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아름다운 천혜의 경관, 영동 양산8경

2024. 5. 7. 06:02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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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리에서 어죽 식사 후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양산 방향으로 걸어간다. 도로 표지판에 양산 7km라 쓰여 있다.


"금강 풍경"


"버려진 그림일기"


"쓰러진 강가 옆 집"


"호탄삼거리 호탄교"


"호탄교에서 바라본 금강 풍경"


"수두리 마을표석"


"양산팔경"


"한천정과 봉황대"


"금강과 양산팔경 둘레길"


[양산팔경 제4경 봉황대]

봉황대는 양산면 수두리 들머리 양강 위에 있으며 8경 중 으뜸 가는 경치로 꼽힌다. 처사 이정인이 놀던 곳으로 누각은 없어지고 바위만 남아있다.

 

봉황대는 포구 앞 절벽위에 있던 누각인데 예전의 정자는 소실되고, 2012년 지금의 정자가 세워졌다. 봉황대 앞산은 붕화산에는 과거 통신 수단의 하나로 쓰이던 봉수대가 있었다. 

 

그 옛날 봉화대 앞으로 돌아오는 돛단배의 풍경이 아름다워 양산팔경 제 4경으로 꼽았으며, 지금도 금강변을 산책하는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출처:영동군


"봉황대서 바라본 금강 풍경"


"금강과 양산팔경 제3경 비봉산"


"한천정 오르는 계단 빗자루"


"한천정"


"한천정에서 바라본 금강과 비봉산"


"양산팔경 금강둘레길 종합안내도"


[양산팔경 제3경 비봉산]

 

정상에서의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있는 비봉산은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양산면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비봉산은 양산면 수두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높이가 460m이다. 낮은 구릉지에 속하지만 양산면에서는 비교적 높다. 

 

산세보다 정상에서의 경치가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책 삼아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양산면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비단강 숲마을의 강변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

 

출처:영동군


"봉양정"


"봉양정 현판과 자연보호 글씨"


"봉양정 아래 산책하는 노부부"


"금강과 양산들"


[양산팔경 제5경 함벽정]

 

함벽정은 봉황대의 동쪽 강변 바위에 있는 정자로 이 강변 백사장에는 물새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비봉산 낙조를 볼 수 있는 위치 때문인지 옛날 선비들이 이 곳에 모여 시를 읊고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송호리에서 금강을 따라 약 500m 올라가면 강가, 커다란 나무에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서 있는 정자가 함벽정이다. 위치가 하도 좋아 옛날부터 시 읊고 글 쓰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강론했다. 함벽정에서 보이고 들리는 경치를 ‘함벽정팔경’ 이라 해 따로 즐겼을 정도로 풍치가 탁월했다. 비록 지금은 보고 들을 수 없지만 함벽정에 올라 눈을 감고 ‘함벽정팔경’을 상상해보면 시간은 어느새 과거로 흐르고 한바탕 꿈을 꾸는 듯하다.

 

출처:영동군


"함벽정 현판"


"양산팔경 둘레길 전경"

양산팔경 제8경 용암과 송호관광지,제3경 비봉산 전경


[양산팔경 제2경 강선대]

 

양산팔경 중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곳이 바로 강선대이다. 강선대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가에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육각정자로 멀리서 보면 주변 노송들과 어울려 우아하고 고상한 멋이 흐른다. 정자 위에 서면 푸른 강물이 거칠게 부딪치는 바위 절벽이 아찔하다. 강선대는 물과 바위와 소나무가 어울려 삼합을 이룬 곳이라고도 한다. 양기(陽氣)강한 바위와 음기(陰氣)의 물을 소나무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조선의 이안눌과 <한우가>로 유명한 임제의 시가 정자 안에 걸려 있어 풍류를 더한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출처:영동군


[강선대 전해오는 이야기]

 

영동에서 서쪽으로 약 13km 떨어진 양산면(陽山面) 송호리(松湖里) 앞을 휘 돌아 흐르는 양강 물 속에 우뚝 솟아 있는 한 바위가 있으니 이 아름다운 바위를 강선대(降仙대)라 일러 온다. 일찍이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강선대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시를 남긴 이 대(대)는 오늘날 양산팔경(陽山八景)의 하나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거니와 강선대란 이름이 그야말로 신비스러운 지상의 낙원이었다.

 

하늘에 있는 선녀 모녀는 어느 화창한 초여름날 신비스러운 땅을 내려다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마마마 소녀는 어디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가서 목욕이나 하고 오렵니다.」 선녀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하기를 「보아라 저 아래 아름다운 강물 속에 소나무 우거진 석대가 솟아 있고 그 옆의 강물에 몸을 담그어 보고 싶지 않는냐-」 선녀는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 보았다. 과연 강 속에 우뚝 솟은 3십여척(약10m)되는 석대에 해 묵은 소나무가 그림처럼 솟아 있고 초여름의 강물이 햇살에 비쳐 은비늘처럼일렁이고 있었다. 선녀는 기쁨의 소리를 지르고 그곳에 내려왔다. 구름을 타고 석대에 내려 온 선녀는 주위 산천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한동안 눈을 바로 뜰 수가 없었다. 눈을 뜨고 동쪽을 보니 푸른 잎이 공중에 떠서 푸른 안개가 된 것은 천마산(天摩山)이요, 서쪽을 바라보니 공중에 가득하여 하늘을 가린 것은 묵험산이며 남쪽을 보니 오색이 하늘에 나르는 것은 비봉산(飛鳳山)이오 북쪽을 보니 눈섭같이 눈을 사이에 두고 꿈틀거리는 산은 마니산(魔尼山)이라 언덕과 산이 무르녹은 모습을 그려내어 마치 선녀가 사는 하늘과 비슷한 이 땅의 별천지에 선녀는 그만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선녀는 지금의 저 양산 송호리 강가 모래밭에 옷을 벗어 놓고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양을 강물 속에 있는 용바위가 힐끔 힐끔 훔쳐보고 있다가 어느 사이에 용바위는 선녀의 아름다운 몸매에 그만 넋을 일고 말았다. 용바위는 바위이기는 하였지만 숫용이었다. 이 숫용 바위는 목욕하는 선녀를 보더니 금새 검은 마음이 일었다. 용바위는 물 속에서 선녀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옮겨갔다. 한참 정신없이 목욕을 하던 선녀는 물 속에서 무엇이 자기쪽으로 옮겨 오고 있는 것을 눈치 채고 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커다란 용의 모양을 한 바위가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선녀는 그만 기겁을 하고 놀라 서둘러 옷을 걸쳐 입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이 바위를 강선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출처:영동군


"양산팔경 강선대 주변 전경"


[양산팔경 제8경 용암]

용암은 목욕하는 선녀를 보느라 승천하지 못하고 강가에 남게 되었다는 용암의 이야기가 있다.

 

묵묵히 양강의 물살을 견디고 있는 용암의 경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여름이면 여름대로 푸르게, 가을이면 색색이 단풍으로 강가를 화려하게 수놓는 송호관광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한 곳이라는 강선대(2景)와 목욕하는 선녀를 보느라 승천하지 못하고 강가에 남게 되었다는 용암의 이야기가 짝을 이룬다.

 

출처:영동군


"용암과 강선대"


[양산팔경 제6경 여의정]

 

여의정은 송호관광지 솔밭 바위 위에 세워놓은 정자로 만취당 박응종 선생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강선대와 마주하며 그와 버금가는 절경을 만들어 내는 정자가 여의정이다. 조선시대 때 연안부사(延安部使)를 지낸 만취당 박응종이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강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를 붙여 ‘만취당’이라 한 것을 1935년에 후손들이 다시 짓고 ‘여의정’이 라 이름을 고쳤다. 여의정을 감싼 송림은 박응종이 전원(前園)을 마련한 후 주변에 손수 뿌린 소나무 종자가 자라 가꿔진 것이다. 100년 묵은 송림이 무려 1만여 그루나 자라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송호관광지는 28만 4000㎡ 규모의 부지에 방갈로, 풀, 산책로, 놀이터 등을 갖추어 놓고 관광객들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한다.

 

출처:영동군


 "석탑, 송림, 불상"


"여의정 석탑과 불상"


"송호관광지 송림"


"말뚝박기 조형물과 송림"


"송호마을 유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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