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바다, 정읍 정해마을

2021. 8. 12. 08:07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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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바다 전북 정읍 정해마을"

이 우물은 정읍시 남쪽 신정동 정해마을에 옛부터 있어왔던 정자(井字)우물로서 '큰새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마을의 지형이 배(船)의 형국으로 가정에 우물을 파면 배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리는 형태이고 배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리면 배가 침몰된다는 논리에 따라 근래까지 가정에 우물이 없으며 100여가구의 대촌(大村)에서 생활용수를 이 우물에 의존하여 왔으므로 '큰 새암'이라 명명하게 된 것이라 한다.

1973년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길 포장공사를 하면서 예전의 위치에서 우측으로 약 5m정도 이전되어 있던 것을 정읍의 상징우물로 길이 보존하고자 1994년 7월에 원래의 위치로 복원하고 주변을 정비 하였다.


정해마을 노거수 전경(버스 정류장 앞 입석이 있는 느티나무, 당줄이 쳐진 부부나무, 악수나무, 형제나무)

느티나무(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이 느티나무는 마치 나무 네 그루를 합친 것 같은 기묘한 형태로 되어 있다. 숙종 때 안국주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인 정해에 내려온 기념으로 심었다 하며, 옛날에는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나무에 새끼를 감아 마을의 평안을 기원했다 한다.)


탐진안씨(耽津安氏) 추모비와 세적비(안우(安祐)추모비, 현감 안맹의(安孟毅)추모비, 탐진안씨 세적비(耽津安氏 世蹟碑))


보호수 수령 400년 정해마을 부부나무(백제가요 정읍사의 발원지인 정촌현의 옛터인 정해마을에 3백여년동안 가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며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무를 가리켜 마을 사람들은 부부나무라고 부르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겨 오고 있다.

조선 숙종2년(1676)년에 이 고을에 사는 안윤형이란 사람이 아들 4형제가 병과에 급제 하자 큰 잔치를 열고 우물가에 기념으로 이 부부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부드럽고 자애로운 여성을 상징하는 버드나무와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남성을 상징하는 팽나무가 서로 끌어 안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이 부부나무의 형상은 마치 행상나간 남편의 무사귀가를 기다리는 백제가요정읍사 여인(망부석)의 애절한 사랑의 기운이 이 부부나무에 서려 있는 듯하다.

그후로 정해마을은 결혼하여 부부가 백년해로하고 금실이 아주 좋아 아직까지 이혼한 가정이 없다고 한다.

또한, 주변에는 그때 같이 심었다는 악수나무(팽나무·서어나무)와 형제나무(팽나무)가 있어 이웃끼리 화목하고 형제간 우애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마을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정월보름과 칠월칠석날에는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번영과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으며 오늘날 이와 같은 소문을 듣고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고 부부 사랑을 확인하려는 외부 탐방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악수나무, 형제나무, 우물"

"형제나무, 팽나무 두 그루"

"악수하는 모습의 악수나무(팽나무, 서어나무)"


샘바다우물 덮개 조성기(정해마을은 오랜 옛날부터 지형이 배(舟)의 형국으로 알려져 우물파기를 삼가하고 한 우물만 사용해 왔다. 선지자 도선국사는 삼성산을 키(舵)로 지목하여 정상 부근에 절을 지어 풍수비보를 꾀하였다. 이곳은 대동이 민족의 기운을 좌우하는 터로 우리나라 기맥을 유지 보존하여서 기의 허를 막아 국운이 융창하기를 기원하는 뜻을 모아 샘바다 우물덮개를 조성하였다.)

"새암바다 정해(井海)마을의 상징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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