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강릉대도호부 관아

2022. 4. 19. 05:15바롱이의 쪽지/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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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강릉대도호부 관아 (江陵大都護府 官衙) Gangneung-daedohobu Government Office]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고려 태조 19년(936)에 세워져, 83칸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객사문(국보)만 남아 있다. 객사문은 고려시대 건축물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몇 안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로, 공민왕이 쓴 ‘임영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1993년에 강릉 시청 건물을 지을 계획으로 실시한 발굴 조사한 결과, 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 관아 성격의 건물터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임영지』의 기록을 통해 이 유적의 중요성과 옛 강릉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is the site of an official guesthouse for government officers in Gangneung, housing multiple lodges where the central government officers stayed when visiting Gangneung from the G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According to records from the Joseon Dynasty, the guesthouse was built in 936, the 1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Taejo of the Goryeo Dynasty, and it had 83 rooms. Nonetheless, only Gaeksamun Gate (National Treasure), a gate of the guesthouse, has been preserved because it was not carefully protected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The hanging board on which King Gongmin of the Goryeo Dynasty wrote the name of the official guesthouse, Imyeonggwan, is still attached to Gaeksamun.

Since the excavation carried out before the construction of Gangneung City Hall in 1993, the site has been regarded as a very important building site providing crucial information about the old government office buildings from the Goryeo Dynasty to the Joseon Dynasty. In fact, the site matches the records of Imyeongji (Chronicles of Imyeong). Its historical importance as a reliable source of data for research on old government building sites makes the site a very valuable historic spot. The site also shows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Gangneung region.

출처:문화재청


[사적 강릉대도호부 관아]

대도호부(大都護府)는 지방의 큰 고을을 다스리는 관청이다. 강릉대도호부는영조 때 출판한 임영지의 기록으로 볼 때 고려초기부터 1927년 1차, 1929년 2차 강릉보통공립고등학교를 세우기 전까지 천년 이상을 보존했으나 그 때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강릉경찰서를 세웠으며, 1993년 강릉시청을 세우려고 신축기공식 후 관상수를 옮겨 심던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조사를 하고 복원하게 되었다.

국보로 알려진 ‘임영관삼문’은 강릉시 임영로 131번길 6에 위치한 이곳을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오면 된다. 임영관은 임금이 먼 곳에 있어 직접 찾을 수 없으므로 임금을 대신한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취임식, 초하루와 보름에 인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리고 중대청은 부사의 관사로 사용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1993년 강릉시가 시청사 신축을 목적으로 공사를 실시하던 중 건물지의 기단석렬 및 적심석이 확인되었고, 많은 양의 기와편 및 자기류가 확인되어 공사가 중지되었다. 이후 일대에 대한 강릉원주대학교 박물관의 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건물지가 확인되어 사적지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1998년에 정식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임영지(臨瀛誌)』의 기록에 의하면 936년(고려 태조 병신 19년) 강릉부 객사로 임영관을 창건하고 전대청 9칸, 중대청 12칸, 동대청 13칸, 낭청방 6칸, 서헌 6칸, 월랑 31칸, (행)랑, 삼문 6칸 등 총 83칸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줌과 동시에 강릉 임영관의 객사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객사문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강릉대도호부관아는 동헌권역, 칠사당권역, 임해관권역으로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동헌권역은 건물들이 모두 깨끗하고 단청의 색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동헌건물은 관람 및 체험시설이었고, 그 옆의 별당은 작은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새로 복원한 건물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

강릉대도호부관아 정문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보면 칠사당이라는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건물이 있다. 이름만 보면 신주를 모신 사당 같은 느낌이지만, 아전(지금의 지방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일곱 가지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곳이라고 해서 칠사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강릉대도호부관아의 부속건물이다.

새로 지어진 동헌의 뒤로 돌아가면 오래된 문이 하나 나오는데, 이 문을 임영관 삼문이라고도 하고 객사문이라고도 한다. 단청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화려한 모양의 나무들이 잘 짜맞추어져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 수 백년동안 서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강릉대도호부는 규모가 꽤 큰 관아였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어 옛 모습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칠사당과 삼문이 뿐이다. 임영관 건물들도 발굴 복원된지 겨우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새 건물이다.강릉대도호부를 둘러보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복원과 보수를 하면서 사용한 콘크리트 흔적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일제 치하에서 사라진 유적의 비극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출처:강릉시청


"사적 강릉대도호부 관아"


"사적 강릉대도호부 관아"


[보물 강릉 칠사당 (江陵 七事堂)]

「강릉 칠사당」은 강릉대도호부 관아 구역 내에 있으며,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건물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칠사당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고, 1726년(영조 2)에 확장‧중수하였으며, 이후 1867년(고종 4)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칠사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5량가 건물로 평면은 ‘一’자형 본체의 전면 좌측 1칸에 누마루를 설치하였고, 배면에는 1칸을 내달은 ‘┍┙’형태의 특이한 평면이다. 정면 좌측 1칸 누각은 찰미헌으로 추정된다. 칠사당의 실 배치는 중앙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좌측은 온돌방 1칸과 마루방 2칸, 누마루 2칸, 그리고 대청에서 누마루로 올라갈 수 있도록 툇마루 앞으로 대청마루보다 높은 작은 툇마루를 덧달았다. 

강릉 칠사당은 중수‧중건 시기와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 및 사건 등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점, 관아건물로 대청마루 등 다양한 마루의 높낮이를 달리하여 공간의 변화와 위계를 구분하고 있는 평면 형태와 구성, 바닷가에 위치한 지역적 특성을 나타내는 물고기 모양 화반과 삼익공의 공포 형식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 예술적,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커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출처:문화재청


"보물 강릉 칠사당"


[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 (江陵 臨瀛館 三門) Main Gate of Imyeonggwan Guesthouse, Gangneung]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다.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다.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다.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영문 설명]

This gatehouse was built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s the main entrance to the Gangneung Guesthouse, a government institution used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Periods to provide accommodations for central government officials or foreign envoys visiting the area for public duties and as a venue for rites and ceremonies regularly held to honor the ruler in the capital. 

When it was first built in 936, this Gangneung Guesthouse, called Imyeonggwan -- “Imyeong” being an old name of the city, which is now called Gangneung -- had a complex of buildings with 83 bays in all. The name of the guesthouse, “Imyeonggwan,” is hung under the front eaves of the gatehouse and is known to have been written by King Gongmin of Goryeo. The guesthouse underwent several major renovations until the early 20th century when it was turned into a public school by the Japanese colonial authority. In 1967, following the closure of the school, the guesthouse housed the local police administration of Gangneung. Currently, only this gate remains. Some of the buildings that constituted the guesthouse were moved to some scenic locations to become Oseongjeong Pavilion in Namsan, Wolhwajeong Pavilion in Geumsan, and Banghaejeong Pavilion in Gyeongpo. 

The gatehouse features a wooden structure with three kan (a unit of measurement referring to the distance between two columns) on the front and two kan on the sides, gable roof, decorative brackets placed only on top of the columns that exhibit an attractive style of entasis, and three plank doors made to close the entrances. 

The building is generally simple and charmingly austere but contains details displaying the fine carving skills of Goryeo woodworkers.

출처:문화재청


"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

 

강릉 임영관 삼문&먹거리

"고려 주심포 건축의 정수" [국보 강릉 임영관 삼문 (江陵 臨瀛館 三門) Main Gate of Imyeonggwan Guesthouse, Gangneung]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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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관, 중대청, 임영관 삼문"


"임영관(동대청, 전대청, 서헌)"


서헌(이 건물은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 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대청(이 건물은 객사의 정청이자 중심공간이다. 전대청에는 왕의 전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던 곳으로, 좌· 우측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계 높게 지어졌다.)

동대청(이 건물은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투시 망곡국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 에 의하면 문· 무관 구별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망궐행례 의식(망궐행례는 주로 외직카에 근무하는 지방관이 지방관청이나, 왕의 상징인 전패를 모신 객사에서 왕이 있는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의식이다. 지방관은 객사 중앙의 정청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 정월 초하루와, 임금이나 왕비의 탄신일,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에 궁궐을 향해 망궐레를 올렸으며, 대한제국 이후 폐지되었다.)


"임영관 현판"

임영관 삼문 문루에 있었으나 임영관 복원 후 이전한 현판으로 공민왕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진다.


중대청(이 건물은 고려 건축양식으로 전면 3칸, 촉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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