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2024. 6. 9. 06:32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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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求禮 華嚴寺 華嚴石經) Stone Scriptures of Avatamsaka Sutra (The Flower Garland Sutra) of Hwaeomsa Temple, Gurye]

 

석경(石經)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인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다. 각황전의 안쪽 벽에는 현재 그림이 걸려 있으나, 원래는 여기에 화엄석경이 벽을 이루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경에는 네모진 돌들을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져 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석경들이 파손되었고, 색깔도 회갈색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파손된 것을 모아 지금은 약 9천여 점이 남아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로 최치원이 정강왕 2년(887)에 쓴 쌍계사 진감국사비문과 비슷한데, 당시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희귀한 석경의 대표적인 예로 주목되고 있다. 

 

이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사찰의 상징적 유물로서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후기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화엄석경관"


[지리산 대화엄사 장륙전 중건상량문]

1701년(숙종 27년)
화엄사 소장


이 중건상량문은 정유재란으로 화엄사장륙전이 불타고 그 자리에 각황전覺皇殿을 새로 세운 내력을 적은 글이다.


숙종의 비妃로 연잉군(延礽君, 뒷날 영조)을 낳은 숙빈최씨(1670~1718)등이 각황전 불사를 후원 했음을 밝히고 있어, 왕실과 화엄사의 관계를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상량문의 글과 글씨는 당대 문장으로 이름났던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썼다.

화엄석경 탁본집, 지리산 대화엄사 장륙전 중건상량문


"불멸의 화엄석경"


[화엄사와 화엄석경]


보물 제1040호 화엄석경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종찰인 대화엄사의 대표 문화재로서 남북국시대(남신라)에 조성되었다. 8세기 중엽 이후 신라 불교계는 기존의 주류 사상이었던 유식학을 대신하여 화엄학이 융성하게 되는데 이 시기 즈음해서 화엄사가 창건되고 화엄석경을 제작하였으리라 짐작되어진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돌에 새긴 것으로 영원불멸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국내에는 중국과 달리 석경이 드문데 경주 남산의 창림사지에서 출토된 법화석경과 칠불암의 금강석경, 서울 영국사지 법화석경 등이 있을 뿐이다.

구례지 지리산대화사사적


[화엄경華嚴經이란]


「대방광불화엄경」의 준 이름이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뒤에 처음으로 설하신 경전이다. 성불 과정을 주로 다루었는데 53인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52단계의 성불 경지에 올라감을 몸으로 보여준 선재동자가 널리 알려져 있으며 결론인 「보현행원품」은 따로 많이 읽히고 있다.

 

화엄석경은 구역이라 불리는 60권 34품의 진본 「화엄경」인 60화엄을 각자한 것이다.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을 따르면 여산 혜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며 이후 역경된 80화엄, 40화엄에 비해 신라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대방광불화엄경 권제2


[장륙전과 화엄석경]

 

석경은 원래 장륙전(현 각황전 자리)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정유재란(1597년)이 나던 해 8월 석주관에서 맞서 싸운 의병 및 화엄사 승병과의 전투 직후 왜군에 의해 장륙전이 소실되면서 불타 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 求禮華嚴寺華嚴石經]


보물 제1040호
남북국시대
화엄사 소장


이 석경은 「화엄경」 경전을 돌에 새긴 것으로 화엄사 장륙전 주변에 둘렀던 것이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 의해 장육전이 불타며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봉성지」에는 670년(문무왕 10) 의상이 화엄사를 중창할 때 왕명으로 3층의 장륵전을 세우고 주위에 돌에 새긴[石經] 화엄경을 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화엄석경 변상도]


변상도는 진상을 변화하여 그렸기 때문에 '변상'이라 하는데 대개 경전의 표지 뒤이자 곧 경문의 앞에 자리한다.

 

화엄석경 변상도는 연기법사가 발원한 국보 제196호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755년) 변상도 문양과 유사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불설예수시왕생칠경 변상목판


[화엄석경 이야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으로 통일신라대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새겨 보관하였다.

 

석경에는 네모진 돌들을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각황전의 안쪽 벽에 화엄석경이 벽을 이루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각황전과 화엄석경이 파괴되었고, 그러면서 화마로 인해 색깔도 회갈색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원형이 많이 훼손된 약 1만4천여 점의 유물로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화엄석경은 중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의 석경에 비해서도 서체와 조각의 정교함이 뛰어난 문화재로서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우리 나라 불교사와 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화엄석경관의 건립과 함께 복원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조사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화엄석경관 2층 카페 화장"


"카페 화장"

노고단 방향의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다.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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