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손님은 칠게튀김을 먹는다?

2022. 12. 31. 10:41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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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손님과 칠게튀김"

전주에서 1박 후, 30년 지기 친구를 만나러 순천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어 술 한잔하려고 아랫장 61호명태전을 찾았다. 7시 무렵인데 아랫장은 썰렁하다. 손님들이 없다. 다행히 61호명태전집만 바다의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다. 천막 안으로 손님 두 명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천막을 들추고 얼굴을 들이밀며 여사장님께 인사를 드린다. 늘 그러듯 엷지만 푸근한 미소를 띠시며 낮은 목소리로 맞아 주신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왔습니다." 말하고 밑반찬을 챙기러 향한다. 막걸리도 냉장고에서 챙겨 간다.​

친구가 앉은 난로 옆 자리에 밑반찬과 막걸리를 내려놓고, 이 곳이 처음인 친구에게 명태전과 칠게 튀김을 추천 후 여사장님께 주문을 넣는다. 여사장님은 주문 후 번철에 명태전을 부치고 칠게를 튀기신다.

친구와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밑반찬에 막걸리로 목을 두 번 축일 무렵 하얀 온기가 올라오는 따뜻한 명태전이 먼저 술상에 오른다. 뽀얀 속살 위로 노란 달걀옷을 입고 청·홍 고추로 멋을 낸 명태전이 곱다. 막걸리 한잔 들이켜고 명태전을 맛본다. 달걀과 기름의 고소한 맛 뒤로 담백한 명태살이 부드럽게 씹힌다. 번철의 뜨겁고 묵직한 맛과 여사장님의 손맛은 숨은 맛이다.​


"어른들의 과자, 칠게 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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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온해변 둘레길에서 본 칠게다. 색이 갯벌을 닮았다.


명태전을 간장양념과 갈치속젓을 더하여 맛을 보는 사이 황금빛을 띠는 칠게 튀김이 나온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아 칠게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인다.

한 마리를 입속으로 넣는다. 치아에 씹힌 칠게는 이내 고막을 스쳐 뇌로 전달된다. 바삭함이 먼저인지, 고소함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몇 마리를 더 씹으며 음미해본다. 고소함 뒤로 여릿한 내장의 쓴맛, 부드러운 속살의 맛, 껍질의 거친 맛, 맛배기의 감칠맛 등 복잡한 맛이 뒤섞인다. 칠게는 작지만 진한 바다의 풍미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어른들의 과자는 어른들의 음료를 부른다. 그렇게 냉장고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아진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무렵 여사장님이 조용히 오시며 올해 마지막 칠게 튀김이라 말씀하신다. 칠게가 갯벌 깊게 들어가서 내년 3월은 돼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냉동 칠게도 있지만 여사장님은 사용하지 않는다. 여사장님의 원칙은 좋은 맛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이란 말에 인간의 뇌는 간사하게도, 방금 전에 먹던 맛인데 다름을 느끼려한다. 여사장님, 오랜 친구와 함께한 올해 마지막 칠게 튀김은 마음에 남을 것이다. 좋은 음식은 내장이 기억하고, 좋은 사람들은 가슴이 기억하듯이.

한 시간 넘게 친구와의 술자리가 이어진다. 옆자리 손님들도 가시고 우리는 마지막 손님이 된다. 시장에 손님들이 없으니 여사장님도 마무리하셔야 한다. 여사장님과 연말 인사를 나누고 아껴 먹던 칠게 튀김을 싸서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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