부어 깻가루 살짝 뿌려 내준다. 빨간 고춧가루를 넣어 잘 섞이게 비벼 먹는다. 짜장면 짝꿍인 춘장, 양파, 단무지를 곁들여 먹는다. 

구수하고 달금한 짜장 양념이 묻힌 면이 쫀득하게 씹히며 어금니를 놀리면 입안에선 군침으로 화답하며 내장으로 면을 밀어 넣는다. 짜장 양념이 스며든 채소와 돼지고기도 면 사이로 씹히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금세 바닥을 보이는 하얀 접시엔 검은 짜장 양념의 흔적만이 남아 맛의 여운을 준다.

노포의 맛은 짧지만 강하게 어금니와 내장, 뇌에 추억이란 맛으로 저장된다.


주문 후 볶아낸 볶음밥에 달걀 프라이를 얹고 고소한 짜장양념을 담아 내준다. 홍합, 달걀, 파등을 넣어 새우젓으로 삼삼하게 간한 시원한 달걀탕과 김치, 양파, 단무지, 춘장등을 곁들여 먹는다.


"볶음밥의 영점"

볶음밥을 주문한다. 주방 웍 속에서 볶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눈보다 귀로 먼저 음식을 맛본다. 소리가 멈추고 볶음밥이 식탁 위에 놓인다. 하얀 접시 왼쪽엔 묽고 검은 짜장 양념이 자리 잡고 오른쪽엔 하얀 김이 올라오는 따뜻한 볶음밥을 담고 완숙 달걀 프라이를 살포시 얹어 내준다. 검은 짜장 양념과 기름이 볶아진 밥, 채소, 돼지고기의 다양한 색감이 먹음직스럽다. 귀로 느낀 맛을 눈으로 확인한다.

귀와 눈으로 확인한 맛은 숟가락을 매개체로 자연스럽게 입으로 향한다. 어금니로 꼭꼭 씹는다. 고소한 기름이 스며든 당근, 파, 돼지고기, 밥 등이 입안에서 때론 따로, 때론 함께 풍미를 뽐낸다. 연륜이 볶아낸 맛은 '고슬고슬하다(밥 따위가 되지도 질지도 아니하고 알맞다.)'란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엔 모자란다. 노 주방장의 시간과 정성이 더해진 '깊은 맛'이 어울릴듯 하다.

볶음밥에 비계와 살코기가 섞인 돼지고기와 호박, 양파, 양배추 등을 넣은 진한 짜장 양념으로 비벼 맛본다. 검은색은 볶음밥으로 스미며 자신의 색으로 뒤덮는다. 단맛과 다양한 식재료의 식감은 더하고 기름짐은 중화한다. 숟가락질은 빨라지고 하얀 접시 바닥엔 희미한 검은색 짜장 양념과 멀건 기름만이 볶음밥이 담겼었던 흔적임을 알린다.

접시엔 짜장 양념이 묻지 않게 가장자리로 옮겨둔 완숙 달걀부침만이 남았다. 반숙이 아니어서 볶음밥에 섞지 않고 아껴 두었다. 기름이 골고루 묻힌 얇은달걀부침은 바삭하고 바삭하고 존득하게 씹히며 볶음밥의 고소한 여운을 늘려준다. 아껴둔 맛은 배신하지 않는다. 

이젠 추억의 맛으로 남았지만 영점 사격을 통해 영점을 잡듯 '볶음밥의 영점'으로 기억될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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