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런 역사의 기록, 서울 삼전도비

2021. 11. 19. 05:32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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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서울 삼전도비 (서울 三田渡碑)]

병자호란 때 청에 패배해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고, 청태종의 요구에 따라 그의 공덕을 적은 비석이다. 조선 인조 17년(1639)에 세워진 비석으로 높이 3.95m, 폭 1.4m이고, 제목은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로 되어있다.

조선 전기까지 조선에 조공을 바쳐오던 여진족은 명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급속히 성장하여 후금을 건국하고, 더욱더 세력을 확장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였다. 나라의 이름을 청으로 바꾼 여진족이 조선에게 신하로서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자 두 나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결국 인조 14년(1636) 청나라 태종은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조선에 쳐들어와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남한산성에 머물며 항전하던 인조가 결국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한강가의 삼전도 나루터에서 항복을 하면서 부끄러운 강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우도록 조선에 강요했고 그 결과 삼전도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이경석이 짓고 글씨는 오준이 썼으며, ‘대청황제공덕비’라는 제목은 여이징이 썼다. 비석 앞면의 왼쪽에는 몽골글자, 오른쪽에는 만주글자, 뒷면에는 한자로 쓰여져 있어 만주어 및 몽골어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2010년 3월에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위치하던 비석을 고증을 통해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영문 설명]

In the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6, a humiliating treaty of peace was forced after the defeat to Qing, and a stele commemorating the achievement of the Emperor of Qing was erected.

Built in the 17th year of the reign of King Injo, it has height of 3.95m and width of 1.4m. A tribe living north of Dumangang River had paid tribute to Joseon for the first half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enlarging its force, it established the Jin Dynasty and threatened Joseon. Later, it changed the name of the country to Qing when Joseon was under the reign of King Injo and demanded Joseon to be subject to the sovereignty of it. Thu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was cut off. In consequence, the emperor of Qing himself led a large army of 100 thousand and attacked Joseon (Manchu Invasion of Korea in 1636).

As the war went on, King Injo finally bowed to the army of Qing, which stayed at the Samjeondo ferry around Hangang River, and signed a humiliating treaty. After the war, the emperor of Qing forced Joseon to erect the stele. Mongolian letters were written on the left surface of the stele, Manchu characters on the right, and Chinese letters at the back; thus, it is an important material in studying the language of each country.

출처:문화재청


"석촌호수"


"수치스런 역사의 기록"

삼전도비(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비로, 우리나라에는 유일하게 비신의 앞뒷면에 몽골, 만주, 한자 이렇게 3개국 문자가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조선의 모일모화사상(侮日慕華思想: 일본을 멸시하고 중국의 문물과 사상을 흠모하여 따르려는 사상) 분위기를 우려한 일본에 의해 땅 속에 파묻혔다가 고종 32년(1895) 청일전쟁이 끝나면서 복구되었다. 그후 1956년 국치의 기록이라 하여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에 의해 다시 매몰되었다가 장마로 한강이 침식되면서 몸돌이 드러나자 원래의 위치에서 송파 쪽으로 조금 옮긴 지금의 자리에 되세워졌으며 1963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수치스런 역사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조차 우리의 역사로 인정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길을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 여기의 삼전도비가 아닌지 모르겠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비신없는 귀부와 새로 제작된 귀부"


비신없는 귀부의 유래(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 태종의 전승기념을 위해 비를 건립하던 중,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청나라 측의 변덕으로 원래에 만들어진 귀부가 용도 폐기되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정황을 근거로 청의 강요에 의해 귀부가 새로 제작된 것 이라고 문헌사료를 통해 검토하여 기록한다.)


"전면 비신과 이수, 후면 비신과 이수"


번영과화합 조형물과 초고층의 롯데월드타워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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