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100_청주_설날 밥상

2022. 2. 2. 11:01구석구석 먹거리/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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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반(白飯)]

백반은 '흰밥'이 아니다. '백(白)'은 '희다'는 뜻도 있지만, '비다', '가진 것이 없다'는 뜻도 있다. 백반은 밥이 희어서 백반이 아니라 아무런 반찬이 없는 밥상을 말한다.

국(羹)과 밥(飯)은 한식 상의 기본이다. 여기에 밑반찬을 곁들이면 백반이다. 밑반찬은 반찬이 아니다. 밑반찬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장(醬), 지(漬), 초(醋)에 속하는 것들이다.

음식평론가인 황광해 씨는 "백반은 반찬이 없는 밥상, 밥+국+장, 지, 초의 밥상이다."라고 표현하였다. 밑반찬 중 김치, 나물무침 등은 지(漬)에 속하고 초(醋)는 식초, 장(醬)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담북장 등 모든 장류를 포함한다. 장, 지, 초는 밑반찬이지만 정식 반찬은 아니다.

여행하다 보면 가정식백반 이란 문구가 쓰인 식당을 자주 목격한다. 식당에서 손님들이 어머니가 차려준 집밥처럼 정성이 담긴 상차림을 맛보게 하려는 의미인 듯 하다. 그렇다. 백반은 수수하고 소박하다. 평범하지만 집밥처럼 친근하고 푸근하다.

좋은 백반집의 모든 음식에는 정성이 담겨 있다. 끼니마다 밥과 반찬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안동역 벽화


[바롱이의 백반 마실돌이_100_충북_청주_설날 밥상]

이젠 설날 차례는 지내지 않지만, 가족들이 먹기 위한 음식을 만든다. 설날 밥상에 오를 음식은 전날부터 만들어진다.

설 전날 초등학교 1학년인 여조카가 뽀얀 고사리손으로 할아버지와 함께 동그랑땡을 만들고 제수씨가 부친다. 할아버지와 모녀의 합작품이다.

전은 여러 식자재를 손질하고 모양을 만들고 부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이다. 만든이의 정성과 수고스러움이 흠뻑 담긴 음식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빚고 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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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 정성(精誠)을 즐기다"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정월 초하룻날이다. 설날 차례상과 세배 손님 접대를 위해 갖가지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음식들을 통틀어 세찬(歲饌)이라고 부른다. 세찬의 대표 음식은 떡국이다.

예전 설날 차례를 지낼 땐 동네 친척분들 차례상엔 떡국이 올려졌고 마지막으로 차례를 지냈던 우리 집은 떡국 대신 밥과 탕국을 준비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밥과 탕국이 설날 음식인 떡국을 대신한다.

부모님께 세배한 후, 남동생네 가족과 설날 아침을 함께 한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아 예전보다 많이 간소화됐지만 세찬의 흔적은 여전히 밥상에 남아 있다.

식구들 앉은 자리마다 갓 지은 따뜻한 밥과 말간 탕국이 한 그릇씩 놓인다. 한식 상과 차례상의 기본인 국(羹)과 밥(飯)이다.


농사지은 쌀에 잡곡을 넣어 지은 밥의 엇구수한 향이 코를 스친다. 밥 한술을 떠먹는다. 찰지고 탄력 있게 씹히며 은은한 단맛으로 입안을 감친다.

어머님이 설날 새벽에 일어나 끓이신 여릿한 갈색빛의 맑은 기름이 감도는 탕국도 맛본다.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달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과 조선간장의 웅숭깊은 짠맛은 담백함을 해하지 않으며 간도 맞추고 풍미도 더해준다.

부드러운 두부는 담백한 맛을, 노지에서 키워 땅속에 저장해둔 단단한 겨울 무는 시원함과 단맛을, 특유의 육향과 부드러운 듯 졸깃한 식감의 소고기는 은은한 감칠맛을 서로 다투지 않고 맘껏 뽐낸다. 소고기, 무, 두부란 바탕흙에 조선간장과 참기름의 유약이 발라지며 한데 어우러진다. 백자를 닮은 듯 깨끗하고 담박한 탕국이다.

전일 공들여 부친 돈저냐(동그랑땡)와 녹두전, 설날 아침에 만든 갈비찜, 나물무침, 잡채, 굴비찜, 김장김치 등이 둥그런 밥상에 차려진다. 골고루 맛을 본다. 

직접 농사 지은 녹두를 갈아 부친 녹두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다. 간 녹두와 속 재료가 서벅서벅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씹을수록 고소함이 깊다. 

두툼하게 부친 돈저냐는 담백한 두부와 고소한 돼지고기, 살강살강 씹히는 채소들이 촉촉하고 부드럽게 씹힌다. 여조카의 고사리 손맛, 제수씨의 엄마 손맛,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연륜이 담긴 손맛등에 정성이란 조미료가 더해져 맛깔남이 두 배다. 

나물무침은 식자재를 손질하고 데쳐서 소금, 깨, 고춧가루, 식초 등 조미료를 각 식자재의 맛을 살려 알맞게 간을 한다. 알맞음은 어머니의 연륜과 손맛으로 가늠한다. 

무나물은 시원하고 담담하며, 더덕·도라지무침은 매콤 새콤하고, 숙주나물 무침은 아삭아삭 고소하며, 고사리 무침은 졸깃한 듯 부드러운 식감과 특유의 향미를 낸다.

갈비찜은 핏물 뺀 돼지갈비, 버섯, 당근, 무에 갖은 양념장을 얹어 압력솥에 뭉근히 익힌다. 달큰하고 짭조름한 양념이 갈빗살과 속 재료에 잘 배였다. 고소하고 포근한 육즙 속에 보드랍게 씹히는 갈빗살, 촉촉한 무, 졸깃한 버섯 등의 식감과 맛에 입안이 풍요롭다.

잡채는 삶은 당면과 준비해 둔 양파, 버섯, 당근, 시금치 등을 큰 그릇에 담고 갖은 양념장에 버무린다. 짭짤하고 고소한 양념이 속 재료에 배인다. 각 식자재의 색감, 식감, 풍미 등이 골고루 어우러지며 입안이 기껍다.

평소 설날 밥상엔 조기찜을 올렸는데 올핸 어머님이 찜기에 찐 보리굴비가 밥상에 올랐다. 부드럽고 담백한 속살의 조기찜과는 다르게 굴비찜은 졸깃하고 간간하다. 구수한 향과 농축된 감칠맛이 그만이다.

김장 때 담은 배추김치와 섞박지도 중간중간 먹는다. 시원하고 깊어진 신맛이 기름진 맛을 달래주며 입맛의 변주를 준다.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은 덤이다. 김장김치는 밥과 밑반찬에 또다시 손이 가게 맺어 준다.

입 짧은 여조카가 골고루 음식을 맛보며 밥 한 공기를 다 비운다. 배고픔이 먼저 겠지만 자신이 만든 음식도 있고 평소와는 다르게 가족들과 함께 먹어서 그런듯하다.

식자재를 찌고, 부치고, 삶고, 끓이고, 무치는 다양한 조리법으로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 감칠맛, 담백한 맛, 고소한 맛, 구수한 맛 등을 만들어 낸다. 설날 차례 지낼 때 밥상보단 간동하지만 발품, 손품, 시간, 정성, 수고스러움이 듬뿍 담긴 밥상이다. 표현할 것은 다 표현하여 부족함이 없는, 식구(食口)의 흐뭇한 설날 밥상이다.

2020년, 2022년, 2023년 설날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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