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2021. 4. 18. 08:25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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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346호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쌓은 길이 약 1.2km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동헌이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441m)·높이 7척(약2m)이며,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638m)이고 문은 2개가 있으며, 성의 규모를 넓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영문 설명]

This town wall was built in 1417 by a military commander of Mujangjin Fort, Kim No, so that a military commander of Mujangjin can govern the village. The fortress was constructed with soil on a flat field and is 1.2km long.

Jinmuru, a southern gate of the fortress, is a two-story building consisting of three front sections and two side sections. The eastern gate site is relatively well-preserved. A moat encircling the fortress is 4m wide and 574m long, but only the vestiges are left. As for buildings in the fortress, a guesthouse and the local administration office are the only ones left. According to Munjongsillok (Annals of King Munjong), the fortress has circumference of 441m and height of 2m, and the moat has circumference of about 638m.

There are records stating that, if there were two doors, the size of the fortress should be enlarged. This town wall is important in research and study to understand the old way of life during the Joseon Dynasty.

출처:문화재청


"사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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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읍성"


"진무루(振武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고창무장객사]

이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 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우현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바로 위까지 내려와 있다. 눈썹은 초승달처럼 갸날프게 처리되어 있고 눈은 반쯤 뜨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맛배지붕 건물로 초석의 석재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우현은 정청보다 지붕을 낮게 꾸미어 건물의 격식을 낮추었다. 이 밖에 외대문 중문과 좌우량이 있었으나 남아 있지 않다. 석축에 오르 내리는 돌계단등에도 호랑이·구름무늬 등을 양각해 놓아서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건물 정면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의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 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출처:문화재청


"송사지관(松沙之館)"


"고창무장객사 돌계단 호랑이, 구름무늬, 꽃"


[무장읍성 연못]

이 연못은 2015년 발굴조사에서 우물과 함께 드러났다. 직사각형 형태로 자연석 석축으로 쌓아 만들었고, 연못 중앙부에는 사각형의 섬이 있는데, 하늘은 등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치의 사상에 따라 원래는 원형이었던 것이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보여 진다. 연지 중앙부에는 정자7의 기초로 보이는 초석이 발견되었으며 연못 내 외부를 연결하는 나무다리 흔적도 확인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발굴조사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에 복원한 것이다. 이 연못은 사두봉 전설에 나오는 용소이며, 예로부터 이곳에서 안개(용이 뿜는 김)가 솟아나와 고을을 뒤덮으면 경치도 좋고 이 기운으로 고을 사람들이 부귀를 누리게 되며, 많은 인걸이 배출되어 무장현의 세가 매우 드높았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마을의 걱정과 근심을 막고자 뱀의 머리에 해당하는 사두봉을 깎아 연못을 메웠으며, 이로 인해 무장에서 인물이 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예전 사두봉 높이만큼의 느티나무를 심고 개구리 연못을 만들어 고을이 계속해서 번영하게 했다는 비보풍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연못복원과 생태계의 자연회복]

무장현 고지도와 문현상의 기록에 의하면 무장읍성 내에는 객사 뒤편 사두봉을 중심으로 뱀의 눈처럼 좌· 우에 2개의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 읍성철폐령에 따라 성곽이 헐리고 읍성의 기능이 없어지면서 메워진 후 2004년까지 무장초등학교의 운동장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이에 2009년 연지에 대한 발굴조사울 통해 그 위치와 형태가 확인되어 2014년에 운동장의 흙을 걷어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연못 복원 후 이곳에 물이 고이자 놀라온 일이 일어났다. 100여 년간 잠들어 있던 연꽃의 씨가 발아하여 놀라운 생명력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부들과 부레옥잠 등 수 많은 수생식물들도 살아나면서 예전 무장읍성 연못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 연못이야말로 역사의 질곡에 허물어지고 찢겨졌던 옛 무장지역의 영화쓰를 다시 꽃피우고 되살리는 시발점이자 상징적인 장소라 할 것이다.)


"송덕비, 읍취루(挹翠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고창무장동헌]

고창 무장동헌은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로 당시 현감이 집무하던 곳이다. 조선 명종 20년(1565)에 세웠으며, 한때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하여 변형이 된 것을 1989년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4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전체적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출처:문화재청


"고창 무장동헌, 취백당(翠白堂)"


[사창지(司倉址)]

사창은 백성들로부터 걷은 세금을 관리하는 일종의 창고이며, 전쟁 중에는 군량미를 보관하는 중요한 군사 요층시설이다. 무장읍성 사창터는 2015년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건축물 기초유구를 중심으로 2017년 지금의 형태로 정비되었다. 사창의 외벽은 전쟁 중 불화살 등 화공에 대비하여 돌과 흙으로 쌓아 만든 화방벽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본건물을 사창으로 추정하는 증요한 근거가 되었다. 사창의 규모는 정면 14칸 측면 3칸, 총 650평방미터로 추정되며 이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사창 규모에 걸맞게 해자를 건너는 다리인 적교m시설 또한 중앙부에 마차길이 있고 양 측면에는 보행로가 있는 조선시대 최대 규모로 확인되었다. 이는 원활한 세곡운반을 위한 것으로 사창의 규모와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로 사창 건물은 곡식을 저장하고 꺼내기 용이하도록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졌고 벌레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 땅 위 일정 높이에 건물 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두봉과 느티나무 전설]

북쪽 성벽에서 읍성 중앙을 향해 남쪽으로 뻗어 오다가 객사 뒤쪽에서 우뚝 멈춘 구릉인 이곳을 사두봉이라고 한다. 이 사두봉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데 바로 성내리 사두봉과 느티나무 이야기이다. 

무장현은 동북방으로 황새의 형태인 한제산이, 읍성 안에는 큰 뱀의 형태인 사두봉이, 또 읍성 남쪽 남산(현재 영선중학교 자리)이 개구리의 형국을 이루고 있어 황새와 뱀 그리고 개구리가 가까이에 먹이를 둔 셈이어서 항상 기근이 없이 날로 번창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매번 안진머리(지금의 해리면 안산리 이상동) 장날이면 젊은이가 한 사람씩 죽어가는 기묘한 일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주를 얻으러 온 도승이 나타나 “황새는 뱀을,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니 살인이 그칠 새가 없을 것이며, 사두봉을 깎아내려야만 황새와 개구리만 남으니 싸움이 없고 살인이 그칠 것이요"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두봉을 깎아내면 차츰 옛날처럼 번창하는 기운이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현감은 도승의 말처럼 사두봉을 깎아 내리고 사두봉 좌우측 용소를 메워버렸다. 그 후 과연 장날 사람 죽는 일이 없어졌으나 무장의 기운이 없어질 것을 걱정하던 중에 도사 한 분이 지나가다가 이 말을 듣고 일러
주기를 사두봉에 나무를 심어 이 나무가 예전 사두봉 높이만큼 자라게 하고 개구리 연못을 만들면, 뱀의 먹이가 생기게 되어 무장고을은 계속 번영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었다. 현감은 그럴 듯하여 도사의 말대로 깎아내린 사두봉에 느티나무를 심고 개구리연못도 만들었다. 개구리 연못자리는 지금의 무장장터이고 객사 주변의 나무들은 그때 심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있는 느티나무는 이런 사연이 어린 전설의 살아있는 증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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