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평지성, 당진 면천읍성

2021. 5. 8. 06:44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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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전형적 평지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 당진면천읍성 (唐津沔川邑城)]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면 소재지의 거의 전역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으로 조선 초기에 쌓은 것이다.

성의 둘레는 약 1,200m이고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축조하였는데, 저수지 공사 등의 사업에서 이곳의 돌을 빼다 써서 현재는 유실된 부분이 많다. 서쪽 성벽과 남쪽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서벽의 경우 높이가 3.6m정도이다. 서벽의 안쪽 부분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탈지게 쌓았으며 바닥의 폭이 6.8m, 윗면의 너비가 2.4m이다.

성문은 4곳에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동문만 남아있고 폭은 8.8m이다. 성벽을 쌓는데 사용되었던 돌에 ‘기미년(己未年)’이라고 새긴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성을 세종 2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이 해가 기미년으로 돌에 새긴 기미년은 성을 쌓은 연대를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천읍성은 조선 초기에 쌓은 전형적인 평지성으로 조선시대의 관방(官方) 시설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문화재청


"면천읍성"


"면천읍성"


"면천읍성 남문과 장청"


면천읍성 각자성돌(500여년 전에도 공사실명제가 있었다. 면천읍성에는 읍성의 축조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각자성돌이 남겨져 있다. 각자성돌은 면천읍성 공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돌에 책임 군현의 이름을 새긴 성돌이다. 면천읍성에서 확인되는 각자성돌에는 연도, 구간 책임 군현, 축성구간 등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의 공사실명제로 공사가 끝난 후 그 구간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해당 군현에서 보수를 책임진다는 표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는 50여군의 장정들이 면천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면천읍성의 축성에 많은 군현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확인되는 각자성돌은 총 3개이다.)


서치성 각자성돌(서치성에서 확인되는 각자성돌에는 기미년 옥천시면 장육십척 사촌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기미년은 세종 21년(1493년)으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서 확인하는 축성기록과 일치한다. 옥천은 현재 충청북도 옥천으로 해당 구간부터 옥천현이 축성한 구간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읍성 서벽 각자성돌(읍성의 서벽에는 석성종면이라고 새겨진 성돌이 확인된다. 석성은 현재 충남 부여군 석성면으로 해당 군현의 축성 혼적으로 추정된다.)


서치성 끝 각자성돌(서치성 끝 지점에서 확인된 각자성돌은 기미년 옥천 종말과 기미년 결성수공 사십육척 팔촌 시면이라 새겨져 있는데 각각 옥천의 끝 지점과 결성(현재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의 첫 지점을 알려주는 성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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