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강경 해조문(解潮文)

2025. 1. 19. 07:24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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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문 | 解潮
Inscription of Tide table


지정별: 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
위치: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시대: 1860년


1860년에 제작된 암각문으로 강경읍 금강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 세로 110㎝의 음각(陰刻)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 강경포구의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과 시각, 높이를 기록한 조석표(潮汐表)이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조석표(潮汐表)는 시각의 변화만을 다루면서 물발의 세기를 언급할 뿐이었는데, 암각문의 저자 송심두(宋心斗)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원리를 전통사상에 따라 풀이하고 처음으로 만조시각(滿潮時刻)과 함께 물의 높이를 다루고, 또 그것을 계량화하여 표시하였다. 

 

이 점에서 암각 해조문은 비록 소박하지만 현대 조석표의 두 요소인 시각과 높이를 모두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조석표라 할 수 있다. 또한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 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해양사(海洋史)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조석표라 할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에 유서 깊은 포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포구에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 생산 등 해양 관련 모든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 놓은 곳은 강경포구가 유일하다.


"해조문"


[암각 해조문]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황(權鎤)이 감동하였다.

 

강경읍 금강변 옛 강경포구 옆 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 세로 110㎝의 음각(陰刻)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놓았다. 해조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땅은 바다와 더불어 떠 있으면서 기(氣)를 따라 오르내린다. 땅 위의 강물이 1에서 생겨나[生] 바다로 돌아가니, 이것이 썰물[汐]이 된다. 땅 아래의 바닷물이 6에서 이루어져[成] 강으로 들어가니 이것이 밀물[潮]이 된다. 밀물과 썰물은 십이상(十二相)의 상충(相冲)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묘(卯)와 서(西)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6의 수에 의하니 삼토(三兎)는 6×6=36이요, 삼룡(三龍)은 36에서 1×6을 감한 것이요, 삼사(三蛇)는 30에서 2×6을 감하여 18이 되니 이렇게 조수(潮水)가 감소한다. 일마(一馬)는 18에 9×6을 더한 것이요, 삼양(三羊)은 72에 8×6을 더한 것이며, 이원(二猿)은 120에 7×6을 더하니 이렇게 潮水가 증가한다. 묘(卯)·진(辰)·사(巳)에는 음(陰)이 양(陽)을 가리니 기(氣)가 축소되고, 오(午)·미(未)·신(申)에 양(陽)이 음(陰)을 가리니 기(氣)가 차오른다. 땅이 헐떡임이요, 바다가 숨을 쉼이다. 십오륙(十五六)에 나누이고, 십(十)과 일(一)에 이루어져 나아가고 물러나니 밀물이라, 썰물이라 이름 하네. 때를 따라 불어나고 줄어들며 호흡을 하여, 바다로 돌아가고 강으로 흘러들어 흐려지고 맑아지네. 경신년 여름 농와 송심두 쓰다, 감동 서항순·권황.”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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