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자랑 100가지, 조헌 전장기적비

2025. 5. 19. 06:15청주자랑 100가지/역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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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병장 조헌의 청주성 탈환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조헌 전장기적비]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조현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조헌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승병장 영규와 힘을 합쳐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왜적이 호남 일대를 차지하려 하자 승병장 영규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적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기적비는왜란이 끝난 후 숙종 36년(1710)에 비를 세웠으며 김진규가 바문을 짓고, 이수당이 글씨를 썼다. 청주성 탈환의 전말과 조헌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충청북도유형문화유산 청주시 상당구 남산로117

 

출처:청주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淸州 趙憲 戰場記蹟碑)]

조선시대 의병장인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로, 임진왜란 당시 그가 승리를 이루었던 이곳 청주에 자리하고 있다.

 

조헌은 명종 22년(1567)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는데 힘을 다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승병장 영규와 힘을 합쳐 청주성을 탈환하기도 하였다. 왜적이 금산을 중심으로 충청도 일대를 거머쥐려 하자 승병장 영규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적과 싸웠는데,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었지만 인원이 너무 적어 결국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비는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큼지막한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비몸 앞면 위쪽에는 비의 명칭을 가로로 새겼고, 그 아래에 세로로 비문을 적었다.

 

왜란이 끝난 후 숙종 36년(1710)에 비를 세웠으며, 김진규가 비문을 짓고, 이수당이 글씨를 썼다.

 

출처:국가유산청


[청주 조헌 전장기적비]

 

이 비(碑)는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의병(義兵)을 이끌고 청주성(淸州城)을 탈환한 조헌(朝憲)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조헌(1544~1592) 선생의 본관은 배천(白川), 자(字)는 여식(汝式), 호(號)는 중봉(重峯), 시호(諡號)는 문열(文烈)이다. 조헌 선생은 명종 22년(1567)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국정을 바로잡는데 헌신하였고, 학문연구에 힘써 학자로도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규대사(靈圭大師)와 합세하여 1592년 음력 8월 2일 임진란 최초의 승전인 청주성을 탈환하였다. 그 후 영규대사와 700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적과 싸워 막대한 타격을 주었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원 전사 하였다.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임진 4충신(壬辰四忠臣)의 하나로 거명되는데, 매년 청주성 탈환일에 조헌, 영규대사, 박춘무 장군과 의병들을 추모하는 추모제가 중앙공원 기적비(紀蹟碑) 앞에서 거행되고 있다.

 

이 비는 숙종 36년(1710) 현재의 서문동에 세웠던 것을 일제 때 현 위치로 이전한 것이다. 비의 규모는 높이 230cm, 폭 84cm이고, 재질은 화강암이다.

 

출처:청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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