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부여 왕흥사지&부여향교

2022. 9. 24. 06:45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반응형

[충청남도 기념물 부여향교 (扶餘鄕校)]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부여향교는 언제 세웠는지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원래 부여읍 구교리의 서쪽 기슭에 세웠던 것을 18세기 중엽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앞쪽에 있고,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어 전학후묘의 구조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천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들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외의 건물로 공부방인 수선재와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 앞에는 다른 내삼문과는 달리 세 곳으로 나누고 협문을 두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많이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지금은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홍살문과 외삼문


"대성전과 명륜당"


[사적 부여 왕흥사지 (扶餘 王興寺址) Wangheungsa Temple Site, Buyeo]

부여 왕흥사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문헌에 창건(법왕 2년, 600)과 낙성(무왕 35년, 634)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중요한 사찰유적으로서 1934년 왕흥명(王興銘)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0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발굴조사 결과 목탑지, 금당지를 비롯하여 동·서회랑 및 동·서건물지, 강당지 및 서편부속건물지 등 사역 중심부의 건물지들을 확인하였으며 사역의 축대인 동서석축, 진입시설인 남북석축과 사역 동편 외곽에 백제~고려시대 기와가마터가 확인되었다.

2007년 제8차 발굴조사 중 사리공 내부에서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사리합의 3중구조로 안치된 사리기가 출토되었다. 청동사리합 동체 외면에는 상·하 양단에 2줄의 음각선을 돌리고 그 안으로 5자 6행 2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은 “丁酉年(577)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또는 사찰)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왕흥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문헌기록과 차이를 보여 왕흥사 창건시기를 밝히고 나아가 문헌 속 백제사에 대한 재검토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영문 설명]

This temple site offers a spectacular view of Sin-ri in Gyuam-myeon, Buyeo-gun or the so-called Wangeun-ri Village area including Busosanseong Fortress, Nakhwaam Rock, Goransa Temple, and Gudeurae Ferry. There are many Baekje relics scattered all over the site including fragments of earthenware and roof tiles.

One of the tile fragments is inscribed with the name “Wangheung.” Judging from the records in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and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tone remains such as square cornerstone, and oral records on the flagpole supports, Wangheungsa Temple is assumed to have been built during the Baekje Dynasty.

출처:문화재청


"왕흥사지"


"왕흥사지 출토 유물"

국립부여박물관 왕흥이 새겨진 기와 조각/왕흥사 창건 수막새, 보수 수막새/나발


[국보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扶餘 王興寺址 出土 舍利器) Reliquary from Wangheungsa Temple Site, Buyeo]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유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리기이다. 부여 왕흥사지(王興寺址)라는 출토지가 분명하고 청동제 사리합에 새겨진 명문에 의해 577년(위덕왕 24)에 제작한 사실을 알 수 있어 절대연대가 확실할 뿐 아니라『삼국사기(三國史記)』 등의 문헌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이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전반적인 형태와 세부 구조물을 주조하고 접착한 기법과 표면을 깎고 다듬는 기법 등에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어 백제 장인의 숙련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단순하고 단아한 형태와 보주형(寶珠形) 꼭지, 그 주위를 장식한 연꽃문양 등을 통해 525년 조성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銀製托盞) 등의 영향을 받아 7세기 전반 미륵사지 사리기에 조형적으로 영향을 끼친 6세기 후반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영문 설명]

Known as the oldest extant sarira reliquary in Korea, the Sarira Reliquary of the Wangheungsa Temple Site in Buyeo was found at the site of Wangheungsa Temple (Bakeje) when it was excavated in 2007 by the Buyeo Nation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The inscription on the bronze sarira case shows that the reliquary was made in 577 during the reign of King Wideok (r. 554-598) of Baekje. The origins of the temple are recorded in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1145). 

The sarira bottles of the reliquary display the typically high level of workmanship of Baekje artisans in terms of the techniques used to cast, cut, join and polish them. The vessels are also highly regarded for the delightfully simple and elegant shape of their body, the onion-shaped cintamani knob on their lid, and the lotus motif decoration on their surface. Generally regarded as a masterpiece among the sarira reliquaries of late sixth-century Baekje, this particular reliquary is a valuable link between the Baekje metalcraft represented by the silver cup and saucer excavated at King Muryeong’s tomb built in 525 and that represented by the sarira reliquary excavated from the Mireuksa Temple site, which dates back to the first half of the seventh century.

출처:문화재청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