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21. 11. 23. 05:05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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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

종로구 세종로에 위치한 광화문광장은 크게 광화문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들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로 나뉜다. 개별 공간의 특성을 바탕으로 역사성을 부활하고 문화와 휴식의 공간으로서 기능을 갖는다. 특히 '한국의 대표광장'은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해 광장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로 항상 떠들석한 광화문 광장이지만 밤에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야경 명소가 된다. 인왕산 자락을 배경으로 600년을 내려온 서울 경관의 중심이기에 야경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얼과 역사까지도 느낄 수 있다.

출처:서울관광재단


"청계천 달팽이 조형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청계천"


"광통교, 모전교와 달팽이 조형물"


"안녕하세요 각국 언어들"


"희망촛불, 세종대왕상, 광화문, 북악산"


"청계천 조형물과 단체 수련중인 중국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종합적,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국내 최초의 국립 근현대사박물관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지상 8층 건물에 4개의 상설전시실과 2개의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강의실, 카페, 문화 상품점, 옥상 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4개의 상설전시실에는 안중근 의사 유묵, 3․1 독립선언서, 6․25 전사자 유품, 민주화 운동 관련 자료 등 약 1,500여 점의 근현대사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박물관 1층에는 2개의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대한민국의 주요한 역사적 순간과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최첨단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하여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인 '대한민국의 재발견'과 어린이를 위한 역사체험학습공간인 '우리역사 보물창고'가 마련되어 있다. 

출처:서울관광재단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 전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2층 전경"


"동포에게 고함 안중근 옥중 유묵"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 (安重根義士 遺墨 - 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

「안중근의사유묵-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安重根義士遺墨-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 중의 하나로 그의 서예이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이 유묵에는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言忠信行篤敬蠻邦可行)’(말이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행실이 도탑고 삼가함이 있으면 야만의 나라에서도 도를 실행할 수 있다)라 큰 글자로 쓰고, 왼쪽에 작은 글자로 ‘경술삼월(庚戌三月)에 여순옥중에서(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쓰다(安重根書)’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왼쪽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다.

종이의 규격은 가로 34.1㎝·세로 137.0㎝로, 4매의 종이가 연접되었다. 왼쪽 손도장은 손금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수감됐던 여순감옥의 일본인 경찰이 보관해오다가 그의 손자 야기마사즈미(八木正澄, 다이헤이요 산업주식회사 회장)가 2002년 10월 안중근의사숭모회측에 기증한 것이다.

[영문 설명]

This calligraphy is an autograph of An Jung-geun (1879-1910). An Jung-geun was born in 1879, in Haeju, Hwanghae-do.

In 1894, when he was sixteen years of age, he joined his father who set out to crush the Donghak rebel army, leading Sanpogun, on the request of the Province governor. In 1906, he founded Samheung School and also took over an existing school (Donui hakgyo), devoting much of his time to managing these schools. Later when he entered into armed struggle against the occupying Japanese, An Jung-geun launched attacks on Japanese reconnaissance squadrons. On October 26, 1909 when the train carrying Ito Hirobumi arrived at the Harbin Station, An Jung-geun shot him three times, as he was walking away from a group of Russian army officials he just finished inspecting, killing him. An Jung-geun was incarcerated in Lushun Prison and was executed on March 26, 1910. 

The ten-character text, ‘Eonchungsinhaengdokgyeong manbanggahaeng’ written in large characters at the center, states: ‘A man whose words are trustworthy, and actions pious can even go to the land of barbarians.’ The date, place and the name are written, in this order, on the left edge, followed by an ink-printed palm mark.

The sheet, measuring 34.1㎝ by 137.0, was made by joining together four smaller sheets. The palm mark shows distinctly An Jung-geun’s finger prints.

This calligraphy, made during An Jung-geun’s stay in Lushun Prison, was kept by a Japanese policeman who worked there and was later donated to the An Jung-geun Commemoration Society by the latter’s grandson (Yagima Sazumi) in October 2002.

출처:문화재청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국가안위노심초사 (安重根義士 遺墨 - 國家安危勞心焦思)]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이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6세가 되던 1894년 아버지가 감사의 요청으로 산포군을 조직하여 동학군을 진압하려고 나서자 이에 참가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학교경영에 전념하기도 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한 후 일본군 정찰대를 공격, 격파했으며,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여 그가 러시아 장교단을 사열하고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권총을 쏴 3발을 명중시켰다. 여순감옥에 수감된 후 1910년 3월 26일 형장에서 순국하였다.

여기에는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마음으로 애쓰고 속을 태움)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쓰고, 왼쪽 위편에 “증안강검찰관(贈安岡檢察官)”,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에 여순옥중(旅順獄中)에서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라 쓰여 있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의 장인(掌印: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이 먹물로 찍혀 있다. 

이것의 크기는 가로 38.2㎝, 세로 149㎝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여순 옥중에서 자신을 취조한 당시 여순 검찰청 야스오카 세이시로<안강정사랑 (安岡靜四郞)>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야스오카는 죽기 직전 그의 장녀에게 물려주었으며, 그 후 1976년 2월 11일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문 설명]

This calligraphy is one of the autographs left by An Jung-geun (1879-1910). An Jung-geun was born in 1879, in Haeju, Hwanghae-do.

In 1894, when he was sixteen years of age, he joined his father who set out to crush the Donghak rebel army, leading Sanpogun, on the request of the Province governor. In 1906, he founded Samheung School and also took over an existing school (Donui hakgyo), devoting much of his time to managing these schools. Later when he entered into armed struggle against the occupying Japanese, An Jung-geun launched attacks on Japanese reconnaissance squadrons. On October 26, 1909 when the train carrying Ito Hirobumi arrived at the Harbin Station, An Jung-geun shot him three times, as he was walking away from a group of Russian army officials he just finished inspecting, killing him. An Jung-geun was incarcerated in Lushun Prison and executed on March 26, 1910. This eight-character calligraphy that reads “Gukgaanwi nosimchosa [‘Tormented by worries about my country’]” is written in semicursive script. Along the left edge, at the top is written “Jeungangang geumchalgwan [For Prosecutor Yasuoka].” Along the right edge, at the bottom is written “Gyeongsulsamwol Yeosunokjung Daehangugin An Jung-geun geunbae [Korean national An Jung-geun, third month of Gyeongsul Year, Lushun Prison’], followed by an ink-printed palm mark.

This item is 38.2㎝ by 149㎝. As the dedication states, this calligraphy was written for Yasuoka Seishi, the prosecutor of Lushun who questioned him during his stay in prison. Shortly before his death, Yasuoka Seishi gave it to his eldest daughter who later donated it to the An Jung-geun Commemoration Society (An Jung-geun uisa sungmohoe) in Korea, on February 11, 1976.

This autograph is of high significance for the understanding of An Jung-geun’s life and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출처:문화재청


[보물 안중근의사 유묵 - 위국헌신군인본분 (安重根義士 遺墨 - 爲國獻身軍人本分)]

「안중근의사유묵-위국헌신군인본분(安重根義士遺墨-爲國獻身軍人本分)」은  안중근(1879∼1910) 의사가 남긴 유묵(遺墨)중의 하나로 그의 서예 이다.

여기에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 8자를 중앙에 행서체로 내려쓰고, 오른쪽 아래편에 “경술삼월(庚戌三月) 여순옥중에서(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삼가 경의를 표하다(安重根謹拜)”18자를 썼으며 그 밑에 안중근 의사 자신의 수장인(手掌印, 손바닥으로 찍은 도장)을 먹물로 찍고 있다. 

이것의 크기는 가로 32.8㎝, 세로 137㎝이다.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여순옥중에서 순국직전 안의사의 공판정 왕래에 경호를 맡았던 일본헌병 지바도시치<천엽십칠 (千葉十七)> 간수에게 써서 준 것이다. 지바도시치씨는 안의사의 처형 후 자진 제대하고 이 유묵을 보관하다가 그의 사망 후 부인과 조카딸이 이어 보관하였으며, 그 후 1980년 8월 23일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어 안중근의사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영문 설명]

This calligraphy is one of autographs left by An Jung-geun (1879-1910).

The eight character calligraphy that reads “Wigukheonsin guninbonbun [‘Giving one’s life to his country is a soldier’s duty’]” is in semicursive script and has information including the name, date and place written at the bottom right (Gyeongsulsamwol Yeosunokjung Daehangugin An Jung-geun geunbae [Korean national An Jung-geun, third month of Gyeongsul Year, Lushun Prison’], followed by his signature palm mark, printed in Indian ink.

The item is 32.8㎝ by 137㎝. The calligraphy was made for Provost Marshal Chiba Toshichi, who escorted An Jung-geun during his trips back-and-forth between Lushun Prison and the tribunal where he was tried. After the execution of An Jung-geun, Chiba Toshichi left the Japanese army through voluntary separation. At his death, the calligraphy was passed on to his wife, then to his niece. It was donated to the An Jung-geun Commemoration Society on August 23, 1980 and is currently in the collection of the An Jung-geun Memorial Hall. 

This autograph is valued for insights it offers into the life of An Jung-geun and the history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출처:문화재청


태극기(박영효가 1882년 수신사로 일본에 갈때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고종은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 공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도 국기로 정한다.

흰색은 밝음과 순수,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민족성을 나타내고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모서리의 4괘는 하늘, 땅, 물, 불을 나타내어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과 조화를 이룬다.)


"정부 수립, 대한민국 국호와 국가상징"


"6.25 한국 전쟁을 지원한 63개 유엔회원국"


"4.19 혁명"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책임완수"


"국내 첫 고유모델 자동차 포니, 종합제철소"


"5.18 광주민주화운동"


"대통령 집무실서 바라본 경복궁과 청와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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