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고궁박물관, 왕실 의례

2023. 2. 25. 07:43바롱이의 쪽지/서울

반응형

"조선왕실 500년, 그 삶과 마주하다"

[국립고궁박물관]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 8월 15일 경복궁 내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조선왕실의 보물을 한데 모아 전시해 놓은 국립고궁박물관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개관했다. 

문화재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하고, 일제에 의해 헐린 경복궁 전각들을 복원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992년에는 4대궁궐과 종묘, 능원 등에 흩어져 있던 궁중문화재를 모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덕수궁 내 석조전은 전시공간과 수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규모조차 너무 작아 왕실문화를 홍보하고 연구 보존하는데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쳤고 이에 문화재청은 1993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 왕궁박물관을 개관하기로 결정하고 철저한 준비 끝에, 이번에 화려하게 개관을 하게 됐다. 

 

이처럼 10년간의 긴 덕수궁 시대를 마치게 된 국립고궁박물관의 새 보금자리는 덕수궁 시대보다 전시공간은 3배, 수장 공간은 30배가 넓은 초대형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이에 따라 4만여 점에 달하는 왕실문화재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리고 보존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출처:서울문화포털


[지하1층 전시안내]

지하에는 조선 왕실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궁중서화’실, 왕실의 의례를 살펴볼 수 있는 ‘왕실의례’실 그리고 조선의 수준높은 과학 문화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과학문화’실이 있습니다.

[왕실의례]

유교를 통치 철학으로 한 조선은 ‘예禮’를 기초로 사회질서를 지키면서 백성과 즐겁게 화합하고자 하였다. 국왕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 5가지로 예제를 정비해 왕실의 정치적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하였다. 더불어 일생 동안 단계에 맞는 예를 행하고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백성들의 모범이 되었다. 의례를 치를 때는 절차마다 연주되는 음악부터 기물, 음식, 복식에 이르기까지 각종 형식을 제도에 맞춰 행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왕실 잔치에 사용된 여러 가지 기물]

왕실 잔치는 참석자에 따라 왕을 중심으로 왕세자, 종친, 문무백관이 참여하는 외연, 왕실 여성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친인척이 참여하는 내연으로 나뉜다. 

잔치의 주인공 뒤에는 일월오봉도, 십장생도 등 각 잔치의 성격에 맞는 병풍을 세우고, 주인공 앞에는 잔치의 규모와 주인공의 신분에 알맞은 음식상을 차렸다. 

잔치가 밤에 이루어질 때는홍사등,  유리등 같은 다양한 형태의 등을 설치해 불을 밝혔다. 잔치 장소에는 비단으로 만든 꽃을 꽂은 큰 화병과 용 문양 촛대(용촉), 은으로 만든 기물 등을 두어 잔치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다.


[원자의 탄생과 태의 봉안]

조선 왕실에서는 왕위를 계승할 원자나 원손이 태어나면 그 탄생을 알리는 탄생반포를 하고, 탄생 3일째에 원자의 탄생을 종묘와 사직에 지내 탄생 축하에도 예를 다했다. 왕실에서 태어난 아이의 태는 길지에 태실을 묻어 조성해 묻었는데 특히 원자나 원소은 길지 중에서도 1등지에 태실을 만들었다. 태가 좋은 땅을 만나면 태의 주인이 장수하고 지혜로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종 태항아리/성종 태항아리와 태지석


[국왕 태실의 가봉]

태실의 주인이 왕위에 오르면 태실에 석물을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이를 가봉加封이라 하였다. 보통 중앙에 태석을 설치하고 주위에 전석과 난간석을 둘러 완성하였다. 또한 비석가봉비를 세워 국왕의 태실로서 위엄을 나타냈다탄생 후 처음 조성된 아기태실과 구분하여 가봉태실이라고 불렀다.


[숙종 백자 태항아리와 태지석]

조선, 17세기

숙종肅宗(재위 1674~1720) 태를 담았던 백자 태항아리와 출생일, 태를 매장한 시기가 적혀 있는 태지석이다. 숙종은 1661 8월에 태어나 같은 12월에 태를 묻었다. 1684(숙종 10) 기존의 태실胎室에 석물을 더하는 가봉加封 절차를 거쳐 왕의 태실임을 표시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순조 태항아리와 태봉도"


[왕실의 혼례]

왕실 혼례는 관례, 입학례 등과 함께 경사스러운 의례인 가례(嘉禮)에 속한다. 국왕이나 왕세자의 혼례는 왕실의 가계를 잇고 어른을 모시며 국왕의 외치를 도와 내치를 할 국모를 정하는 일로, 국가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조선왕실은 왕비후보를 간택한 후 청혼하고[(납채納采), 왕비로 책봉(冊封)한 후궁으로 모셔오는(친영親迎)등의 매절차마다 최고의 예를 갖추었다.


[동자상]

왕실 혼례 절차 중 왕과 왕비가 술과 음식을 함께 먹는 동화마을 치를 때에는 향꽂이를 놓는 가구인 향좌아 옆에 옥동자상 한쌍을 두었다. 동자상의 표면에 채색을 한 흔적이 일부 남아있다.

[백자도 병풍 百子圖屛]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

화려한 궁궐 정원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다양한 놀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병풍으로 자손의 번성과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왕실 혼례 때 왕비나 세자빈으로 간택된 여성이 임시로 머물던 별궁別宮에 백자도 병풍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경종비 선의왕후 세자빈 책봉 옥인·죽책·교명]

조선朝鮮 17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경종의 계비선의왕후 (1705~1730년)가 세자빈으로 책봉될 때 받은 옥인·죽책·교명이다. 거북 모양 손잡이의 옥인에는 '왕세자비지인'이 새겨져 있다. 죽책과 교명은 세자빈으로 봉하면서 왕이 내린 문서로 교훈과 경계의 내용이 담겨 있다.


"왕비를 맞이하는 절차, 육례"


[왕과 신하의 활쏘기 대회, 대사례]

대사례는 국왕과 신하가 모여 성균관에서 활을 쏘는 의례이다. 조선시대에 활쏘기는 예禮와 악樂을 연마하는 방도이자 정신수양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 매우 중시되었다. 왕은 신하와 함께 활쏘기 대회를 치르며 위계질서를 바로잡고 화합을 이루고자 하였다. 대사례 외에도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의례인 조회朝會, 매일 아침 행하는 약식 조회인 상참常參등 다양한 의례를 거행해 군신 간의 질서와 화합을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예궁]

의례용으로 전해지는 활이다. 조선의 활은 탄성이 강해 시위를 풀었을 때 활이 거꾸로 뒤집힌 모양이 되어 사용할 때마다 반대 방향으로 굽혀 시위를 걸어야 한다. 무소뿔과 참나무, 소 힘줄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고풍]

조선朝鮮 1796년

정조가 활쏘기를 한 뒤 함께 한 신하들에게 상을 내린 내용을 적은 문서이다. 1796년 2월 5일 행한 활쏘기에서 정조가 얻은 성적과 오의상(?~1820년)에게 체력을 보충해 주는 약인 보중익기탕을 내린 내용을 담고 있다.


[단풍정에서 임금이 활쏘기를 한 일을 새긴 현판]

조선, 1842년

1842년(헌종 8) 7월 15일 현종(재위 1834~1849년)이 창덕궁 내 춘당대 옆 단풍정에서 활쏘기를 한 성적과 상을 받은 신하들의 명단을 새긴 현판이다. 현종은 1순 즉, 5발을 쏘아서 2발은 과녁의 주변, 1발은 가운데를 적중하였다. 왕명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는 액정서 소속 관원 김성손등 일곱 명의 신하가 고풍*을 받았다. 칭하여 포상으로 30냥을 받았다.

* 고풍 : 임금이 활을 쏘아 적중하면 신하가 축하의 의미로 상을 청하는 풍습


[연 輦]

조선朝鮮

조선시대 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이 행차 때 탔던 정식 가마이다. 지붕, 몸체, 가마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이 분리가 되게 만들어졌다. 주칠을 한 몸체에는 금니金泥로 용龍, 백택白澤, 기린麒麟 등의 문양을 그려 장식했다. 네 면에 주렴을 드리우고 검은 휘장을 달아서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가교]

조선朝鮮

왕, 왕세자 혹은 왕실 어른이 장거리 행차 때 탔던 가마이다. 가마채를 말의 안장에 연결하여 두 마리의 말이 앞뒤에서 끌었다. 정조 대에 행한 화성 행차 때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탔던 가교가 이와 유사한 형태였다. 주칠을 한 몸체는 구획을 나누어 다양한 길상문을 새겼다.


[궁중 정재]

정재는 '재주를 바친다'는 의미로, 의례 때 공연되었던 음악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종합공연예술이다. 조선 왕실은 잔치에 음악과 노래, 무용을 함께 올려 신하, 백성과 더불어 즐기고자 했다. 

정재는 대체로 기존의 전해오는 선율에 새로운 노랫말과 춤을 얹는 방법으로 창작되었으며, 국왕의 장수, 왕조의 번영을 바라는 내용이 많다. <헌선도獻仙桃〉는 한 개만 먹어도 천년을 살 수 있다는 복숭아를 국왕께 올리는 내용이며, <봉래의鳳來儀>는 조선 왕조의 개국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가사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한 것이다. 민간에서 유행하던 연희를 궁중 잔치에 올리기도 하였는데 <선유락船遊樂>이나 <검기무劍器舞> 등이 대표적이다.


[궁중 음악]

조선은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예악정치禮樂政治를 추구하였다. 예악정치는 예禮로 상하 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악樂으로 경직된 부분을 풀어 서로 화합하는 덕치德治이다. 조선에서 음악은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조상을 감동시키고 군신을 화합하며 풍속을 교화하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조선 왕실에서는 의례가 행해질 때 규모와 성격에 맞는 음악을 연주하였다. 국가의 가장 큰 제사인 종묘 제례를 올릴 때는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연주에 맞춰 부르며 줄을 지어 추는 춤인 일무를 추었다. 나라의 경사 때 행해진 각종 잔치에서는 음악과 함께 궁중무용인 정재가 공연되었다. 왕과 신하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하는 조회朝會에서도 음악이 연주되었다. 왕이 궐 밖으로 행차할 때도 악대가 따라 음악이 울려 퍼지도록 했다.


[종묘 제향을 위한 그릇, 제기]

제기는 종묘에서 제사 음식을 마련하고 바치는 데 사용한 그릇이다. 제기의 형식은 역대 예제를 참고하여 법을 정해, 조상을 모시는 데 잘못이나 모자람이 없도록 하였다. 제기는 낡거나 파손되어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땅에 묻거나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조이 · 조이대]

종묘의 봄과 여름 제사에 사용된 제기로 남방을 상징하는 봉황을 그려 넣은 술항아리와 받침대이다. 종묘 정전과 영녕전 신실 문 밖에 진설되는 준소상에 올린 4종류의 술항아리 중 하나로 계절에 따라 달리 사용했다. 

현존 유물 중 일부는 양 옆에 둥근 고리가 달린 손잡이가 부착된 것이고, 다른 일부는 손잡이가 없는 것이다. 조이대는 구연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며 몸체 양쪽에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으며 손잡이에 뇌문(雷文) 장식을 하였다. 몸체의 앞뒷면에 4개의 발톱을 가진 한 쌍의 봉황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난도鑾刀]

종묘 제향시 소, 양, 돼지를 잡을 때 사용하는 칼


[종묘 신실]

종묘는 하나의 건물을 여러 칸의 신실로 나누어서 여러 신주를 함께 모신 곳으로 현재 정전에는 19개의 신실에 왕과 왕비의 신주 49위位가, 영녕전에는 16개의 신실에 34위가 있다. 신실 중앙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신주장이, 좌우에는 책장과 보장이 있다. 신주장 앞에는 제례를 지낼 때 신주를 옮겨 모시는 신탑이 있는데 그 위로 신주 뒤에 놓이는 궤가 있다. 신실 앞에는 노란 명주 천으로 만든 면장을 드리웠고 신실 사이에 격렴을 내려 공간을 구분하였다. 제례를 지낼 때에는 신실 앞에 제상을 차리고 양쪽에 선扇 ·개蓋 등의 의장물을 세웠다.


[제례 때 물과 술을 올리는 상]

대한제국大韓帝國

신실 밖에는 제례 때 사용되는 물인 명수와 술이 담긴 항아리를 올린 준상이 놓였다. 계절별로 다른 모양이 사용되었는데 각 항아리에 담는 술의 종류도 달랐다. 봄·여름 제사에는 게이, 조이, 상준, 희준, 산뢰가 가을·겨울 제사에는 가이, 황이, 착준, 호준, 산뢰가 사용되었다.


[종묘 제향을 위한 음식, 제수]

종묘 제향은 짐승의 고기와 피를 바치는 '혈식血食'의 제사로, 소·양·돼지가 중심 제물[희생犧牲]이었다. 희생으로 쓰이는 가축은 그 목적을 위해
특별히 정결하게 키운 것으로 제사상에는 희생의 털과 피, 생고기와 삶은 고기, 고기를 삶은 국물을 올렸다. 희생 외에도 기장과 수수 등의 곡식, 땅과 물에서 난 다양한 산물로 만든 각종 음식을 차렸다.


[종묘친제규제도 병풍]

조선, 1866~1868년

상단에 종묘의 정전과 영녕전 등 주요 건물과 이곳에서 행해지는 행사, 제례를 위한 상차림 등의 그림을 그리고, 하단에 절차와 규정 등을 자세히 설명한 병풍이다. 제례 실무자가 평소 그림을 통하여 의식 절차를 익히도록 돕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망료기와 망료저]

조선朝鮮

제례의 마지막 절차에서 축문과 폐백을 불에 태우는 망료례 때 사용한 그릇과 젓가락이다. 본래 종묘 제례에서는 축문과 폐백을 땅에
묻었는데[망예), 영조 대에 이를 태우도록 변경하였다.


[번간로와 서직비]

조선朝鲜

신에게 익힌 고기를 바치는 궤식례의 마지막에 쑥(소), 메기장·찰기장(서직), 희생의 기름을 화로에 넣고 버무려 숯불에 태운다. 이때 사용된
화로인 번간로와 서직을 조금씩 덜어낼 때 사용된 숟가락인 서직비이다.


[생갑과 조]

조선朝鲜

소·양·돼지와 같은 제물 고기인 희생을 담는 생갑, 생갑을 올려두는 상인 조이다. 신에게 익힌 음식을 올리는 절차인 궤식례에서 희생의 삶은 고기를 생갑에 담아 바치는데, 이 잘차는 국왕이 몸소 제사를 지내는 천제때만 행한다.


[축판과 문진]

조선朝鮮

신에게 축원을 드리는 글인 축문을 올려두는 판과 누르는 문진이다. 축판은 주로 나무에 검은 칠을 하여 만들었다. 축문은 초헌관이 첫 술잔을 올린 후 읽었으며 바람에 날리지 않게 놋쇠로 된 문진으로 눌러 제사상의 서쪽에 놓았다.


[용찬과 찬반]

조선朝鲜

향기로운 연기와 술을 통해 신을 신주로 불러 모시는 의식인 신관례 때 사용한 제기이다. 술이 땅으로 내려갈수 있게 신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원통 모양의 관지통을 심은 뒤, 용찬에 담긴 술을 부어 지하의 백이 신주에 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향로 · 향합]

향을 태운 연기로 천상(天上)의 혼을 내려 모시는 의식에 사용하는 제기이다.  몸체 상단은 산수를 형상화한 기하문(幾何文)으로 장식하였고, 세 개의 다리는 무늬없이 각진 형태다. 뚜껑 중앙의 용은 입 속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 향로에 향을 피우면 용의 입과 뚜껑의 구멍 사이로 연기가 나온다. 향합은 향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향로와 한 쌍을 이루며 제상 동쪽에 배치되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작 · 점]

종묘대제 등 큰 제사 때 사용된 제기로 술잔과 술잔받침이다. 작(爵)은 잔(盞)과 같은 뜻으로 잔의 모양이 새[雀]와 비슷하다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점(坫)은 작을 받치는 정방형 판으로 중심부에 작이 움직이지 않도록 둥근 선이 패여 있다.

출처:국립고궁박물관


[제관의 복식]

조선朝鲜

국가의 제사를 진행하는 관원인 제관은 검은 색 겉옷[제복] 아래 흰색 옷[중단] 등을 갖춰 입고 머리에 제관을 썼다. 머리에 쓰는 제관의
앞면에 세로로 가로지르는 금줄을 양이라고 하는데, 신분에 따라 양에 표시되는 금줄의 개수가 달라졌다. 금줄의 개수가 많을수록 품계가
높아졌으며 줄이 하나도 없으면 1량관 네 가닥이면 5량관을 의미한다.


[종묘]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향 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왕실의 근본이자 정통성의 기반이었다. 국가와 왕실의 중요한 사건은 모두 종묘에 고했으며, 국왕은 종묘제향을 올려 선왕의 공덕을 기리며 왕조의 번영과 영속을 기원함으로써 유교적 통치 이념을 백성에게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승하고자 하였다. 

종묘는 17세기에 중건된 이래 온전하게 유지된 유교적 왕실 사당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 종묘제례와 제례악은 2001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보물 종묘개수도감의궤/종묘의궤


[왕의 장례식, 국장]

국장은 3년간 70여 가지의 절차에 따라 치러졌기 때문에 여러 개의 임시 관청(도감)이 설치되어 업무를 분담하였다. 빈전도감은 승하한 후 시신을 수습하여 관(재궁梓宮)에 모시는 일을, 산릉도감은 장지를 물색하여 능을 조성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국장도감은 새 왕의 즉위와 돌아가신 왕의 발인을, 혼전도감은 장례 후 혼전에 신주를 모시고 삼년상을 치르는 일을 맡았다. 국장은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왕실의례를 드높인 의장]

궁궐 안에서 조회, 잔치 등을 일거나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이 궁궐 밖을 행차할 때는 행사의 격을 높이고 주인공의 위업을 드러내기 위하여 가마와 함께 다양한 상징물을 사용하였다. 왕의 가마인연은 용, 기린, 백택 등 상서로운 동물들로 치장하였다. 의례용 깃발인 의장기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자연물, 동물 또는 문자를 그려 넣어 왕의 훌륭한 통치를 나타냈다. 창, 도끼, 칼과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의장물 군사적 힘과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였고, 신선이 사용한다는 선, 산 모양의 의장물은 행차에 신성함을 더하였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