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삼절(長水三絶), 논개사당

2021. 4. 23. 05:30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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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마음"

[전라북도 기념물 제46호 논개사당 (論介祠堂)]

임진왜란 때 순국한 주논개의 초상화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투신하였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입으로만 전해 오다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수록되면서 글로도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한 『동국신속삼강행』에는 기생의 정열(貞烈)을 표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누락되었다. 이런 사실과는 관계없이 진주 고을민들은 강변에 제단을 마련하여 논개의 넋을 위로하고 국가적인 추모제전이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마침내 영조 16년(1739)부터 국가의 지원을 받아 의암 부근에서 제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고종 5년(1868)부터 가무와 함께 3일간의 대규모 추모행사를 마련하였다.

일제시대 때 중단되었다가 1954년 당대 일류화가인 김은호가 고증을 통해 논개의 초상화를 그리고 부통령인 함태영 선생이 직접 현판을 쓰면서 남산 공원에 사당을 세웠다.

1973년에는 성역화 작업이 승인되어 장수읍에 2만여 평의 대지를 마련, 사당을 이전하고 담장과 삼문을 세우고 단청까지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지금은 매년 음력 9월 3일을 장수군민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큰 규모의 제례를 올리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변영로 시인 논개 시비"


"논개사당"

논개생장향수명비(이 논개생장향수명 비는 헌종12년(1846) 논개의 출생지를 기념하기 위해 장수현에서 세운 비석이다. 당시 장수현감 정주석이 비문을 지었으며, 비문은 "호남절의록" 의 내용과 설화에 근거하여 쓰여 진 것으로 보인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파괴될 위기가 있었으나, 장수군의 젊은 청년들이 밭에 묻은 후 곡식을 심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하였다. 광복 후 비를 파내어 비각을 건립하고 비를 세웠는데, 1974년 의암사 이전 시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논개사당"


"논개사당에서 바라본 전경"


의암사 논개영정(김은호(1892~1979)가 그린 논개 초상은 친일 행적과 논개를 조선 말기~ 근대기의 짧은 저고리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 윤여환 교수가 그린 새로운 초상화로 교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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