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고란사

2022. 10. 2. 06:00바롱이의 쪽지/충청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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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사]

고란사는 고려시대 때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백제여인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지어진 절이다. 백제시대에는 이곳에 절이 아닌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 이름은 뒤쪽 바위에서 자라는 고란초에서 유래하였다. 고란사는 법당, 요사채, 범종각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의 법당 건물은 1959년 은산면 각대리에 있던 숭각사 건물을 옮긴 것이다.


고란사는 남아 있는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로 보고 있다. 특히 연꽃 무늬가 새겨진 2개의 주춧돌은 대표적인 고려의 유물이다.

출처:부여군청


"고란사"


[고란약수]

부여 부소산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에는 어린이가 된 할아버지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되돌릴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듣고 그 다음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약수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보니 할아버지는 없고 웬 갓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차했다. 도사가 한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출처:부여군청


[고란초와 고란약수]

고란사 뒤쪽 암벽에는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고란초는 백제의 아픔과 정서가 밴 식물이다. 겨울에도 죽지 않는 기상은 마치 낙화암에서 순절한 백제여인의 굳건한 절개를 닮았다. 백제 임금님이 고란사 약수를 즐겨 마셨는데, 약수를 길러올 때 절벽에 자라는 싱싱한 고란초 잎을 띄워오도록 해서 그 물을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하지만 매일 험한 부소산을 올라 고란사 뒤쪽 고란약수터에서부터 물동이를 가져오는 일이란 힘든일이었다. 그래서 다른곳에서 시간을 보내구 아무곳에서나 물을 떠다가 고란약수라 임금님께 올렸다. 하지만 고란약수의 물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님께서는 마침 고란 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부르고 약수를 떠오는 사람이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임금은 이 약수를 즐겨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걸리고 사셨다고 한다.

고란초는 압각초·삼각봉이라 불리기도 하며 고란초과의 다년생초본으로 겨울에도 죽지 않는 상록초이다. 잎의 크기는 5㎝ 정도이나 1∼3㎝의 크기도 많다. 잎은 단엽(한장)으로 계란처럼 완만하게 둥그스럽고 끝은 뾰족하다.

특히 앞면의 양쪽에 좁쌀만한 돌기가 돋아있고, 뒷면에는 황색 포자주머니가 있는게 특징이다. 생태가 까다로워 습기가 적당하게 있고 그늘이 지는 암벽의 북쪽에서 자란다. 대부분이 바위 틈새에서 발견되며 잎의 길이가 매우 작은데 비해 뿌리는 잔가지도 많고 깊숙이 들어가 있다.

절벽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이 단순히 통풍과 습기 때문인지 특별한 영양분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고란초는 우리나라 제주도·울릉도·남부지방·중부지방의 산지에 자생한다.

고란사에 많이 자라던 고란초는 바위가 계속 무너져 내리는 까닭에 수분 공급이 제대로 안되어 거의 죽고, 지금은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여군의 백마강 주변의 주장산, 천정대, 맞바위, 파진산, 성흥산 암벽에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출처:부여군청


"고란사, 선착장, 낙화암"


[조룡대]

낙화암 바로 앞 쪽의 작은 섬 모양 바위이다. 옛날 당나라 군사가 백제의 왕이 있는 성을 공략하기 위해 백마강을 거슬러 오던 중 갑자기 풍랑이 일어 진군 할 수 없게 되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수소문하여 그 연유를 알아내고는 수중바위에 겉터 앉아 백마의 머리를 미끼로 강물 속에서 백제 무왕의 화신인 청룡을 낚아 올린 곳으로써 용의 조화를 막고 풍랑을 멈추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에는 지금도 그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조룡대, 고란사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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