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신복사지

2022. 4. 14. 06:07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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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신복사지]

야산이 둘러져 있는 아늑한 절터에 삼층석탑과 석불좌상만이 뚜렷이 남아 있다. 절터는 북쪽이 트인 오메가(Ω)형인데, 주변의 지세로 보아 신복사의 호시절에도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던 듯싶다. 그렇다면 절 규모에 비해 석탑과 보살상이 유난스레 크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탑 동쪽에 금당터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굴되고 있으며, 기단부에 쓰였을 큼지막한 부재와 깨어진 기와도 보인다.

삼층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안정감과 중후한 멋을 느끼게 하며, 그 앞에 탑을 향해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석불좌상은 세련되고 풍만한 조각으로 인간미가 물씬 풍겨난다. 원통형의 관을 쓰고 그 위에 다시 팔각 지붕돌을 이고 있는 독특한 형상이다.

달리 유물이 남아 있지도 않지만 특히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강릉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함, 곧 탑과 석불좌상이 어우러진 형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월정사와 한송사터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복사는 문성왕 12년(850) 범일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후 내력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범일국사는 고향인 강릉 지방에 신복사와 굴산사를 창건하였으며, 강릉땅과는 인연이 매우 깊은 인물로 보현사의 낭원대사도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심복(尋福), 또는 신복(神伏)이라 표기되어왔으나 1936년과 1937년에 신복(神福)이라고 씌어진 880년 전후의 기왓장이 발견되어 현재의 신복사(神福寺)로 그 이름이 굳어졌다.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6월 중순 강원 강릉 신복사지 가는 길 텃밭엔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강릉 신복사지]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신복 사지는 통일신라 때 범일 국사가 창건한 신복 사의 절터이다. 건물터들의 배치 양식과 남아있는 보살상의 양식을 통해 고려 초기의 양식으로 추정되며 당시 강원도 영동 지방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지이다. 절터에는 보물 제87호로 지정이 된 3층 석탑과 보물 제84호로 지정이 된 보살상이 남아있다.

삼면이 키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크지 않은 절터 안에 비교적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3층 석탑과 보살상이 있다. 절은 사라지고 남아있는 옛 절터에서 천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한 곳만 바라보며 자리를 지켜온 보살상을 보고 있으면 경건함과 함께 어떻게 사라졌을지 모를 신복 사에 대한 아쉬운 감정이 떠오른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탑과 보살상이 만들어지던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권한다.

출처:강릉시청


"보물 신복사지 삼층석탑과 석불좌상"


"보물 신복사지 삼층석탑과 석불좌상"


[보물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江陵 神福寺址 石造菩薩坐像) Stone Seated Bodhisattva at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신복사는 통일신라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가 처음 세웠다.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표현하였는데, 왼쪽 다리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를 꿇어 앉은 자세를 하고 있으며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원통형의 높다란 관(冠)을 쓰고 있는 얼굴은 풍만한데다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 복스럽게 보인다.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 어깨에서부터 걸쳐 내져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옷주름은 굵은 띠처럼 묘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둔중한 조각수법을 보인다. 이러한 자세나 조각 솜씨는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앞의 공양보살상과 유사한 것으로 같은 지방 계열의 특징으로 여겨진다. 

보살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윗면을 둥글게 하여 보살이 들어앉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바깥쪽에는 큼직큼직하게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규칙적인 간격의 옷주름과 단순해진 장신구, 대좌의 조각수법 등에서 화려한 신라적 요소가 사라지고 고려 초기의 둔화된 표현 양식이 나타나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stone seated Bodhisattva was erected at Sinboksa Temple, which was founded by National Preceptor Beomil in 850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seong of the Silla Dynasty). The statue appears to be making an offering to the Buddha, which is facing the Three-story Stone Pagoda at the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Treasure No. 87). The statue is kneeling with the left leg raised and the right leg lowered.

The Bodhisattva is wearing a tall cylindrical crown and has a large smiling face. The hair flows from beneath the crown over the shoulders, and its clothing hangs down from both shoulders naturally, following the contours of the body. The bracelet, necklace, and folds of the clothes are expressed like thick bands. Generally, a round and dull sculpting technique was used to make the statue. The posture and sculpting of the statue are similar to the style of the Bodhisattva statue presenting an offering to Buddha in front of the Octagonal Nine-story Ston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National Treasure No. 48).

It is sitting on a round lotus pedestal decorated with a double-folded lotus flower pattern.

The regular folds in the clothes, simple accessories, and pedestal design are typical of the plain style used during the early Goryeo Dynasty (i.e. late tenth century), after the more decorative elements of Silla sculptures were abandoned.

출처:문화재청


석불좌상의 얼굴 부분(탑을 향해 공양하는 모습의 석불좌상은 원통형 관을 쓰고 그 위에 다시 팔각 지붕돌을 이고 있는 독특한 형상이다. 세련되고 풍만한 느낌을 준다. 부드럽고 복스러운 얼굴에는 웃음기가 감돌고, 입은 안으로 꼭 다물어 입술선만 남아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팔각의 지붕돌(신복사터 석불좌상의 가장 큰 특징은 원통형 관 위에 이고 있는 팔각의 지붕돌이다. 눈이나 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불상 위에 지붕돌을 씌우는 것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옥외에 불보살상을 조성하면서 유행했던 것이다. 논산 관촉사나 부여 대조사의 석조보살이 각각 사각의 지붕돌을 이고 있으나, 팔각의 지붕돌을 이고 있는 예는 흔치 않다.

지붕돌 안쪽에는 각 모서리마다 세 개의 구멍이 나란히 뚫려 있는데, 모두 장식을 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통형 관과 맞닿는 지붕돌의 원 주위에는 연꽃잎이 둘러져 있어, 이 천개가 다른 석물의 지붕돌을 잘못 올려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명쾌히 풀어주고 있다. - 출처:한국문화유산답사회)


[보물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江陵 神福寺址 三層石塔) Three-story Stone Pagoda at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신복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이다.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탑은 2층의 기단(基壇)을 쌓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것으로, 각 부분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바닥돌의 윗면에는 연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의 조각을 하여 둘렀고,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眼象)을 3개씩 새겨 넣었다.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3층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역시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희미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3단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탑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보물)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강원도 내의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국보)과 비슷하여 이 지방의 특색이 아닐까 짐작된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is located at the site of the ancient Sinboksa Temple, which was founded by National Preceptor Beomil in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According to a legend associated with its foundation, towards the end of Silla (57BC- AD667), a maiden drank water from a well illuminated by bright sunlight, and soon afterwards became pregnant and gave birth to a baby. The members of her family cast out the child, but a brilliant light enveloped the baby and protected him from harm. Astonished by this phenomenon, they took the baby back and named him 'Beom'. Many years later, as a Buddhist Monk, Beom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founded two temples, Sinboksa and Gulsansa. However, other than this legend, there are no other records about their establishment.

Each part of the pagoda, consisting of a double foundation and a three-story body, is somewhat unusual. The ground stone is decorated with an upside-down lotus design, and symbolic images of the elephant’s eyes are carved on the four sides of the lower foundation. The body and roof stone of each story are hewn from one piece of stone. In general, the main body of a pagoda contains the sarira of a Buddhist Monk and the Buddhist scriptures. There is a niche in the first story. The core stones of the second and third stories are much smaller and thinner than that of the first story. There is a thin three-stepped cornice under the roof stones, the edges of which curve slightly upward.

Unusually, the upper part of the finial is almost intact, and is wider than its height, giving the whole pagoda an air of stability.

Standing directly in front of the pagoda is the Stone Seated Bodhisattva at the Sinboksa Temple Site, Gangneung (Treasure No.84), which is depicted sitting with one knee drawn up and the two hands clasped together. The pagoda’s structural similarity with the Octagonal Nine-story Stone Pagoda of Woljeongsa Temple, Pyeongchang (National Treasure No. 48) in Gangwon-do may simply be a typical characteristic of this province. The pagoda also features various typical features of stone pagodas of the early Goryeo Dynasty (918-1392), including the slate supporting stones beneath each story and between the foundation and the body, symbolic images of the elephant’s eyes carved on the foundation, and the three-stepped cornice under the roof stones

출처:문화재청


"보물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상륜부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주"


"1층 몸돌의 문비를 달았던 흔적"


"하층 기단 면석의 안상"


"귀꽃 복련이 조각된 지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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