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기상박물관

2023. 1. 11. 05:02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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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기상박물관]

국립기상박물관은 기상관측 역사부터 현대 기상기술발전까지 우리나라 기상과학문화의 역사와 우수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1441년 세계 최초로 표준화된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고, 350여 개소에 달하는 전국적인 기상관측망을 구축하여 관측결과를 조선왕조실록에 기록하는 등 전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우수한 많은 기상유물과 기상과학문화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국에 600여대의 지상관측장비가 설치되어 기압, 기온, 바람, 강수 등을 자동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기상위성, 해양기상부이, 기상레이더, 레윈존데 등의 관측장비를 통해 실시간으로 관측한 기상자료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 슈퍼컴퓨터를 활용하여 수치예측 자료를 생산하며, 전국 예보관들이 전문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의견을 교환하여 일기예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국립기상박물관은 우리의 우수한 기상과학문화를 보존하고 가치를 재해석하여 기상문화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과 함께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기상과학문화의 역사 속에서 기상문화의 전통과 미래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국립기상박물관은 기상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이루어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제1전시실 하늘을 섬기다]

조선시대 이전의 기상관측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삼국시대 이래 측후활동의 흔적을 삼국유사, 삼국사기, 고려사 등 고문서를 통해 알아본다. 고대부터 시작된 빗물 측정방식인 우택(雨澤)을 통해 정확한 기상관측의 필요성을 전달한다. 또한 민간에서 날씨의 영향을 받은 세시풍속, 농사법 등 기상 문화를 기록으로 전시하고 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조선 이전, 하늘을 살피다"


[우택 雨澤]

‘비의 은혜’를 뜻하는 우택은 전통사회에서 비를 측정하는 방식 또는 비가 내리는 자연현상 그 자체를 가리킨다. 강우 측정 방식으로써 우택은 비 온 날 호미나 쟁기의 날이 땅에 들어가는 깊이를 재서 비가 온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우택보고(雨澤報告)는 농사 현황을 보고하는 기간에 해당하는 춘분 부터 첫서리가 내리는 날까지 이어졌다. 언제 비가 내렸는지, 얼마나 내렸는지, 이후 농사는 어땠는지 등을 상세히 알렸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우택과 더불어 농사가 되어가는 형편을 뜻하는 농형(農形)은 하지夏至 이후부터 입추(立秋) 전까지 관보(官報)인 ‘조보(朝報)’에 내도록 했고 첫서리도 알리게 했다. 그러나 땅의 성질이나 측정하는 사람에 따라 측정값이 달랐다. 진흙이 많은 땅은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꼬챙이가 조금밖에 들어가지 않았고, 모래가 많은 땅은 비가 조금만 와도 꼬챙이가 깊숙이 들어갔다. 같은 밭이라도 김매기 여부에 따라 측정값이 달랐다. 세종대에 도량형이 정비되고 측우 제도가 마련된 배경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혼란 속에서 측우기와 관측 자료 상당수가 사라지게 된다. 세종 대의 측우 제도가 흔들리게 된 이때 다시 우택이 등장했다. 측정 기준이 보다 명확해져, 호미의 한 날은 ‘1서(鋤)’, 쟁기의 한 날은 ‘1리(犁)’로 정했다. 영조 대에 새로이 측우기가 제작되었지만 군·현 단위에서는 이후로도 강우량을 측정하는 데에 우택을 적극 활용했다.


[제2전시실 하늘을 섬기다]

과학적 강우측정기인 측우기의 소개와 도성과 한양, 전국으로 펼쳐진 조선의 강우 측정활동을 전달하는 공간이다. 측우기의 강우량을 측정하는 방식등 측우기의 우수성과 가치를 영상으로 설명한다. (국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국보)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보물) 관상감 측우대를 전시하고 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측우기, 과학으로 접근하다"


[국보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公州 忠淸監營 測雨器)]

조선시대 측우제도를 유일하게 증명하는 이 측우기는 바깥면과 바닥면에 제작연도, 설치장소, 담당직급, 크기와 무게가 음각 글씨로 새겨져 있다. 이 측우기의 제작시기는 1837년(헌종3)이지만 측우기가 발명된 세종24년(1442) 기록에 나와 있는 크기와 동일하고, 현대적 정밀측정 조사를 통해 세종조의 척도를 따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이 측우기가 세종조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측우기는 표준화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금영(錦營)’이라는 조선시대 충청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에 설치되었으나 현재 측우대는 없고 측우기만 남아있다. 1915년 조선총독부 초대 관측소장인 와다유지(和田雄治)에 의하여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71년 국내로 반환된 후 기상청에서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원통형의 3개단으로 분리되며, 주물성형 후 바깥면을 도구로 깎은 흔적이 남아있다. 각 단의 상부는 미세하게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아 서로 끼워 맞출 수 있고, 대나무 마디처럼 도톰한 접합부는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여 기형(器形)의 변형을 방지하고 있다. 측우기의 제일 윗부분의 둥근 입구는 빗물이 튕겨나감을 막고 있는데 현재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추천하는 측우기의 세부 구조, 크기와 거의 일치한다. 이 측우기는 동합금으로 제작되었으나 자연발생 녹(파티나)가 전면에 발생하여 짙은 초록색이 되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관상감 측우대와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보물 관상감 측우대 (觀象監 測雨臺)]

세종 23년(1441)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라 제작시기를 조선초기로 추정하고 있으나, 다른 기상관측유물과는 달리 명문이 없어 제작시기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1970년대 서울 매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견되어 1978년 기상청으로 옮겨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매동초등학교는 1934년까지 경복궁내 대루원(待漏院) 금부직방(禁府直房) 터에 위치하였는데, 이곳은 고종 초에 경복궁을 재건한 이후 북부 광화방(廣化坊)에 있던 관상감이 이전한 곳이다. 이후 학교를 현재 위치로 이전할 때 교정에 있던 측우대 유물도 함께 가져왔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동궐도(1828-1830년 제작)의 수강재(壽康齋) 근처에 놓인,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직육면체의 측우대와 형태가 흡사하다.

측우대 윗면에는 측우기가 놓였던 직경 17.2cm, 깊이 6cm의 구멍이 파여 있다.

한양도성이나 궁궐 건축물에 사용된 화강암과 재질이 비슷하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국보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大邱 慶尙監營 測雨臺)]

현존하는 측우대 총 5점 중 가장 이른 시기인 영조 46년(1770)에 제작되었다. 1441년부터 시작된 강우량 측정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200여 년간 중단되었으나, 영조대에 이르러 세종대의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할 때 제작되었다. 이 측우대 표면에는 이 돌받침의 용도가 ‘측우대’라는 점과 이 측우대의 제작연도를 보여주는 음각 글씨가 앞뒷면에 새겨져 있다. 

측우대의 크기는 영조실록에 공식화되었는데 포백척으로 1자, 너비는 8치, 돌받침 위에 둥근 구멍의 깊이는 1치로 되어있다. 이는 15세기 세종시대의 제도를 따라 측우기와 측우대 제도를 마련하였고, 기존 전례가 지속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일제강점기 기상학자 와다유지(和田雄治) 기록에 따르면 이 측우대는 경상감영의 선화당 앞뜰에 설치되어 있다가 조선총독부 기상관측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기상청에서 보관하였고, 현재는 국립기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화강암의 일종인 사암으로 제작되었다. 직육면체 형태로 상단 윗면에 측우기가 놓여지는 둥근 구멍이 가운데에 파여 있다. 측우대 표면에는 6․25동란의 총탄 흔적이 남아있다. 제작시기와 크기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증명되는 이 측우대는 ‘공주 충청감영 측우기’ 와 함께 귀중한 우리 과학문화 유산이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민족의 과학적 유산, 국보 측우기와 측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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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척과 포백철"


[새로운 청사의 증축과 기존 청사의 변경]

1939년 청사 증축을 위해 마련한 설계도면 가운데 평면도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기존청사건물이다. 증축한 청사는 1932년에 건립한 기존 청사의 동쪽에 면하여 연장하는 방식으로 계획했다. 이를 위해 먼저 기존 청사 벽면에 낸 아치형 창 3개소를 벽돌로 메웠다. 메워진 벽에 면하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계단 뒤편은 기존 청사의 벽을 뚫어 1층에서 두 청사를 연결하는 문을 설치했다.


[제3전시실 다른 하늘을 만나다]

조선이 개항으로 근대 기상기술을 맞는 공간으로서, 서양의 기상원리를 이해하는 서적들과 근대 측후도구를 소개한다. 또한 전국 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기록과 근대 일기도를 전시하여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기상관측 활동을 위한 기반구축을 전달하고 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하늘을 다르게 보다"


"기록에서 통계로"


"자동기상관측장비(AWS)와 백엽상"


[제4전시실 하늘을 가까이 하다]

기상관측장비와 관측, 예보 등 기상업무 전반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며 현대 기상기술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수치예보모델링 등 첨단화된 기상기술의 도입으로 오늘날의 날씨 예보 생산과정을 전달하고 실시간 인공위성, 레이더 등 기상데이터 영상을 전시하고 있다.

출처:국립기상박물관


"예보관, 내일을 예측하다"


[서울 기상관측소의 옛 부재]

서울기상관측소는 1932년 건립된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기상의 기준이 되는 장소다. 기상관측소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기상 관측의 변화에 따라 상당 부분 고치고 멋대야 했다. 관측소의 증·개축은 변화하는 관측 여건에 대응한 결과로 한정된 공간에서도 관측과 기록의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한 노력을 보여준다. 복원공사를 진행하며 수습한 건립당시의 부재와 고치고 덧댄 흔적이 남은 부재 상당수를 보존하게 된 이유다.


"서울 기상관측소의 옛 부재"


"서울 기상관측소의 옛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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