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대표 국립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2023. 1. 24. 06:15바롱이의 쪽지/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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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대표 국립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은 전북에서 발굴 출토된 고고유물을 비롯하여 역사 자료, 서화, 도자기, 공예 미술품 등 전라북도 관련 중요 문화재를 4만여 점 소장하고 있다. 

이중 대표 문화재를 선별하여 상설전시실과 야외 정원에 전시하고 있으며, 학술 조사와 연구 활동을 기반으로 기획한 다양한 주제의 특별전시도 진행하고 있다. 

전통 문화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박물관도 운영하고 있으며,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과 성인에게 박물관 기반의 열린 교육과 평생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국내 관람객과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전통 문화와 전라북도의 문화를 소개해 오고 있다. 

출처:VISIT JEONJU


"국립전주박물관"


"문석인, 익산 미륵사지 팔각기둥"


 "익산 미륵사지 석등"


[무성리 출토 석불]

다른 부처와 달리 손에 꽃을 쥐고 있슴. 이 꽃은 용화라고 부르는 꽃으로 미륵불의 상징으로 여겨짐. 미륵불은 미래에 올 부처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뒤 56억 7천만년 후에 출현하여 세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교화한다고 함.


"특별전시전 고려 사람들의 꿈"


"수중문화유산의 발견, 그 시작은..."

2002년 4월 고군산군도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해저 유역 어부 3명이 소라잡이 잠수 작업 중 청자 243점 인양 신고 후 본격 조사


 "조선 유구 항해기"

바질 홀이 서해안을 탐사하고 기록한 항해기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고군산군도"


"동여도에 표시된 고군산군도"


[비안도 출토 앵무새무늬 도자기]

그릇의 내면에 앵무새를 한 마리 혹은 한쌍으로 음각하여 약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청자 가마터 가운데 앵무새무늬의 모습이나 기형의 유사함 그리고 상감기법이나 압출양각의 기법 등이 가장 유사한 곳은 부안 유천리 7구역 가마터라고 할 수 있다.


"목간"


"청자묶음"


"고려의 비색 청자는 천하 제일이다"


"청동바리와 청동거울"


"침몰선에 실렸던 고려 사람들의 꿈"

침몰선에 실렸던 고려 사람들의 꿈 샌드아트 영상, 고려의 비색자기는 천하에서 제일


"거창 입점리 고분 금동장식신발"


"고창 봉덕리 금동장식선발"


"소조악귀상"

악귀얼굴상과 아래 익산 제석사 폐기장 소조악귀상 출토모습(2009년)


"소조천부상두"

익산 제석사 폐기장 출토 천부 얼굴


"용무늬대야"


"백자 연꽃무늬 병"


"청자 포도무늬 주전자"


"기획전시실 오로지 오릇한 고을 완주"


[보물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 (完州 葛洞 出土 精文鏡 一括) Bronze Mirrors with Fine Linear Design Excavated from Galdong, Wanju]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은 초기 철기시대인 기원전 2세기 경에 사용된 2점의 청동제 거울로서, 정식 발굴조사에 의해 출토된 보기 드문 사례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반교리에 위치한 갈동 5호 및 7호 토광묘에서 각각 한 점씩 출토되었다.

완주 갈동 5호 토광묘와 7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정문경 2점은 전(傳) 논산 정문경이나 화순 대곡리 정문경보다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제작된 것이나, 문양이 매우 정교하고 잘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초기 철기시대의 늦은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정문경으로 판단되며, 우리나라 청동기 제작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2점은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이 명확할 뿐 아니라 완형에 가깝고 뒷면에 새겨진 문양도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워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 청동기 주조기술을 이해하는데 매우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보물로 지정해 보존 및 관리할 필요가 있다.

[영문 설명]

The Set of Bronze Mirrors with Fine Linear Design were excavated from an earthen-pit tomb (Tomb Nos. Galdong-5/7) in Bangyo-ri, Iseo-myeon, Wanju-gun, Jeollabuk-do. The set comprises two bronze mirrors dating back to around the second century during the Iron Age. They are unusual in that it is rare for such relics to be excavated by an excavation survey.  

Although they date from a slightly later period than their counterparts excavated from Nosan and Daegok-ri, Hwasun, they have beautiful, well-arranged decorative patterns and display the advanced bronze tool production skills of the early Iron Age. 

The mirrors are considered worthy of designation and preservation as a Treasure because they form a complete set, display attractive decorative patterns, and are valuable artifacts for studies on the bronze tool production skills of the early Iron Age in Korea.

출처:문화재청


[보물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完州 葛洞 出土 銅劍銅戈 鎔范 一括) Moulds for Bronze Swords and Spears Excavated from Galdong, Wanju]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갈통 1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거푸집 2점으로, 한 점은 세형동검의 거푸집만 새겨져 있고, 다른 한 점은 동검과 동과(銅戈)가 양면에 새겨져 있다. 초기 철기시대 호남 지역의 청동기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로서, 이 석제 거푸집은 실제로 사용흔이 남아 있으며, 출토 맥락과 공반 유물이 확실한 매우 드문 고대 청동기 생산 관련 유물로서 매우 귀중한 문화재이다. 

거푸집의 상태 및 새겨진 세형동검과 동과의 형태 등이 매우 자세하고 조각 솜씨가 탁월하다는 점에서도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거푸집들이 발견된 사례는 10여 건이지만 대부분 출토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한계이다.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이어서 출토지점과 출토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이므로 그 중요성은 다른 용범들과 비교하기 어렵다. 또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해서 당시 사회의 청동기 주조기술을 보여주는 데도 탁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문 설명]

The Molds for Bronze Swords and Spears were excavated from an earthen-pit tomb (Tomb No. Galdong-1) in Gal-dong, Wanju, Jeollabuk-do. Historians are particularly interested in the exquisite form of the molds, one of which was used to make a slender bronze dagger and the other a bronze sword and bronze spear. These valuable relics, which bear traces of use, shed light on the production of bronze tools in Honam during the early Iron Age.   

So far, more than ten molds used to produce tools and weapons, dating from the Bronze to the Iron Age, have been found on the Korean Peninsula, but it is not clear where most of them were excavated. As these rare yet well-preserved molds are virtually the only ones about which anything is known, such as where and with what other artifacts they were excavated, they are an important material for studies on the techniques used to make bronze tools and weapons during that period.

출처:문화재청


"한국식 동검"


[장대투겁 방울, 완주 이서면 갈산리 신풍, 2012년 발굴, 초기철기시대]

장대투겁방울은 밑에 장대를 끼워 손으로 흔들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방울들이 비해 오랜 기간 사용되었는데 충남 예산 덕산, 전남 함평 초포리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출토 유구가 확실한 것은 현재 완주 산풍 54호 움무덤 출토품이 유일하다.


[흑색마연토기.검은간토기]

흑색마연 기법은 백제 한성기 토기 제작기술의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토기를 만들때 흑연을 이용하여 검은 색을 입히고 표면을 매끄럽게 문질러 광택이 나게 한다. 당시 백제의 중앙지역인 한강유역에서 유행하였고 지방에서도 일부 확인이 되는데, 그 희소성 때문에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권위를 나타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운리 유적에서도 이러한 토기들이 일주 확인되는데, 백제 중앙 양식의 토기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마한의 항아리에다가 흑연마연 기법을 적용하였다.


[다시 피어난 후백제 사람들의 꿈, 염원 이우엽]

약 1000년 전의 봉림사는 비보사찰로써 부처의 힘으로 나라의 무사태평을 빌고 개인에게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곳.

'아마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눈앞의 세 부처와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과거 - 현재 - 미래에 관한 심안.염원.평등이 느껴지길 바란다.


[염원 노정희]

처음 봉림사 석등과 중대석에 새겨진 용문양을 보았을 때 느낀 강한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석등이 견훤왕과 관련된 봉림사에 세워졌었다는 유래를 알게 되면서 후백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과거의 나라(백제)에 대한 애착과 새로운 나라(후백제)에 대한 기대감이 염원으로 다가왔다.

석등 아래 그려진 다양한 모양의 조각과 그 색들은 수많은 백성들의 염원과 역사적 순간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정방형의 틀(현실세계)에 원형의 배경(이상세계)을 담아 그들의 간절한 염원이 오롯이 하나로 모여, 이 작품 속에서나마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Who are you? 권성수]

철판조각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그 속에서 삼존불은 우리 앞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삼존불의 상호(머리)가 없음에 길은 호기심을 갖는다. 그 상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설령 우리가 무심코 상상하기 쉬운 모습일지라도 분명 그것은 후백제 사람들의 심상 이었을 것이다.

이제 천년을 넘어 그들을 맞이할 시간이다. 대체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상호 없는 불상


"익산 미륵사터,익산 제석사터 출토품"


"익산 쌍릉 출토품"

금동 나무널 꾸미개, 사발, 널못, 금동 나무널 꾸미개, 옥 꾸미개


"금마저성이 새겨진 암키와"

익산시 미륵산성


[봉황문 수막새]

봉황문 수막새는 가장자리를 점열로 장식하고 그 내부에 정면에 봉황을 그렸다. 무진고성에서는 봉황문 수막새가 다수 출토되었는데, 봉황문 막새는 개성 고려 궁성, 숭례문, 양주 회암사지 등 주로 궁궐이나 사찰터에서 발견된다.

봉황은 태양과 천자, 신생과 풍요, 영혼의 전달자 등으로 해석된다. 궁궐 내 사용한 봉황문이 새겨진 기와나 벽돌은 왕의 권력과 국가의 태평성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전시 중인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봉황문 막새는 후백제 견훤이 무진주를 점령한 후 칭왕하던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창덕궁 금표]

조경단 구역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표지석이다. 조경단 내에는 일반인이 거주하거나 능사를 짓는 일이 있어, 출입을 금지하는 명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이 금표는 고종황제가 조경단을 정비한 후 세운 표지석으로, '창덕궁'이라고 새겨져 있다. 고종황제가 1911년까지 창덕궁에 기거하였기 때문에 조경단 역시 고종황제 및 황실의 소유지라는 의미로서 창덕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현재는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사리병과 사리내함]

석탑 1층 지붕돌 중앙이 뚫린 2개의 네모난 구멍(사리공)에서 발견되었다. 부처의 유골을 의미하는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용기이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리를 담는 용기였던 만큼 사리병은 녹색 유리로 제작하였으며, 사리내함은 순금으로 만들었다.


[사리장엄구]

석탑 1층 지붕돌 중앙이 뚫린 2개의 네모난 구멍(사리공)에서 발견되었다. 은제도금판에 새긴 불교 경전, 금강경판(<금강경>의 내용을 얇은 은판에 두들겨 찍고 도금한 경판 이다. 19매가 첩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판에 17행 17자가 새겨져 있다.

금강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경으로, 우리나라 조계종행, 태고종의 소의경전이다. 1965년에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해체되었을 때 제1층 옥개석 중앙과 기단부에서 사리내함, 사리병 등의 사리장엄구와 함께 발견되었다.

동판이나 목판에 각자하여 금강경 책판을 완성한 후, 0.15m 두께의 은판을 그 위에 덮고 망치로 살살 두들겨서 글자를 찍은 후 도금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양출 기법의 금속경판은 중국과 일본에서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는 우리나라 고대의 뛰어난 문화유산이다.


"사리장엄구 유리옥"


청동령과 금동불입상은 기단 내부 심초석에 품자로 뚫린 3개의 구멍에서 발견되었다.


석탑 1층 지붕돌 중앙이 뚫린 2개의 네모난 구멍(사리공)에서 발견된 국보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사리외함


[보물 전 낙수정 동종 (傳 樂壽亭 銅鍾) Bronze Bell of Naksujeong Pavilion (Presumed)]

이 범종은 일본인 다카하라 히미코 여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소장해 오던 중 1999년 11월 국립문화재연구소를 통해 기증·반환한 것으로, 종을 매다는 용뉴 부분의 훼손이 있기는 하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종의 윗면은 수평에 가까우며, 어깨부분인 상대와 맨아래 부분인 하대에는 띠를 돌리고 그 안쪽으로 반원무늬와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와 연결된 사다리꼴 모양의 연곽 테두리에도 덩굴무늬를 얕게 조각하였으며, 연곽 안에는 작은 꽃받침을 갖춘 연뢰(蓮蕾)가 돌출되어 있다.

종의 약간 아래쪽 2곳에 배치되어 있는 당좌는 종을 치는 부분으로, 이중원의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덩굴무늬를 장식하였다. 당좌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배치된 4개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꿇어앉고 두손을 모아 합장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 비천상은 다른 문양들보다 도드라지게 조각되어 있다.

종에 새겨진 기록이 없어 종의 제작년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형태와 문양 및 성분비율 등을 살펴볼 때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인 11세기 경에 제작된 범종으로 생각된다.

[영문 설명]

A Japanese, Ms. Takahara Himiko, donated this one -- which had been kept by her family -- to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of Korea in 1999. It is in very good condition save for some damage to the cannon (yongnyu).

A sash-like ornamental space surrounds the flat top and the bottom. The spaces contain semicircle and scrolling vine patterns. In particular, scrolling vine patterns are shallowly inscribed on the edges of the trapezoid-shaped yugwak (square-shaped ornamental space with nine lotus flower-shaped nipples arranged symmetrically) adjacent to the top sash.

The bell has two dangjwa (part where the rod hits when tolling a bell) near the bottom sash. It is surrounded by a double-circled edge with scrolling vine patterns in it. Four images of Apsaras kneeling on clouds with the two hands clasped are portrayed between dangjwa. The images of Apsaras look more conspicuous than the others.

The bell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during the early Goryeo Period (918-1392) following the style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76 - 935), based on its appearance, patterns, and composition ratio.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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