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동학혁명모의탑

2021. 8. 18. 06:35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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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동학혁명모의탑]

조선 후기에 이르러 탐관오리의 수탈과 폭정이 극에 달해 사회 질서가 문란해지고, 외세의 침탈마저 노골화되니 백성은 의지할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원성이 하늘에 이르렀다. 1893년 11월, 이곳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에 전봉준 등 20명이 모여 평등사회 건설과 우국충정의 불타는 마음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세상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1894년 1월 10일 고부 봉기를 단행함으로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지평을 연 민족사의 대사건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을 널리 기념하기 위하여 1969년 4월에 '동학농민혁명모의탑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탑을 세웠다.


"보호수 수령 110년 신중리 왕버들나무"


동학혁명모의탑(고부 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와 만석보 물세 징수로 농민의 원성이 한창 높아가던 1893년 11월 초순, 전봉준 등 19명의 농민 지도자들은 서부면 죽산마을(지금의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송두호의 집에 모여 봉기를 모의했다. 그들은 봉기의 당위성을 밝히는 격문과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돌아가며 서명을 했다.

사발통문에는 고부성을 부수고 조병갑의 목을 벨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부하여 인민을 침해한 탐학한 구실아치를 징치할 것, 전주 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올라갈 것 등 4개항의 행동목표를 썼다.

사발통문이란 보통 오른쪽부터 차례로 참가자의 이름을 쓰는 일반적인 통문과 달리, 사발을 엎어놓고 그 주위로 돌아가며 둥그렇게 서명함으로써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하고 또 모든 사람이 함께 책임을 진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1894년 1월 10일에 역사적인 갑오농민전쟁의 발화점, 고부봉기가 터졌다. 1969년, 사발통문 작성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송두호의 집이 있던 정읍군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입구에 동학혁명모의탑을 세웠다.

이 마을은 송씨들의 집성촌이었는데 전봉준의 처가가 송씨였다. 마을 노인들에 따르면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이 물세를 감면해달라고 관아에 진정하러 갔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다 죽게 되자 전봉준이 그를 업고 이 마을로 왔으며, 전창혁은 이곳에서 앓다가 죽어 근처에 묻혔다고 한다.

고부봉기 이후 죽산마을은 역적의 소굴이라 하여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사람들은 잡혀가고 집들은 모두 불질러져 쑥대밭이 되었다. 농민전쟁 전에 400여 호가 살았다던 송씨는 지금 다섯 집밖에 없다. 마을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고갯마루, 예닐곱 그루의 소나무에 싸인 조촐한 탑에는 사면을 돌아가며 탑 이름과 사발통문 내용, 사발통문에 서명했던 사람의 후손들의 이름과 건립 유래가 적혀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주산마을"

조촐한 탑에는 사면을 돌아가며 탑 이름과 사발통문 내용, 사발통문에 서명했던 사람의 후손들의 이름과 건립 유래가 적혀 있다. 

사발통문(다음과 같이 격문을 사방에 널리 전하니, 군중의 여론이 솥 안의 물처럼 들끓었다. 매일 난망을 부르던 민중은 곳곳에 모여서 말하되,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백성이 한 사람이나 어디 남아 있겠나 하며 기일이 오기만 기다리더라. 이때에 도인들은 선후책을 토의하고 결정하기 위하여, 고부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 집에 도소를 정하고 매일 모여서 일의 순서를 결정하니, 그 결의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1.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것.
1.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1. 군수에게 아첨하며 인민을 수탈한 탐관오리를 징계할 것.
1. 전주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진격할 것.

이와 같이 결의가 되고 따라서 군략에 능하고 매사에 능한 영도자를...)


"무명동학군 위령탑, 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동학농민혁명 모의 장소(이 집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만석보 수세 징수 등의 침탈로 고부 사람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던 1893년 11월, 전봉준을 비롯한 20명이 송두호의 집에 모여 조병갑을 효수하고 전주감영을 함락시킨 후 서울로 올라가자는 거사계획을 세웠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사발통문이란 일반인에게 알리는 호소문이나 궐기문을 쓰고 나서, 주모자가 드러나지 않게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서명한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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