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의 멋

2023. 10. 10. 09:10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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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없는 박물관 고을 창조도시"

[영월군]

영월군은 강원특별자치도의 남부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평창군, 정선군, 동으로는 태백시, 서쪽으로는 원주시, 남으로는 경북 영주시, 충북 제천시, 단양군에 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1,127㎢이고, 동서간 86.3, 남북간 51.1㎞이다.

북부에 차령산맥이 뻗치고, 남부에는 남서로 향한 소백산맥이 호위하고 있으며, 산솔면 직동리와 정선군 남면 무릉리와의 사이에 위치한 두위봉 (1,465.9m) 최고봉으로, 전체적인 해발은 180~1,466m사이에 있다.

국내외 관광환경 조류변화, 교통망 개선, 환경과 건강산업의 수도를 지향하는 지역발전 전략화 중시로 충절과 역사, 김삿갓의 풍류, 동굴, 동ㆍ서강의 청류, 다양한 테마, 박물관 , 강원남부 내륙관문 중심도시로서 새롭게 잠재가치가 조명되고 있다.

출처:영월군


"단종의 넋을 기리다"

1. 영월 보덕사

단종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보덕사 칠성각에서 단종의 혼령을 추모하기 위해 단종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건물의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나 지금은 거의 원래대로 복원되어 가는 중이다. 한국전쟁 전까진 월정사의 말사 중 가장 큰 사찰이었다 한다.

보덕사는 영월읍 북방 3km 떨어진 능동에 있는 고찰이다. 이곳의 해우소는 여느 화장실과 다르다. 전통적인 사찰 해우소의 건축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1882년 건립되어 현재까지 12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어른 2~3이 껴안아야 될 정도로 큰 400년 된 느티나무가 보덕사에 있다.

출처:영월군청

단종어각내 말에 탄 단

[강원도 문화재자료 영월보덕사해우소 (寧越報德寺解憂所)]

해우소(解憂所)는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 라는 뜻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적 형식을 지닌 보덕사 해우소는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2층 누각식 건물이다. 앞뒤 2열로 나누어 각각 6칸씩의 대변소를 배치하여 남녀의 사용을 구분하면서 12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상량문을 통해 조선 고종 19년(1882)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는 이 해우소는 세워진 지 오래 되었음에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오래된 사찰 해우소 건물로는 강원도내에서는 희소가치를 지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2. 영월 요선암·요선정

[강원도 문화재자료 요선정 (邀仙亭)]

남한강의 한 갈래인 주천강 상류, 풍경이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하고 있으며, 요선암이라고도 불린다.

1915년 이곳 주민들이 정자를 세우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되어 오던 숙종의 친필시를 이곳에 모셨다.

건물은 앞면 2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앞면 오른쪽에는 이응호가 쓴 ‘요선정’, 왼쪽에는 ‘모성헌’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외에 홍상한이 쓴 청허루중건기, 요선정기, 중수기가 걸려 있다.

주위에는 석탑과 마애불이 있어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寧越 武陵里 磨崖如來坐像)]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의 주천강(酒泉江)이 흐르는 곳에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불상은 요선정 동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양감이 풍부하여 박진감이 넘치고 있고, 묵직한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간략한 옷주름을 선으로 새기고 있다. 두 손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펴서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오른손과 평행하게 들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진 머리광배와 2줄의 선으로 표현된 몸광배를 갖추고 있다. 하체는 지나치게 크게 표현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으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에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상체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치지만 지나치게 커진 무릎이 불균형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불상은 고려시대 영월지방의 대표적인 마애불상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

[천연기념물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하식기원 돌개구멍들이 화강암반 하상 위에 폭넓게 발달되어 있어, 하천의 윤회와 유수에 의한 하식작용 등을 밝힐 수 있는 학술 가치가 크며, 여러 개의 돌개구멍이 복합적으로 발달된 지형자체가 가지는 경관 가치도 우수하다

※ 요선암(邀仙岩) :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문예가 봉래 양사언이 평창군수 시절, 이곳의 풍광을 즐기며 암반위에 ‘요선암’이라고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돌개구멍(Pot Hole) :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 구멍’이란 의미로 하천에 의해 운반되던 자갈 등이 오목한 하상의 기반암에 들어가 유수의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면서 기반암을 마모시켜 발달하는 지형. 보통 하천의 상류지역에서 빠른 유속과 큰 에너지를 바탕으로 형성된 와지에 자갈이나 모래와 같은 퇴적물질이 들어가, 와동류(회오리가 이는 듯한 물살)에 의해서 반복적인 회전운동을 통해 포트 홀 내벽을 침식, 점차 포트 홀이 성장하게 되며, 지속해서 내벽 및 하부침식이 일어나 커다란 항아리 모양으로 기반암을 파게 됨. 주로 사암이나 화강암과 같은 등질성의 단단한 암석에서 잘 발달하며, 형태로는 원형이나 타원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출처:문화재청


3. 영월 호야지리박물관

호야지리박물관은 지리 교육에 평생을 바친 호야 양재룡선생님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지리 테마 시설 박물관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광물 자원의 천연 표본실이자 카르스트 지형, 석회암 동굴 등 각종 지리 지형 현상이 집약되어 있는 영월에 위치해 있어 ‘지리’라는 테마와 잘 어우러진다.

출처:영월군청


[대동여지도 실사합본]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실측도로 너무 작은 섬이라 표시되지 않았다. 그려진 1500여개의 섬보다 더 많이 그려졌으면 표시가 될 수도 있었을거라고 관장님은 말씀하신다. 대마도는 일본 영토라 안 그려 진거고 독도가 표시 되지 않아 대동여지도는 훌륭한 실측도라 할 수 있다고 관장님은 말씀하신다.


4. 영월 사자산 법흥사

사자산 법흥사는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 위해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로 창건했다.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열었고,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이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영월 법흥사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한곳이다. 영월 법흥사 석분, 영월 법흥사 부도, 흥녕사 징효대사보인탑비, 징효국사 부도 등의 다양한 문화재를 함께 볼 수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반겨주는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절이다.

출처:영월군청


[보물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 (寧越 興寧寺址 澄曉大師塔碑) Stele for Buddhist Monk Jinghyo at Heungnyeongsa Temple Site, Yeongwol]

흥녕사를 크게 발전시킨 징효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석비로,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고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올리고, 그 위에 용머리가 조각된 머릿돌을 얹었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용의 머리에 가깝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특히 발가락과 발톱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어 눈에 띈다. 반구형(半球形)에 가까운 등은 길쭉한 6각무늬로 채워져 있으며, 중앙에는 비를 꽂아두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다. 머릿돌에는 네 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해 마주보고 있다. 눈, 코, 입은 사실적으로 새겼으나 몸에 표현된 비늘은 약하게 새겨져 형식에 그치고 있다.

비문에는 징효의 출생에서부터 입적할 때까지의 행적이 실려있다. 비문에 의하면 징효는 19세에 장곡사에서 승려가 되어 75세 되던 효공왕 5년(901)에 입적하였다. 끝부분에는 대사의 공적을 기리는 내용도 새겨져 있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지 44년 후인 고려 혜종 원년(944)에 세워진 비로, 글은 최언위가 짓고 최윤이 글씨를 썼으며 최오규가 비에 새겼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보궁 안에 불상을 봉안하지 않은 것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사리탑이 건물 뒤쪽 언덕에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법흥사 석분 (寧越 法興寺 石墳)]

법흥사 적멸보궁 뒤에 자리하고 있는 석분이다.

바깥부분은 낮은 언덕에서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그리 높지 않은 봉토를 이루고 있다. 내부 돌방의 벽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을 가려서 10단을 쌓았는데 6단까지는 수직이고 7단부터는 각을 줄여 쌓았다. 천장은 넓고 평평한 1매의 뚜껑돌로 덮어 놓아 내부전체가 거의 원형을 이루는 있다. 석분 뒷쪽에 돌로된 관이 있어서 이름 높은 스님의 사리 또는 유골을 모시던 곳일 수도 있으나, 기록에는 승려가 수도하던 토굴과 같은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법흥사 석분과 법흥사 부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법흥사 부도 (寧越 法興寺 浮屠)]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이 부도는 법흥사 적멸보궁 뒤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모신 사리의 주인공은 아직 밝혀 지지 않았다.

형태는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부(基壇部)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갖추었으며, 각 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넓고 네모진 바닥돌 위에 놓인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겼다. 가운데받침돌은 여덟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탑신의 몸돌은 앞, 뒤 양면에 문짝모양을 새기고, 나머지 6면에는 1구씩의 신장상(神將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높게 달았다. 꼭대기에는 축소된 지붕모양과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가 8각을 이룬 모습으로 두꺼운 지붕돌 표현이나 높은 지붕돌의 꽃장식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작품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5. 영월 산솔마을 소나무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짙은 솔향기를 풍기는 산솔마을

훈한한 정과 넉넉한 인심, 고향의 정취가 물씬 충기는 산솔마을은 솔바람 솔솔 부는 시원한 계곡에서 온가족이 함께 자연체험을 줄길 수 있는 녹색농촌체험마을이다.

산솔마을에는 영월의 명산 중 하나인 단풍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솔고개 단풍산은 계절마다 자태를 달리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특히 소나무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자수려한 지역의 모습과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영원군의 보호수목인 수령 500년이 된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가장 낮은 수심과 깨끗함을 자랑하는 옥동천이 있어 매년 여름 피서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출처:영월군청

 

6. 영월 김삿갓유적지

김삿갓 유적지는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조성된 김삿갓의 유적지이다. 김삿갓 연구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난고 문학관과 많은 돌탑이 조성된 묘, 작은 성황당, 마대산을 따라 김삿갓이 살던 집터 등이 있다. 김삿갓의 본명은 난고 김병연(1807~1863)이다. 방랑 시인이었던 김삿갓은 1863년 전남 화순군 동북면 구암리 정시룡 댁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3년 뒤 아들이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 기슭으로 이장했다.

출처:영월군청


[시선난고김병연지묘]

22세에 집을 나서 방랑생활을 하면서 서민들의 애환을 시로 읊어 조선시대 서민문화의 큰 틀을 마련한 난고 김삿갓은 1863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에서 작고하여 그곳에 묘를 썼으나 3년 후 둘째 아들 익균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모셨다고 전해진다.


7. 영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위치한 김삿갓문학관은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2003년 개관됐으며, 관련 연구 자료 전시실과 함께 야외에 시비가 조성돼 있으며 전국 각지를 방랑하며 서민들의 애환과 양반의 잘못된 생활상을 시로 표현한 방랑시인 난고 김삿갓(본명 김병연, 1807~1863)의 업적과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김삿갓 문학관은 강원도 시책 사업인 ‘강원의 얼 선양사업’의 하나로 2003년 10월에 개관하였고, 김삿갓의 생애에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있다.

김삿갓의 삶을 기록한 연구 자료와 유물들이 전시된 ‘기획전시실’과 김삿갓의 삶을 보여주는 ‘일대기실’,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학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난고문학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일대기실에서는 김삿갓이 조부를 비판하는 글로 지었다는 실제 장원급제 시험지를 볼 수 있으며, 난고문학실에는 1939년 이응수 작의 김립시집 외 구한말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서적, 간행물, 논문 잡지 등이 전시되어 있다.

출처:영월군청


[삿갓의 노래]

정처없이 떠도는 내 삿갓 마치 빈 배와같이 한번 쓰고 다닌 지 어느덧 사십 평생이어라

더벅머리 목동의 소몰이 갈 때 의 차림새이고 갈매기 벗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 그대로일세

술취하면 의복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며 흥이 나면 손을 들어 누각에 올라 달구경하네

사람들의 의관이야 겉 모습 치장하기에 바쁘지만 내 삿갓은 비 바람 가득 몰아쳐도 근심걱정 없다네


[간산]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 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 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생각도 잊었는데 해가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금강산 8]

고요한 암자에 이 내 몸 의탁하여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모두 님께 맡겼더니

외로운 봉우리에 안개 개고 초승달이 떠 올라 늙은 나무꽃이 필 때 늦봄이 오네

친구 만나 술을 드니 흥취가 무량했고 명산에서 시를 읊어 마냥 신기로웠소

선경이 따로 있나 다른 데서 찾지마소 한가롭게 사는 분네 그가 바로 신선이오


8. 영월 영월부 관아

[사적 영월부 관아 (寧越府 官衙) Yeongwol-bu Government Office]

영월 객사와 관풍헌 및 자규루는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이곳에 유배되어 노산군으로 강봉된 채 1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전해진다. 세조 3년(1457)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어 지내다가 홍수가 나게 되자 당시 영월부 객사의 동익헌이었던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침전으로 사용하였고, 자규루(당시 매죽루)에 자주 올라 임금의 자리에서 쫓겨난 어린 임금의 비통함과 애처로움이 배어 있는 시를 지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1457년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 등이 단종복위를 시도하다 발각되자 세조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사약을 내려 10월 24일 단종은 관풍헌에서 돌아가셨고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수습하여 동을지 기슭(현 장릉)에 장사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숙종 24년(1698) 단종은 복위되어 군왕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고 국가적 차원에서 장릉을 조성하였으며, 정조 15년(1791)에는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사육신 등 여러 신하들의 사판을 배향한 배식단을 설치하였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는 태조 5년(1396년)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정조 15년(1791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영월부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동익헌)은 정면 5칸이며, 객사의 서익헌은 정면 4칸, 중앙 정청은 정면 3칸, 자규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누각 건물이다. 2013년·2015년 발굴조사를 시행하여 건물지, 박석시설, 내삼문지를 비롯하여 객사 건물로부터 내삼문지에 이르는 보도시설과 월중도(보물)에 표현된 관풍헌으로부터 자규루로 연결된 보도시설이 확인됨에 따라, 영월부 관아는 조선후기 중수된 이후 현재까지 그 터와 건축물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록에 의해 단종의 역사를 품고 있는 사적(史的)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출처:문화재청


[강원도 유형문화재 자규루및관풍헌 (子規樓및觀風軒)]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의 업무를 처리하던 관청건물로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조계종 보덕사에서 포교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자규루라는 누각이 있다.

자규루는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을 때 잠시 지내던 곳이다. 단종은 이 누각에 자주 올라가 자규시를 지었다고 한다. 자규란 피를 토하면서 구슬피 운다고 하는 소쩍새를 가르키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세종 10년(1428) 군수 신권근에 의해 지어져 ‘매죽루’라 불리웠으나 단종의 자규시가 너무 슬퍼 누각이름을 매죽루에서 자규루로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많이 퇴락해 민가가 들어섰는데,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그 터를 찾아 복원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며, 옆면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출처:문화재청

 

"조선 6대 비운의 왕 단종, 영원한 휴식처"

9. 영월 장릉

[사적 영월 장릉 (寧越 莊陵) Jangneung Royal Tomb, Yeongwol]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무덤이다.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충신들이 그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키려는 계획이 밝혀져 영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단종이 죽자 후환이 두려워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를 지냈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에 대한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오게 되어, 선조 때에 이르러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을 세우게 되었다. 숙종 7년(1681)에 노산군을 노산대군으로 하였고,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이름을 장릉이라 하였다.

무덤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다. 능의 양식은 간단하고 작은 후릉의 양식을 따랐으므로 석물은 왜소하면서도 간단한 편이다. 명릉이래 만들어진 사각지붕형의 등인 장명등은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게 된다. 특히 장릉은 무덤 제도에 의해 정해진것 외에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배식단사를 설치하였다. 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이며,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이한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영월 장릉은 2009년에 조선왕릉 40기가 능원공간의 조형형식의 변화와 산릉제례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세계유산 등재 시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출처:문화재청


"단종대왕 영정"

곤룡포에 익산관을 쓰고 백마를 탄 단종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충신 추익한의 모습(운보 김기창 작)


[보호수 수령 370년 느릅나무와 장릉]

박충원 정여각, 엄흥도 정여각, 단종으로 인하여 순절하거나 희생된 충신·종친·시종 들의 위패를 공동으로 모신 충신각, 제사 지낼 때 제물을 차려놓는 배식단, 제사 지낼 때 더 물이 풍부해지는 우물 영천, 제사를 지내는 중심 건물인 정자각, 단종의 생애를 기록한 단종 비각 등이 장릉 입구에서부터 왕릉이 있는 곳까지 차례로 늘어서 있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10. 영월 주천

[주천(酒泉)]

첫범째 전설은 주천면의 망산(望山) 밑 주천 강변에 있는 ‘주천’이라는 샘이 있었는데, 예전 한때 술이 나왔던 샘이라고 한다. 인근 마을에 부인을 잃고 상심하여 마냥 술타령만 일삼는 사람이 있었다. 돈이 없는데도 아이들이게 술을 받아오라고 하여 자식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술을 받아오라고 하자 막내아이는 할 수 없이 이 샘물을 퍼담아 갖다 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맛좋게 마시고서 더 가져오도록 하였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샘물을 퍼다가 드렸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는 돈이 없는데도 아이들이 거침없이 술을 가져오는 것이 의아해서 한번은 몰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샘물을 퍼오고, 그것을 마시니 술이 아닌가. 이러한 조화를 보게 된 아버지는 마음을 고쳐먹고 술을 끊고 가정을 잘 돌보게 되었다. 그러자 그 후 부터는 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두번째 전설은 옛날 주천에는 한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항시 술이 솟아오르고 있었다고 해서 주천(酒泉)이라 불리웠다. 그런데 이 우물은 신기하게 신분이 낮은 상놈이 마시면 탁주로 변하고 신분이 높은 양반이 마시면 약주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날 낮은 신분이었던 한 젊은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다. 그 후 그는 고향인 주천으로 내려와 우물 앞에 서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도 이제는 신분이 높아졌으니 내가 이 우물을 뜨면 그 물은 약주로 변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 우물을 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젊은이의 신분은 상승되었는데도 물은 약주가 아닌 탁주였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몇 번을 거듭해서 퍼 보았으나 계속 탁주만 나왔다. 화가 난 이 젊은이는 커다란 돌맹이를 그 우물안으로 던졌다. 그 후 그 우물은 젊은이가 던진 커다란 돌맹이에 막혀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메말라 버렸다고 한다

주천 표석(술샘/망산 기슭에 자리잡은 샘물로 마을 앞 냇가의 주천석(酒泉石)이라는 돌 구유와 망산 밑에 있는 우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날 술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술샘에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출처:영월군청

 
 
 

[주천 쌍섶다리​]

섶다리는 매년 추수를 마치고 10월 말경에 만들어 이듬해 장마가 지기 전까지 다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Y자 형으로 만들어 물속에 기둥 삼아 넣고, 그 위에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은 뒤 솔가지와 흙을 덮어 만든다. 

주천 섶다리는 쌍섶다리인 데다 역사가 제법 깊다. 단종이 왕으로 복위된 것은 그가 죽은 지 240년이 흐른 조선 숙종 때였다. 영월에 단종의 능인 장릉이 조성되자 부임하는 강원도 관찰사는 꼭 장릉을 참배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천을 지나야 했다. 관찰사 행렬은 규모가 컸던지라 다리 하나로는 지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주천의 신일리와 주천리 백성들이 경쟁적으로 섶다리를 만들었다. 한편, 관찰사가 장릉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주천에 들르면 이곳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빙허루에서 바라본 주천 전경"


"충효의 상징 금사하와 호랑이"

11. 영월 의호총

[의호총]

주천면 신일리 금산 맡에 금사하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자극하여 마을에 있던 오든 사랑들이 금효자라고 불렀다. 어느 날, 금효자의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고 어머니마저 병을 얻어 쓰러진다. 금효자는 급하게 약을 구하러 달려갔지만, 장마에 물이 불어 주천강을 건너 의원이 있는 곳까지 갈 수가 없었다. 이때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금효자를 태우고 거센 물결을 가르며 강을 건너 주어 어머니를 살릴 수 있게 된다.

그 후, 금효자가 아버지의 묘소에서 시묘살이를 할 때도 커다란 호랑이는 금효자를 지켜주었고 1720년 숙종대왕이 승하했을 때도 호랑이는 금효자와 함께 망산에 올라 궁을 향해 망배하며 3년상을 모두 치룬 뒤 금효자의 집마당에 와서 그 명을 다했다. 죽은 후에도 금효자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현몽으로 나타나 지혜로운 방법을 알려주니 금효자의 집안이 날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1743년 강원도 관찰사를 보필하는 정 3품의 벼슬인 순영중군이 주천에 왔다가 이 호랑이의 충성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호랑이의 무덤에 비석을 세워주라고 명했는데 그 것이 바로 지금의 의호총이다 그 후, 사람들은 호랑이무덤과 비석이 세워져 있는 산을 금산이라 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한 금처사와 호랑이 이야기를 후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지구의 신비를 품은 거북등껍질바위"

12. 영월 문곡리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천연기념물 영월 문곡리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寧越 文谷里 乾裂構造 및 스트로마톨라이트)]

강원도 영월군 문곡리 연덕천가 절벽에 있는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약 4∼5억년 전에 생긴 오르도비스기 하부고생대 지층에 형성되어 있다. 

건열구조는 얕은 물 밑에 쌓인 퇴적물이 물 위로 나와 마를 때, 퇴적물이 줄거나 오그라들면서 생긴 틈이 그대로 굳어져 형성된 지질구조이며, 이는 이 지역이 과거에 물 밑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귀중한 학술자료가 된다.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는 지구상에 출현한 최초의 생물 가운데 하나인 단세포 원시 미생물 위에 작은 퇴적물 알갱이가 겹겹이 쌓여 형성된 퇴적구조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희귀한 지질자료이다. 

영월 문곡리의 건열구조 및 스트로마톨라이트는 당시의 퇴적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 보존가치가 매우 크다.

출처:문화재청


"스트로마톨라이트(사진 좌), 건열구조(사진 우)"

 
 

"단종의 비애를 달래준 소나무​"

13. 영월 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영월 청령포 관음송 (寧越 淸泠浦 觀音松)]

관음송은 영월의 청령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청령포는 세조 2년(1456)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서강에 우뚝 선 신선암(神仙岩)"

14. 영월 선돌

[명승 영월 선돌]

선돌은 영월 방절리 서강가의 절벽에 위치하며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갠 듯한 형상을 이룬 곳으로 높이 약 70m 정도의 입석으로 신선암(神仙岩)이라고도 불리며, 푸른 강물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다.

단종이 영월 청령포(명승 제50호)로 가는 길에 선돌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 가며, 우뚝 서 있는 것이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고 하여 ‘선돌’이 되었다고 하는 전설 등이 담겨있는 명승지이다.

출처:문화재청


"한반도를 닮다, 서강 지역 대표 경관"

15. 영월 한반도 지형

[명승 영월 한반도 지형​]

한반도를 닮아 ‘한반도 지형’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사계절마다 특색 있는 경관을 보여 주는 명승지이다.

영월 한반도 지형은 서강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 중 하나로, 평창강 끝머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하천의 침식과 퇴적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 지형이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한반도 지형"

 

"동강의 보고(寶庫)"

16. 영월 어라연 일원

[명승 영월 어라연 일원]

동강의 일부인 영월 어라연 지역은 하천지형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천혜의 보고로서 한반도의 구조운동(융기)의 증거인 감입곡류하천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며 하식애(어라연 일대의 수직절벽), 협곡(어라연 계곡), 구하도(상·중·하선암), 소, 여울, 급류 등의 지형·하천 경관 및 하천, 암반, 산림지대 등으로 형성되어 있는 식생경관과 정선아리랑 등 문화적 요소가 어우러져 천혜의 아름다움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식생경관은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강바닥 식생으로는 달뿌리풀이 우점종이며 그 외 엉겅퀴, 갈대, 패랭이, 쇠별꽃 등이 분포하고 하반림으로서 강가 경계부에는 원추리, 홑왕원추리, 덩굴딸기가 대군락을 이루고 목본으로서 갯버들, 키버들, 왕버들, 시무나무와 비술나무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림식생으로서는 소나무군락이 높은 분포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학술적 가치가 있는 식물군으로서 회양목 군락지 및 비술나무, 시무나무 등이 있고 암벽식생으로서 돌단풍, 부처손 등이 있다. 또한 어름치, 수달, 황조롱이, 원앙 등 천연기념물과 비오리 등 야생동물의 집단서식지로서 파악되고 있어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영월 어라연 일원"

 

"단종의 슬픔이 담긴, 육지 속 작은 섬"

17. 영월 청령포

[명승 영월 청령포]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출처:문화재청


"송림과 단종어소"

단종과 선비(매일 헤엄처 건너 왔다는 선비로 엄홍도로 추정한다.)

"충절 소나무"

단종어소로 고개 숙인 엄홍도 소나무

"망향탑과 노산대"

노산대(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

"단풍든 암벽과 평창강"


"청령포 금표"


"영월 엄씨 시조가 심은 천년수"

18.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영월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1,000∼1,2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29m, 둘레 14.8m이다. 처음에는 대정사(對井寺)라는 절 앞에 서 있었으나 절이 사라지고 주택이 들어서면서 마을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 나무의 원래 줄기는 죽어 없어지고 지금의 줄기는 새싹이 돋아 자란 것이라고 한다. 현재는 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나무 속에 신통한 뱀이 살고 있기 때문에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정성을 들여 빌면 자식을 낳는다는 전설도 있다. 

영월의 은행나무는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종교적·문화적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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