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고마나루&먹거리

2020. 10. 10. 09:27뚜벅뚜벅 대한민국 명승/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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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곰의 슬픈 전설"

[명승 공주 고마나루]

공주 고마나루는 공주지역 금강 및 연미산을 포함한 무령왕릉 서쪽으로 전개되는 낮은 구릉지대와 금강변 나루 일대로, 공주의 태동지이자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명승지이다.

고마나루는 공주의 옛 지명으로서 ‘고마(固麻)’는 곰의 옛말이며 한자로는 ‘웅진(熊津)’이라 썼다. 고마나루를 신라 신문왕 때는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는 웅주(熊州)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940년) 공주(公州)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백제 문주왕이 웅진 천도 시 이용하였던 교통로였고 660년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군인 소정방이 백제 공격을 위해 금강을 거슬러 와 주둔했으며, 백제 멸망 후에는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던 곳으로서 백제 역사의 중심무대이자 국제적 교통의 관문이었다.

또한 금강의 수신(水神)에게 제사를 올리던 웅진단(熊津壇) 터가 남아있는 등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국가의 제사 공간이었으며, 일반 서민들의 주요 생활터이자 수상교통로로서 민중의 정서와 애환이 짙게 서려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이곳에는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에 얽힌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현재 고마나루 북쪽에 솟은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근에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고마나루는 백제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금강변에 넓게 펼쳐진 백사장과 450여주의 마을 솔밭이 금강 및 연미산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내고 있는 곳으로, 역사 문화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평가되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ferry landing is the origin of present-day Gongju, once the capital of the Baekje Kingdom (18 B.C. - A.D. 660). The ferry grounds extend from the Geumgang riverside area to the low hillocks of Yeonmisan Mountain situated to the west of the Tomb of King Muryeong (r. 501-523).

Goma, an archaic Korean word for “bear,” was transcribed into Chinese characters as Ungjin, which literally means “bear ferry.” The region was known as Ungcheonju during the reign of King Sinmun (r. 681-692) and renamed U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Gyeongdeok (r. 742-765) of Unified Silla. It was given its present name, Gongju, in 940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 founder of the Goryeo Dynasty.

The area was the major transportation route favored by King Munju of Baekje when he moved the capital southward to this area in 475. It was also the gateway for sea routes to China and Japan. In 660, the allied forces of Silla and Tang led by the Chinese general Su Dingfang advanced upstream along the Geumgang River and camped here prior to attacking Baekje. After conquering Baekje, they set up the Ungjindan Altar at this spot. The altar was used during successive dynasties from Baekje to Joseon (1392-1910) for rites to appease the water gods. The ruins of the altar still remain. A famous cave overlooks the ferry landing from the mid-slope of Yeonmisan Mountain.

A beautiful but sad legend has it that a virgin bear that lived in the cave fell in love with a woodcutter. A shrine was built near the ferry landing and rites were performed there to relieve the poor bear spirit of her lovesickness and pray for peace in the neighborhood. Once the center stage of Baekje history and a time-old base where the local population made their living, Gomanaru Ferry is also renowned for its outstanding natural scenery.

The broad sandy beach along the river and a village grove of some 450 pine trees create a delightful scene against the backdrop of Yeonmisan Mountain.

출처:문화재청

공주 고마나루


"고마나루 웅진단과 연미산"


웅진단과 수신제(웅진단 제사는 처음에는 곰에 대한 제사였으나 점차 수신에 대한 제사로 성격이 변화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웅진단 제사는 연 2회에 걸쳐 다른 산천제와 함께 한 번에 치러졌는데,『세종실록』에서는 이 제사를 곰 신이 아닌 용왕 신에 대한 제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곰에 대한 제사라고 생각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분의 증언에 따르면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웅진단에서 당굿을 드렸고 제사상에는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묵과 마를 올렸다고 합니다. 지난2011년,인근지역을 발굴조사한결과, 조선시대 웅진단건물터가 확인되었습니다.)


"금강과 공주보"


"금강과 연미산"


"연미산과 고마나루 송림"


"송림과 곰사당"


"웅신단"


"웅신단비"


"곰사당 돌 곰상 모형"


국립공주박물관 돌곰(지난 1972년, 송산리 고분군 주변 밭에서 돌 곰상이 발견되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 곰상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고마나루 솔숲에 조성된 곰사당에도 모형이 있습니다. 돌 곰상의 정확한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유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신앙적인 의미가 담긴 소품이거나 무덤에 넣기 위해 만들어진 부장품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백제 시대의 사비, 즉 현재의 부여에서 흙으로 만든 곰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여 구아리 건물터에서 발견된 흙 곰상의 크기와 재료는 돌 곰상과 다르지만 기본적인 모양이 비슷하므로 무덤에 넣는 부장품, 즉 진묘수로 보기도 합니다.)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 전설"


"산책길"

연미산에 살고 있는 외로운 곰이 님을 찿아 산속을 거닐고 있다.


행복한 오후

나무꾼과 정을 나눈 곰은 두 마리 새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움을 향한 마음"

어미곰과 새끼들이 떠난 님을 애절한 마음으로 그리워 하고 있다.


"기다림"

돌아오라는 애원을 외면하고 강을 건넌 님에 절망한 곰은 강물에 몸을 던졌다.


공주 공산성 음식특화거리 100% 메밀 막국수, 냉면집 매향


"맷돌 제분한 구수한 메밀면"

물막국수(적당히 신 동치미 육수에 대형 돌 맷돌로 간 메밀로 반죽한 메밀면을 넣는다. 툭툭 끊어질 정도는 아닌 약간의 찰기가 있는 은은한 메밀 향의 부드러운 메밀면, 살짝 짠맛의 양념장, 오이, 배 고명을 얹어낸다.)


"대한민국 명승(충청도)"

 

대한민국 명승(충청도)

[대한민국 명승] 명승이란 예로부터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로서 역사적·예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며, 자연미가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고유성·희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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