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의 멋

2023. 10. 12. 06:20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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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삼척"

[삼척시]

강원특별자치도 최남단에 위치한 시로 동쪽은 동해안 해안선과 북쪽은 동해시, 서쪽은 정선군과 태백시, 남쪽은 경상북도 울진군과 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산맥인 태백산맥의 동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해안선과 병행하여 남으로 뻗어 있는 지형지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대부분 고지대 산간지역으로 형성되어 있다. 태백산맥이 동쪽으로 급격히 내려오면서 동해안으로 흘러 들어가고 서쪽으로는 고원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광동댐이 위치하는 등 도처에 동류(東流)하는 많은 하천이 골고루 발달되어 있다. 지형지세는 험준한 태백산맥과 넓고 긴 해안선, 그리고 많은 항포구를 가지고 있어 깨끗한 백사장과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빼어난 천연 해수욕장, 그리고 수많은 계곡, 명산과 더불어 동굴관광의 고장, 삼척의 아름다움을 더 한층 빛내주고 있다.

서쪽으로 높은 산지와 동쪽의 긴 해안선 사이에 오십천(五十川)울 끼고 있어, 자연 경관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관광지로는수심이 얕으며, 넓고 깨끗한 백사장이 있는 삼척해수욕장, 명사십리백사장과 울창한 송림, 덕봉산 및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맹방해수욕장, 초당석회동굴, 초당저수지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골프장, 관광농장 등을 갖춘 국내 최대의 관광단지가 될 근덕면의 초당 관광지, 용화 · 장호해수욕장과 한국의나폴리라고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해안선이 있는 원덕읍의 장호 관광지가 있다.

중요 관광자원으로는 죽서루(竹西樓) · 회강정(廻江亭) · 척주동해비 · 실직군왕릉(悉直郡王陵) · 대이리 석회동굴 · 미인폭포, 환선굴 등이며, 원덕읍의 임원과 울릉도간에는 관광객을 위한 쾌속선이 다닌다.

출처:삼척시 [三陟市]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태고 자연을 간직한 아름다운 숲속 국내 최고의 대굴"

1. 삼척 환선굴

1662년 허목선생이 저술한 『척주지』에 최초 기록이 존재하는 환선굴은 약 5억 3천만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 동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회암 동굴입니다.

동굴내부에는 미녀상, 마리아상, 도깨비방망이, 옥좌대 등 여러 모양의 종류석, 석순, 석주가 웅장하게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환선굴에서 발견된 동물은 모두 47종이며, 이 중 환선장님좀딱정벌레 등 4종이 환선굴에서만 발견되거나 환선굴이 모식산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010년 4월부터 환선굴 모노레일 운행을 시작하여 좀 더 쉽게 환선굴 입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삼척시


[국가민속문화재 삼척대이리너와집 (三陟大耳里너와집) Shingled House of Daei-ri, Samcheok]

삼척시 도계읍 대이리는 삼척 신리와 더불어 화전(火田)이 성행했던 마을로 삼척시에서 가장 깊은 산골마을에 속하며, 이 집은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의 서측 산등성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현 소유주의 11대조가 병자호란(1636)때 이곳으로 피난와서 지은 것이라 한다.

너와집은 볏짚이나 기와를 얻기 어려운 강원도 산간지대에서 소나무 널쭉을 이용하여 지붕을 이은 집이다. 크기는 가로 30㎝, 길이 50㎝, 두께는 5㎝ 정도이며, 조금씩 겹쳐지게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군데군데 나무나 돌을 얹어둔다. 

1930년 무렵에는 너와의 채취마저 어려워지자 비교적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덮게 되는데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은 집은 굴피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평면은 강원도 산간지대의 특징인 겹집으로 되어 있다. 겹집은 강원도처럼 추운 지방에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방을 2열로 배치한 집으로 폐쇄적인 구조지만 겨울이 길고 추운 지방에서는 유리하다.

대문을 들어섰을 때 첫 번째 열은 가운데에 흙바닥으로 된 봉당이 있고, 왼쪽에는 외양간, 오른쪽에는 정지가 위치하고 있다. 두 번째 열은 가운데에 마루와 곡식과 주요 물건을 보관하는 도장방이 있고, 왼쪽은 사랑방, 오른쪽은 안방이 위치하고 있다. 안방과 사랑방 구석에는 관솔가지를 태워 난방과 조명의 역할을 하는 ‘코클’이 있다. 또한 지붕 양 옆면에 연기가 빠지도록 작은 구멍을 내어 놓았는데, 그 모양이 까치둥지와 비슷하다 하여 까치구멍이라고 한다.

이 집은 코클, 시렁, 뒤주 등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설비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너와집 중 가장 오래되고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강원도 산간지역 민가의 유형과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화전 – 농작물 경작을 위해 임야를 불태우고 농경에 이용하는 땅. 화전을 개척하면 그 동안에 쌓였던 부식물과 소각에 의해서 생기는 재가 풍부하므로 몇 해 동안은 작물의 생육이 양호하다.

출처:문화재청


[국가민속문화재 삼척 대이리 통방아 (三陟 大耳里 통방아) Water Mill of Daei-ri, Samcheok] 

삼척 대이리 통방아는 천연기념물 환선동굴 아래쪽의 ‘물골’이라는 곳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의 북쪽으로 형성된 ‘골마을’의 개울 남쪽에 설치되어 있다. 대이리 통방아는 일반적인 마을공용의 통방아가 아닌 개인이 제작하여 사용한 개인용 통방아로, 직경 약 5m, 총길이 4.4m의 곡식을 찧는 방아이다. 6평 남짓한 평면에 원추형으로 서까래를 세워 그 위에 참나무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잇고, 수로에서 물을 끌어다 방아시설의 끝부분에 파인 홈으로 떨어뜨리면 물의 무게로 중심축이 위·아래로 움직여 방아를 찧는다. 삼척대이리 통방아는 산간문화의 일면을 살필 수 있는 생활용구로서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지붕이 굴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출처:문화재청


2. 삼척 이사부사자공​원

신라장군 이사부의 개척정신과 얼을 이어받은 가족형 테마공원으로 동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가장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물썰매장인 터비 썰매는 가족, 친구, 연인들에게 동심의 세계를 안겨주며 여름철 야간에는 추억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사부사자공원 내 조성된 삼척 그림책나라는 그림책을 테마로 조성한 공간으로 23명의 그림책 작가가 직접 참여하여 평면적인 책의 내용을 다양한 소재와 표현기법으로 책과 새로운 만남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이사부관, 사자관, 그림책관, 독도관, 디지털북체험관 등 5개의 전시관별로 빅북 조형물, 디지털북, VR체험, 어린이 실내놀이시설과 주제별 그림책을 비치하여 어디서나 그림책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출처:삼척시


"이사부장군"

이사부장군, 장군상, 생명수

3. 삼척시립박물관

삼척시 성남동에 자리잡고 있는 삼척시립박물관은 총사업비 82억원을 들여 2000년 3월 29일에 개관되었다. 

삼척시립박물관은 5천여점의 소장유물중 약 350점의 유물을 전시실에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시청각실, 탁본체험코너, 수장고, 기획전시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역사 · 민속박물관이다.

출처:삼척시립박물관


[실직군주 이사부]

신라에서 주(州) 군(郡) 현(縣)제도를 실시한 것은 제22대 지증왕 6년(505년) 2월인데 이 때 동해안에는 유일하게 실직국(삼척)에 실직주를 설치했습니다. 이 실직주에 첫 군주로 부임한 인물이 이사부(異斯夫)였으며, 신라시대 군주(軍主)라는 이름은 이 때 처음 생긴 것입니다. 군주는 지방행정의 수장일 뿐 아니라 군사까지 총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는 지위였습니다.

실직주의 군주로 부임한 이사부의 성은 김씨이며, 신라 제17대 내물왕의 4대 손(孫)으로 이름은 태종(苔宗)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흔히 이사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부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3국 정립시대로 가던 때, 신라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3대에 걸쳐 정치. 군사. 학문의 구심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산국과 대가야 정벌을 완수했고, 진흥왕 때에는 병부령으로서 중앙정치와 군사의 실권을 장악했으며, 왕에게 아뢰어 국사(國史)를 편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출처:삼척시


[기줄다리기]

1662년(현종2)삼척 부사 허목이 관내의 많은 제방과 저수지를 만들때 가래질에 필요한 새끼줄을 힘들지 않게 만들고 전체 주민들이 참여하여 일을 쉽게 하는 수단으로 술비놀이를 시작한 것으로 이것이 삼척 기줄다리기로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삼대세우기"


"해신당"


"조수를 물리치는 영험한 비"

4. 삼척척주동해비및평수토찬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삼척척주동해비및평수토찬비 (三陟陟州東海碑및平水土讚碑)]

조선 현종 2년(1661) 때 삼척 부사를 지낸 허목(1595∼1682) 선생과 관련이 있는 2기의 비이다. 허목 선생은 성리학을 발전시켰으며 제자백가와 경서연구에 전념하였고 특히 예학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한다.

척주동해비는 정상리 육향산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정라진앞 만리도에 세워 놓았던 것을 비가 파손되자 숙종 36년(1710)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당시 이 지방은 파도가 심하여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오고 홍수가 지면 주민의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허목이 신비한 뜻이 담긴 글을 손수 짓고 독특한 필체로 비문을 새겨 이 비를 세웠는데, 신기하게도 바다가 잠잠해지고 그후로 주민들의 피해도 없었다고 한다. 문장이 신비하면서 물리치는 능력도 지녔다 하여 ‘퇴조비’라고도 불리우며, 전서체(篆書體)에서 동방의 제1인자로 불리우는 허목 선생의 기묘한 서체로 인해 더욱 유명한 비이다.

평수토찬비는 척주동해비와 조금 떨어져 있으며 동해비와 같은 의미로 세운 것이다. 중국 형산의 우제가 쓴 전자비(篆字碑)중 일부를 허목이 목판에 새겨 보관하던 것을, 고종 광무 8년(1904) 왕의 명에 의해 칙사 강홍대 ·삼척군수 정운석 등이 돌에 그대로 새겨 넣은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고려 왕조 마지막 왕의 묘​"

5. 삼척 공양왕릉

[강원도 기념물 삼척공양왕릉 (三陟恭讓王陵)]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묘로 전하는 곳이다. 

공양왕은 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폐위되었고, 태조 3년(1394)에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삼척으로 간 뒤 교살되었다.

공양왕릉은 강원도 삼척시와 경기도 고양시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고양시의 능은 조선 왕조가 인정하고, 삼척시의 능은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나 둘 다 조선시대 문헌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삼척시 왕릉에 대한 기록은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의『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의『척주선생안』이 있다. 그리고 3년마다 공양왕릉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전해지는데 임금이 유배된 곳이라 하여 궁촌, 마을 뒷길 고돌산에서 살해되었다고 하여 살해재, 왕자 석이 살았다는 궁터, 말을 매던 마리방 등이 그것이다.

삼척의 공양왕릉은 봉분이 모두 4기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기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한다.

출처:문화재청


"공양왕릉"

궁촌리 야산 양지 바른 곳에 봉분이 퇴락한 채 초라하게 서 있다.

"우리나라 가장 큰 음나무"

6. 천연기념물 삼척 궁천리 음나무

[천연기념물 삼척 궁촌리 음나무 (三陟 宮村里 음나무)]

음나무는 보통 엄나무라고 불리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만주·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연한 잎은 나물로 먹고 가시가 있는 가지는 악귀를 물리치는데 사용하였다. 옛날에는 이 나무로 6각형의 노리개를 만들어 어린아이에게 채워 줌으로써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을 ‘음’이라고 하여 음나무로 불리워졌다. 

이 음나무는 나이가 약 1,000년 정도로 추정(지정일 기준)되며 높이 18m, 둘레 5.43m의 크고 오래된 나무이다. 나무 둘레에는 돌담을 쌓아 보호하고 있는데, 담 안에 고욤나무와 뽕나무가 있고, 담 밖에는 큰고욤나무, 향나무, 소나무가 서 있다.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특히 음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나무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이 나무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매년 음력 정월과 단오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며, 단오 때는 그네뛰기, 널뛰기, 농악놀이 등 잔치를 벌인다. 

이 음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자라온 민속적 자료로서의 가치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음나무 중의 하나로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어린 음나무 가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크고 단단한 가시가 많지만, 천년을 산 음나무의 커다란 줄기는 가시가 없이 매끈하다. 작은 가지에는 아직도 어릴적 가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뾰족하고 단단한 가시가 아닌 편평하고 약간 뭉툭한 가시다.


"우리나라 유일 천연기념물 긴잎느티나무"

7. 천연기념물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95호 삼척 도계리 긴잎느티나무 (三陟 道溪里 긴잎느티나무)]

긴잎느티나무는 느티나무의 변종으로 우리 나라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흔치 않은 나무인데 일반 느티나무 보다 잎이 더 길고 좁다.

도계읍의 긴잎느티나무는 나이가 1000여 년 정도된 매우 오래된 나무로 추정되며, 높이 30m, 둘레 약 9.10m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서낭당 나무로 섬기며 행복과 평안, 번영을 기원해 왔으며, 옛날에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 피난한 적이 있어서 지금도 입학 때가 되면 합격을 빌며 치성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나무가 학교 운동장에 자리하고 있어서 다른 나무로 서낭당 나무를 바꾸려고 하자 이 나무의 노여움을 사서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한다.

도계읍의 긴잎느티나무는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나무에 영혼을 부여하여 신성시 해온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마을의 수호신, 당숲"

8. 천연기념물 삼척 갈전리 당숲

[천연기념물 삼척 갈전리 당숲 (三陟 葛田里 당숲)]

느릅나무는 우리나라, 일본, 중국에 분포하는데 추위에 강하고 생활력이 강하며, 성장속도가 빠르다. 꽃은 3월에 피며 열매는 옛날에 사용했던 얇은 동전과 닮아 유전(楡錢) 또는 유협전(楡莢錢)이라고 부른다. 삼척 하장면의 느릅나무는 약 4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지정일 기준)되며 높이 20.5m, 둘레 3.73m에 달한다. 이 나무에는 해마다 왜가리가 찾아와 새끼를 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서낭당 나무로 믿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 마다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갈전 남씨의 선조가 이 지역에 터를 잡고 이 느릅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삼척 하장면의 느릅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명칭 변경: (기존)삼척갈전리 느릅나무 에서 삼척갈전리 당숲 으로 변경.(2012.10.10 고시) (국가지정 문화재 주변에 성황당, 보호수인 졸참나무와 음나무, 단풍나무 등 기타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마을 당숲으로서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어 군락을 묶어 지정명칭을 변경하여 천연기념물을 보존 관리하기 위함.

출처:문화재청

성황당과 음나무, 단풍나무, 전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졸참나무 등으로 이루워진 당숲과 뒤쪽으로 여러그루 나무가 한그루 나무처럼 보이는 숲이 보인다.

"관동팔경 제1경"

9. 명승 삼척즉서루와오십천

[명승 삼척죽서루와오십천]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삼척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오십천에서 가장 절경지로 알려진 곳으로 죽서루에서 내려다보는 오십천 경관과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죽서루와 절벽부의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죽서루 누각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의 특이한 형태의 누 건물이며 현재 보물 제213호(1963.1.21. 지정)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오십천은 삼척시 도계읍 백병산에서 발원하여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가는 동해안에서 가장 긴 감입곡류하천으로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중생대 백악기에 생성되어 오랜 기간 하천작용으로 퇴적 변형되어 현재의 다양한 석회암지대 지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에 이르기까지 50여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은 것이라 전한다.

죽서루가 위치하는 곳은 오십천의 협곡이 끝나려 하는 부위로 오십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카르스트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태백산지와 함께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삼척 죽서루]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 말이며,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이 누각에는 율곡 이이 선생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학자들의 글이 걸려 있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주변 두타산의 푸른 숲,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 위에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죽서루 용문바위]

신라 문무왕이 사후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호국용이 오십천으로 뛰어들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이다.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


10. 삼척 해신당공원

동해안 유일의 남근숭배민속(男根崇拜民俗) 전해 내려오는 해신당 공원에는 어촌민의 생활을 느낄  있는 어촌민속전시관해학적인 웃음을 자아내는 남근조각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펼쳐지는 소나무 산책로와 푸른 신남바다가 어우러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웃음바이러스가 넘쳐나는 동해안 최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출처:삼척시


[남근숭배 문화의 삼척 해신당의 전설]

옛날 이 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 애랑과 총각 덕배가 살고 있었다. 애랑이가 마을에서 떨어진 바위섬으로 미역을 따러 간다하여 덕배가 떼배로 데려다 주고 밭일을 나갔다. 갑자기 높은 풍랑으로 파도가 일어 배를 띄울 수 없어 처녀 애랑은 덕배를 부르며 애원하다 파도에 쓸려 죽었다.

애랑이가 죽은 뒤부터 신남마을에는 고기가 잡히지 않고 바다에 나간 어부들이 해난사고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애쓰다 죽은 처녀의 한때문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던 어느날 덕배의 꿈에 나타난 애랑이의 애닯은 소원을 듣고 향나무로 남근을 깍아 애랑의 혼을 위로해 제사를 지냈다. 그 후부터 신기하게 덕배에게는 고기가 많이 잡혔다. 마을 사람들은 애랑신을 모신 해신당신수에 남근을 깍아 매달고 마을 공동으로 치성을 올리며 혼인 못한 애랑의 원혼을 달래고 풍어와 소원성취를 기원하였다.

애랑동상, 덕배동상, 애랑바위

 11. 삼척 미인폭포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한 심포 협곡 내에 위치한 비고 30m 폭포로 석회질 성분으로 인해 신비로운 비취색의 물빛이 특징이며 특히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는 장대한 물기둥과 물안개도 관찰된다. 여래사 주차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15분정도의 트레킹으로 접근할 있다.

출처:삼척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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