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왕실의 생활

2023. 2. 20. 06:45바롱이의 쪽지/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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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 500년, 그 삶과 마주하다"

[국립고궁박물관]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 8월 15일 경복궁 내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조선왕실의 보물을 한데 모아 전시해 놓은 국립고궁박물관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개관했다. 

문화재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고, 일제에 의해 헐린 경복궁 전각들을 복원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992년에는 4대궁궐과 종묘, 능원 등에 흩어져 있던 궁중문화재를 모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덕수궁 내 석조전은 전시공간과 수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규모조차 너무 작아 왕실문화를 홍보하고 연구 보존하는데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쳤고 이에 문화재청은 1993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왕궁박물관을 개관하기로 결정하고 철저한 준비 끝에, 이번에 화려하게 개관을 하게 됐다. 

이처럼 10년간의 긴 덕수궁 시대를 마치게 된 국립고궁박물관의 새 보금자리는 덕수궁 시대보다 전시공간은 3배, 수장 공간은 30배가 넓은 초대형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이에 따라 4만여 점에 달하는 왕실문화재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출처:서울문화포털


[2층 전시안내]

2층에는 조선 왕조의 상징물과 기록물 위주로 전시된 ‘조선의 국왕’실과 조선 5대 궁궐의 역사와 왕실 가족들의 생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조선의 궁궐’, ‘왕실의 생활’실이 있습니다.

[왕실의 생활]

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용하였던 물품들은 격조 높은 왕실의 생활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들을 위해 만든 의복과 음식, 각종 기물 등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치를 금하고 국왕이 몸소 검약한 생활을 실천했기 때문에 궁중의 생활 물품에는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보다는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왕실에서 사용된 가구는 일반 가구들에 비해 크기가 크고 표면을 붉은색으로 칠한 것이 많이 있다. 붉은 칠은 일반 민가에서는 사용을 금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던 것으로, 왕실에서 사용된 가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왕을 위한 밥상인 수라상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질 좋은 재료로 차려졌으며 왕실의 음식 문화는 궁궐 밖의 일반 사가에도 전해져 서울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왕실 의복은 지위와 역할, 그리고 존엄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기능을 하였다. 따라서 왕과 왕비의 예복은 신발부터 관모冠帽와 머리장식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정해진 법식에 따라 제작되고 착용되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왕실가족 사진" 


[조선왕실의 복식]

왕실의 복식은 의례복과 일상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례시 착용하는 복식은 유교의 예를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길례, 홍례, 군례, 빈례, 가례 등 의례의
격식에 맞는 복식을 갖추었다. 의례복 안에 받쳐 입는 속옷이나 일상복은 이전부터 계승되어 온 전통복식으로 일반 사대부 양반의 차림새와 같았다.


[흉배 胸背(朴子)]

흉배는 왕실 가족과 문무백관의 지위에 따라 의복의 가슴과 등에 다는 표장이다. 왕족의 의복에 부착하는 원형의 흉배는 특별히 보라 했는데, 왕·왕세자의 일상복인 곤룡포와 왕비·세자빈의 대례복에는 용 문양을 금실로 수놓은 둥근 보를 가슴과 등 그리고 양어깨에 붙였다. 왕비 · 세자빈의 소례복에는 두 마리 봉황무늬 보를 가슴과 등에 달았다. 백관은 관품에 해당하는 무늬를 네모진 흉배에 수놓아 가슴과 등에 붙였다. 


[자수의 밑그림, 수본]

궁중 의복과 장신구를 장식하는 자는 온갖 색실로 다양한 문양을 아름답게 수놓기 위해 도안[수]이 필요했다. 수본은 재료에 따라 목판과 유지로 구분된다.

목판 수본은 회원이 종이 위에 그린 자수 문양을 조각장이 나무판에 옮겨 새긴 것이다. 목판에 먹을 묻혀 종이에 찍고, 이를 옷감 위에 대고 수를 놓는다. 이는 대체로 보에 수를 놓기 위해 만들었다. 

유지 수본은 기름종이에 붓으로 문양을 그려 넣은 것이다. 유지 수본의 뒷면에서 흰 가루분으로 문양을 따라 그리고 흰 가루분을 옷감 위에 옮긴 다음 다시 먹으로 선명하게 그려 수를 놓았다. 주로 복식과 장신구에 부분적으로 수를 놓을 때 옷감 위에 올려놓고 문양을 잡기 위해 만들었다.


[왕비와 궁중 여성]

조선시대에 국왕이 문무백관의 보필을 받아 외정책을 다스리듯이, 왕비는 궁궐 내 후궁과 상궁 이하 여관들(내명부)과 궐 밖에서 생활하던 공주와 옹주, 그리고 종친·문무 관료의 부인들 외명부의 보필을 받아 내정을 다스렸다.

왕비는 평상시 왕실의 웃어른을 안하고, 여러 사람들의 문안 받는 일을 중시했으며, 왕실친인척들의 혼인이나 각종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겼다. 선왕과 선왕후를 추모하는 상례와 제례 때에는 제수를 살피고, 때로는 직접 참여도 했다. 

국왕이 백관들의 조화를 받고, 친경과 양로연을 열었듯이, 왕비는 내연포에서 명부들의 하례를 받았으며, 뽕을 따고 길쌈을 하는 친삼례와 여성 노인들이 참석하는 양로연을 베풀었다.


[왕실여성의 인장]

왕비와 후궁, 왕대비와 대왕대비 등 왕실 여성은 지방에서 올리던 공식적인 진상과 공상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하고 별도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왕실 구성원의 사유 재산은 궁방에서 관리했는데, 각궁방에서는 다양한 동물형 손잡이가 달린 궁방 인장들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화장 문화]

왕실 여성들에게는 화장도구들을 품계에 따라 차등을 두어 매달 지급했다. 비누를 만들기 위한 팥(소두)과 비누인 분강갱미가 진상되었고, 영양 공급을 위한 꿀(황밀)이올려졌다. 머리에 바르는 참기름인 진유도 중궁전, 빈궁 등 왕실 여성에 매달 진상되었다. 절일에는 각각 머리와 관계된 장신구와 빗을 올렸는데 대전과 각 전, 궁 등 종 4품 이상의 내명부 여성에게는 빗을 넣어 두는 화소첩도 올렸다.


[궁중 여성의 머리 모양새]

조선시대 왕족 여인과 일반 궁녀들의 머리형에는 차이를 두었다. 평상시에는 왕비나 내인 모두 가르마 가운데 쪽을 진 첩지머리를 했고, 신분에 따라 장식을 달리했다. 왕비를 비롯하여 왕자비, 왕손비는 금·은장식의 용. 봉황첩지를 착용했다. 특별한 의식이 있을 경우에는 첩지 대신에 화관이나 족두리로 화려하게 장식을 하기도 했다.


[노리개]

노리개는 치마허리나 저고리 고름에 차는 장신구이다.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과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애용되던 장신구로 신분과 지위에 따라 사용하던 재료가 달랐다. 궁중에서는 계절에 따라 노리개의 종류를 달리했는데, 봄·여름·가을에는 구슬과 옥 노리개를 차고 겨울에는 마노와 향노리개를 찼다.


"궁전 침천 내부공간"


[궁중에서 사용한 여러 가지 그릇]

왕실에서는 일상생활에서나 잔치, 제사 등의 행사에 다양한 재질로 만든 고급 식기를 사용했다. 도자는 왕실의 검소한 기풍에 따라 일찍부터 선호되었으며 15세기 후반부터는 경기도 광주 지역에 관영 도자기 제작서인 사옹원 분원을 설치해 잔치용 예기와 제기, 생활 용기를 제작했다. 

그릇 표면에 코발트 계열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려 구워낸 청화백자는 궁중 도화서 소속의 화원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은제 그릇은 왕실 가족의 주발이나 술잔 등 식사 용도로 쓰이기도 했으나, 계속된 금과 은의 절용 정책으로 인하여 주로 행사용으로 제작되었다. 광물을 원료로 해서 만든 유리질의 유약을 입혀 화려하게 장식한 법랑 그릇들은 청나라로부터 들여와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붉은칠합]

왕실에서 사용하던 목재 붉은칠합이다. 주칠을 하고 뚜껑 상단에는 금색의 용으로 장식했다. 주칠은 일반 사가에서는 사용을 규제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주로 왕실에서 사용되었다.


"칠기합, 붉은칠원형소반"


[궁궐 내 생활도구]

궁궐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은 당대 최고의 장인에 의해 가장 질 좋은 재료로 만들어졌다. 일반 민가의 가구에서는 사용을 금지할 정도로 귀하게 여겨진 주칠 가구를 비롯해 은기 등을 제작해 사용했다. 

왕실에서 사용되는 생활도구는 주로 십장생이나 보배문,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 등으로 장식했다. 어두운 궁궐을 밝혔던 촛대와 등잔, 왕실 가족들이 사용했던 각종 용기 등 다양한 생활도구들은 조선 왕실 가족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밥상 보자기와 소반, 족반, 원반"


[궁중 주방]

궁궐 내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 공간으로는 수라간, 소주방, 생물방 등이 있다. 대전·중전·대비전·세자빈 등 각 전각마다 주방 상궁이 딸려서 각각 음식을 만들었다. 

수라간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진지(수라)를 짓는 주방이라는 뜻으로 어주라고도 하며 소주방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 소주방은 내·외소주방으로 나뉘는데, 내소주방에서는 주로 아침·저녁으로 올릴 수라를, 외소주방에서는 주로 각종 잔치 음식을 담당했다. 생물방은 생과방이라고도 하며 음료 및 과자를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수란간 현판과 은제솥


[수라상 水剌床]

조선시대 왕의 밥상인 수라상은 각 지방에서 올라온 좋은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맛과 모양을 낸 음식들로 차려졌다. 수라상 상차림은 밥과 탕을 포함한 기본 음식과 12가지 반찬으로 구성된 12첩 반상으로 이루어졌다. 12첩 반상은 왕실만을 위한 것으로 일반 반가에서는 차릴 수 없었다.

왕의 수라상은 기본적으로 세 개의 상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왕의 앞에 놓이는 대형의 둥근 밥상(대원반)이고, 다른 하나는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검사하는 기미상궁 앞에 놓이는 소형의 둥근 밥상(소원반)이며, 나머지 하나는 왕의 식사를 시중드는 수라상궁 앞에 놓이는 네모난 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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