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토성, 청주 정북동 토성

2021. 8. 31. 05:48바롱이의 쪽지/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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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유지한 우리나라 유일한 토성"

[사적 청주 정북동 토성 (淸州 井北洞 土城)]

미호천변 평야의 중심에 있는 평지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만든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궁예가 상당산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는데, 견훤이 산성을 빼앗아 정북동 토성으로 짐작되는 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후삼국 쟁란기인 9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출토된 유물과 성의 위치, 주변 여건이 초기 성곽시설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의 길이는 675m이고 높이 3.5m, 폭은 8∼13m 정도 된다. 성안에서는 주거지, 기둥구멍, 길, 돌무더기 등이 확인되었고, 성 밖에서는 성을 둘러싸 보호하는 물길인 해자를 확인했다.

토성의 구조와 출토 유물들로 우리나라 초기의 토성 축조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토성이다.

[영문 설명]

This is an earthen fortification on the plains around Mihocheon Stream.

The exact date when it was built is unknown, but we could assume that the fortification was built between the late 9th century and the early 10th century when the Three Kingdoms fought one another. This is based on records from Sangdangsanseong gogeumsajeokgi (History of Sangdangsanseong Fortress) saying that Gyeon Hwon built an earthen fortification -- believed to be this fortification -- in Jeongbuk-dong here after he took over Sangdangsanseong Fortress, which was built and used as the capital by Gung Ye. Note, however, that it could be older than assumed considering its location, the excavations from the site, and its excavated facilities, which are very similar to those found in older fortresses.

The fortification is 675m long, 3.5m tall, and 8 to 13m wide. On the fortification site, old habitats, holes for the poles, roads, and pile of stone have been excavated. On the outside of the fortification, partial traces of a moat have been found.

With its structure and excavated vestiges, the earthen fortification has given quite valuable clues to research on fortifications of ancient Korea.

출처:문화재청


"정북동 토성 가는 길"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 깃발


"선인 조형물과 정북동 토성 소나무"


"소나무, 선인 조형물, 해자"


"이종국 선인, 2019"


2호 우물, 조선시대(정북동토성의 성벽 밖 해자가 돌아간 구역의 남쪽 성문과 동쪽 성문 사이의 구역에서는 지금까지 우물 4곳이 확인되었다. 1·3호 우물은 해자 안에서, 2.4호 우물은 바깥쪽 해자의 바깥경계에서 확인되었다. 우물은 모두 등근 강자갈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는데, 1호 우물은 안쪽 해자의 바닥보다 깊은 곳에 폭이 좁은 사각형으로 만든 것이고, 2~4호 우물은 둥근 형태이다. 1호 우물은 깊은 곳이어서 노출시켜 놓을 수 없다. 복원된 우물들은 당초의 원형을 그대로 두고 윗부분을 보강하였으며, 뚜껑은 안전을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오동훈 신인류-돈키호테, 2019"


"오동훈 레드 버블, 2018"


"민태연 바람 불던 냘, 2018"


"바람 불던 날, 조형물"


"김언배 자유의 혼, 1981"


"박찬걸 아폴론, 2019"


"최정우 편견없이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 2019"


"최정우 연락하다 - 그림자, 2018"


해자(해자는 성 주변을 둘러 파서 만든 도랑으로 방어와 배수 등의 기능을 겸한다. 정북동토성의 해자는 두 차례에 결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번째 해자는 성벽의 바깥을 따라 돌아가면서 파여졌다. 이 첫 번째 해자를 수리하고 만들어진 두 번째 해자는 안쪽과 바깥의 이중으로 만들었다.

정북동토성 해자의 특징은 바닥면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천천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는 해자가 물을 채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호천의 물을 일부 끌여들여 성을 돌아나가도록 배수시키는 기능을 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두 번째 해자는 토성이 방어의 기능을 잃게 되면서 폐기되어 메워졌으며, 그 메워 다져진 위쪽에 통일신라의 수레가 다니던 도로와 그 이후의 집터를 비롯한 생활유구들이 자리하게 되었음이 발굴을 통해 알려졌다.)


"선인 조형물과 소나무"


선인 조형물과 사적 청주 정북동 토성(청주 오근장동의 미호천 변에 있는 정북동토성은 사적 제 415호로 청주시 북쪽 미호천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토성이다. 커다란 제방처럼 보이는 이 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다. 

정북동토성은 형체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토성으로 둘레가 650여 미터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의 성이다. 동서남북으로 문터가 남아 있는데,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쌓았다. 이것은 적이 성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옹성의 초기 형태이다. 

성의 네 귀퉁이와 성벽중간에는 앞으로 내어쌓은 곳이 보인다. 이것은 성벽을 옆에서 감시하고, 유사시 성벽으로 달려드는 적을 옆에서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치성의 초기 형태이다.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3C 경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출처:청주시청)


남문터(남문은 좌우의 성벽이 어긋나면서 일정 부분이 겹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옹성*의 초기 형태로 여겨지는데, 성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앞뒤에서 쉽게 공격할 수 있다. 남문 밖에는 해자*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최대 너비 17m의 1차 해자에 3.5~5m 너비의 2차 해자를 덧붙여 사용하고, 마지막에는 크기가 줄어 9m 정도 너비의 해자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쟁용으로서의 성곽 기능이 없어진 9세기 이후에는 매워졌고, 적심석*을 이용한 건물터가 발굴되었다.

*옹성 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글거나 네모지게 밖으로 둘러 쌓은 시설.
*해자 7 성벽 주위에 땅을 깊게 파고 물을 채워서 적이 접근하기 어렵게 한 시설.
*적심적 취 기둥을 세우기 위해 돌을 박아 기초를 만든 등근 형태의 돌무더기.)


"청주를 Memo(利)하다! 청주를 감(感)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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