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공주 갑사 대웅전

2021. 8. 11. 05:54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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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을 대표하는 통일신라시대 고찰의 주불전"

[보물 공주 갑사 대웅전 (公州 甲寺 大雄殿)]

갑사 창건의 가장 오래된 연원은 6세기 신라 진흥왕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며, 갑사가 화엄십찰의 하나로 「삼국유사」의 내용에서도 확인되어 적어도 9세기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갑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직후에 중건되어 여러 차례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온 불전이다. 17세기 기록에 의하면 금당자리라고 불리는 곳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삼국시대에 절이 창건될 때의 법당의 위치는 아니지만, 대웅전은 정유재란 이후 갑사에서 가장 먼저 재건된 건축물 중 하나로서 이후 그 형식을 대체로 유지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웅전 내부의 ‘갑사소조삼세불(보물)’이 1617년에 조성되었고, ‘갑사삼신괘불탱(국보)’은 1650년에 그려졌으며, 1659년에 「갑사사적비」가 세워지는 과정을 고려하면, 갑사 대웅전의 건립연대는 17세기 초에 지어졌음을 증명한다.

17세기 건축으로서 갑사 대웅전은 전환기 건축의 특징을 지닌다. 정면5칸, 측면3칸의 건축규모는 사례가 많지 않으며, 8척, 12척 등 간단한 비례로 구성하였고, 맞배지붕에서 정면과 배면 공포의 형식이 동일하고 등간격의 배치를 하고 있다. 이는 아직 조선 후기의 건축적 경향이 유행하기 이전의 상황을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목구조에서 휘어진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하여 새로운 미학을 탐구하는 태도 역시 이 시대에 새로 등장한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갑사 대웅전은 17세기에 크게 확장된 다포계 맞배집의 전형적인 형식을 공유하면서 조선 후기의 건축적 경향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갑사 대웅전은 연혁과 유래를 알 수 있는 각종 기록과 유물이 잘 남아 있고, 중건 당시인 17세기 다포 맞배건물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평면구성과 공포의 구성수법, 상부 가구와 닫집 등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또 대웅전 내에는 건물의 역사와 함께한 불상과 불화 등의 귀중한 소장 유물이 온전히 잘 보전되고 있다. 

정면 5칸의 비교적 큰 규모의 갑사 대웅전은 충남을 대표하는 통일신라시대 고찰의 주불전으로 17세기의 양식적 편년을 비롯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출처:문화재청


"공주 갑사 대웅전"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현존 최대(最大)ㆍ최고(最高) 7 형식 소조 불상"

[보물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ㆍ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 (公州 甲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ㆍ四菩薩立像 및 腹藏遺物)]

보물 제2076호는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ㆍ사보살입상(公州 甲寺 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ㆍ四菩薩立像)’과 복장유물로, 불보살상은 1617년(광해군 9)에 행사(幸思) 등 9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총 7존(尊)으로 구성된 대단위 작품이다. 이러한 7존의 형식을 갖춘 불상으로는 갑사 외에 ‘하동 쌍계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1378호, 1639년)과 1703년 ‘화엄사 각황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1703년) 등이 전해지고 있다. 

갑사 석가여래삼불·사보살상의 경우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7존 형식의 불상으로는 현존 최대작(最大作)이자 최고작(最高作)으로서, 진흙으로 만든 소조(塑造) 불상은 평균 높이가 2.5미터이며, 보살상 역시 2미터 이상으로 제작되어 매우 장중한 인상을 준다.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17세기 전반 대형 불상에 널리 적용된 소조기법으로서는 가장 빠른 사례에 속한다. 따라서 이 불보살상은 조선 후기 삼불상 및 사보살상 도상 및 제작기법 연구에 기준이 되는 중요한 기준작이라 하겠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17년이라는 명확한 제작시기와 행사(幸思)를 비롯한 제작자에 대한 정보가 확인되며, 2,300여명이라는 조선 후기 최대 인원의 시주자들이 참여해 제작한 시대의 역작임을 보여준다. 

수조각승 행사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석준(釋俊), 원오(元悟), 각민(覺敏)의 조각적 전통을 이어 받은 조각승으로, 이 갑사 불상은 그가 참여한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평가 할만하다. 

역삼각형의 갸름한 얼굴에 우뚝한 삼각형의 콧날에서 행사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고, 장대하고 늠름한 자세와 안정된 비례, 기백이 넘치는 표현 등에서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대형불상들에서 보이는 시대적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시주자들 역시 1630년대 금산사 중창불사를 주도한 수문대사(守文大師)를 비롯해, 현진ㆍ응원ㆍ법령 등 당대의 대표적 조각승들이 시주자로 참여해 불사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당시 조각승들의 교류와 협력, 이 시기 불교 관련 인물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크게 기여할 작품이다. 

소조관세음보살입상에서 발견된 복장유물 7건 263점 역시 처음 조성 당시의 현황에서 변형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학술적ㆍ역사적ㆍ예술적 가치가 있는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사보살입상과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필요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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