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헌릉과 인릉

2021. 11. 20. 04:38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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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獻陵과 仁陵)]

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무덤이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다. 1·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정종 2년(1400)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지와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군사제도도 개혁하였으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등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초기의 민생안정을 이룩하였다.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이며,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큰 힘이 되었다.

헌릉은 쌍릉으로 무덤 아랫부분이 병풍석으로 둘러있으며, 무덤의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랐다. 각 무덤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하였고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석인·마석을 배치하였다. 무덤 앞의 석물은 고려시대의 현릉·정릉, 조선시대의 후릉과 같이 망주석을 제외하고는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추었다.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이 있고 비각을 세웠다. 

인릉은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영문 설명]

This is the royal tomb named Heonneung where King Taejong, the third king of Joseon, and Queen Wongyeong, his wife, are buried.

As the fifth son of King Taejo, the founding father of Joseon, he helped his father establish Joseon in 1392. He crushed two instances of upheaval among the princes and ascended to the throne in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King Jeongjong in 1400. He carried out reform at the comprehensive level from the land and tax systems to the military and religion systems and stabilized the people's life. His wife, Wongyeong, was from a highly respected vassal, contributing considerably to her husband’s ascension to the throne.

The couple tombs were constructed after the tomb of King Taejo, and the bottom is surrounded with stone screen. The tombs of the royal couple are connected to each other through the surrounding twelve-sided stone balustrade and installed with the stone circle, the front stone, and other statutes such as civil officer or horse in front of them. These tombs have one more stone figure in front compared to other royal tombs. Below the hill are a t-shaped building and a pavilion for monument. In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the Great King Sejong, this place was selected as the site of royal tombs with the death of Queen Wongyeong. These tombs were ordered to stand abreast to reflect the Confucian doctrines.

출처:문화재청

헌릉


사적 서울 인릉(인릉은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 출처:문화재청)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인릉 옆 소나무"


인릉(원래 인릉은 1835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의 능인 장릉(長陵) 곁에 모셨으나 풍수상 능지가 불길하다고 하여 철종 7년(1856)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이지만 상설은 단릉과 같은 형식이라 단출하다. 다만 비각 안의 표석(標石)은 천릉(遷陵)을 했기 때문에 구표석과 신표석 2기가 있다. 흔히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 보이고 있는 망주석(望柱石) 세호(細虎)의 무늬가 왼쪽은 올라가고 오른쪽은 내려오는 좌상우하의 원칙에 맞게 선명하게 남아 있기도 하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홍살문과 헌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향로와 홍살문"


"어로와 헌릉"


[보물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는 1422년(세종 4년)에 세운 것이다. 태종 헌릉 신도비는 태조의 다섯 째 아들로 조선왕조 국기를 튼튼히 다졌던 제3대 임금 태종 이방원(李芳遠, 1367~1422년)의 생애와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비문을 새겨 세운 것이다.

비문은 태종 때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변계량(卞季良)이 지었고 전액(篆額)은 당대의 서예가 권홍(權弘, 1360~1446년)이 썼다. 다만 비문 글씨를 누가 썼는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의 서예문화와 그 경향을 연구하는 데는 손색이 없는 중요한 금석문 자료이다. 

태종 헌릉 신도비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귀부(龜趺)는 손상되었지만 이수(螭首)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새롭게 명나라의 석비 전통을 받아들이는 비석의 이수양식을 연구하는 데 기준작이 된다.

출처:문화재청

[영문 설명]

Stele for King Taejong at Heolleung Royal Tomb in Seoul was erected in 1422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 of King Taejong (Yi Bang-won, 1367-1422), King Taejo’s fifth son and third monarch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ho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efforts to lay a solid foundation for the newly established Joseon Dynasty.

The epitaph on the stele was composed by Byeon Gye-ryang (1369-1430), a renowned man of letters and official serving in King Taejong’s government. The title of the inscription was calligraphed by his contemporary, calligrapher Gwon Hong (1360-1446), but it is not known who handwrote the main body of the text. Experts regard the inscription to be an important epigraphical source for the study of calligraphy of the early Joseon Period. 

The stele features a tortoise-shaped pedestal damaged during the Imjin Waeran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a dragon head remaining in good original condition; thus providing valuable clues as to the influence of the style of Ming China stone steles on those of the early Joseon Period.

출처:문화재청

헌릉(헌릉에서는 힘이 곧 정의였을 태종의 강한 위세가 느껴질 만큼 아직도 생기가 넘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각 봉분에 병풍석을 두르고 난간석을 터서 연결한 쌍봉릉의 규모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의 석물은 조선 왕릉에 배치된 석물의 평균보다 두 배가 넘는다. 곡장(曲墻) 안에 놓인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만도 무려 16점이고 문·무인석과 석마(石馬)가 각각 8점씩 놓였으며, 망주석 1쌍을 제외하고는 각 봉분에 혼유석(魂遊石)과 장명등까지 따로따로 놓여 있어 넓은 공간이 가득 찬 느낌이다. 병풍석은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우석(隅石: 소맷돌)에는 영저(靈杵)·영탁(靈鐸)을 넣었고, 면석(面石)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 속에 수관인신(獸官人身), 즉 짐승 머리에 사람 몸을 한 12지상이 선명하며, 우석과 면석의 하단에는 영지가 조각돼 있다. 문인석의 경우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고, 무인석은 워낙 조각이 깊고 섬세하여 전투용이 아닌 의식용 갑옷을 착용한 용맹스러운 무사의 모습이 화려하게 남아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헌릉(좌측 원경왕후 민씨릉, 우측 태종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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