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2023. 5. 2. 05:18바롱이의 쪽지/전라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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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은 임진왜란때의 해전 상황,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물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진남관 내에 세워진 전시관이다.

임란유물전시관에는 호좌수영지(1847년간), 호남읍지(1871년간) 등의 자료를 근거로 제작된 전라좌수영성의 축소모형이 상설 전시되어 있는데, 이 모형은 축척 1/200의 크기로 축소 제작된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성곽형태와 성벽, 남문, 동문, 성내 관아 및 민가, 포루, 해자, 연못 등을 배치하여 좌수영성의 실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유물 전시관안에는 거북선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꾸며진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 거북선 내부에서 노를 젓고, 포를 쏘고, 숙식을 해결하는 수군들의 생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외에도,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전라좌수영의 남문을 비롯한 여러 부속건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등 진남관 일대의 옛모습을 알 수 있는 희귀 사진들과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철쇄방비시설의 모형 등도 전시되어 있고 국보 제76호인 임진일기(난중일기), 충무공의 서간첩 등의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진남관]

진남관은 조선시대 이순신장군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으로 사용하던 곳에 선조 32년1599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이시언李時彦이 건립한 건물이다. 진남관은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鎭海樓터에 세운 성의 중심 건축물로서 숙종 42년1716에 화재로 없어진 것을 숙종 44년 1718 이제면 전라좌수사가 다시 세웠다. 1959년 5월 30일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다가 그 중요성과 가치가 인정되어 2001년 4월 17일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진남관의 건축규모와 특징]

진남관의 정면길이는 54.5m 높이는 14m, 넓이는 748㎡, 기둥은 68개이며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단층목조 건물로 지방관아地方官衙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축물이다. 진남관은 돌을 다듬어 단정하게 쌓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운 뒤 벽체 없이 팔작지붕을 얹었으며, 내부 공간을 넓히기 위해 건물 좌우의 기둥을 뒤로 옮겨 공간의 효율성을 살렸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모든 부재들이 노출된 연등천장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지붕마루와 추녀마루는 회반죽을 발라 마무리하였다. 18세기 초에 건립됐지만 역사적 의의와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진남관의 용도]

'남쪽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 객사로 건립되었다. 객사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와 궐패闕牌를 모셔 놓고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 또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임금에게 절을 올리는 ‘향궐망배向闕望拜’의식으로 임금을 가까이 모시듯 선정을 베풀것을 다짐하던 장소이다. 성안의 중요한 위치에 관아와 함께 세워지던 중심 건물이다. 진남관은 외국의 사신과 중앙으로부터 왕의 명을 받들고 내려온 대신을 접대하는 건물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라좌수영 全羅左水營, 여수麗水]

여수가 전라좌수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479년성종 10 순천順天 내례포의 수군만호영(水軍萬戶營)을 설치하면서 기존에 있던 해남의 수영을 '전라우수영', 순천(지금의 여수)의 신설 수영을 '전라좌도수영' 이라고 하면서부터다.

1593년부터 1601년까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본영本營이기도 했던 여수는 조선시대 400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서 구국의 성지로 전승의 사명을 다한 곳이며, 지금까지 이순신장군의 기백과 충정 정신이 도도히 살아 숨쉬는 역사의 고장이다.


[진남관의 상량문]

본래 목조 건축물을 짓거나 보수 시 공사에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상량문을 봉안하는 의식인 상량식을 치른다. 건축물의 완성 단계에서 대들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에 최상부 부재인 마룻대를 올리고 거기에 공사와 관련된 기록과 축원문이 적힌 삼문을 봉안하는 의식이다. 현대에도 상향식을 하기도 하니 그 방법과 형태가 때에 따라 다르다. 

진남관을 건축하고 보수했던 과정에서도 상량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2018년 9월 11일 진남관 제공사 추진 중 3점의 상량함이 진남관 어간의 경중도리 하부 및 잔여부분에서 수습되었고 13일 언론에 공개되었다. 수습된 상황함에는 목판 1경, 철봉함 1점, 상량문 1장 총 3점의 상량기록물이 발견되었으며 광우3년 진남관 부분 해체보수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발견된 상량함 내 상량문에는 진남관의 연혁과 보수내용 등이 상세히 담겨 있어 진남관이 가진 역사적 배경과 가치를 재조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대 건축사까지 아울러 연구할 수 있어 문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의미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지류상량문 1965]

철봉함에서 발견된 상량문이다. 1965년 김상기가 작성하였으며 전라좌수영 요충지로써 진남관의 연혁과 중요성 1599년 건립, 1716년 화재로 인한 소실, 1718년 중건 1954년 응급수리, 1963년 보물 제304호로 지정 등 전남 걸어온 역사적 사건과 배경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목판상량문 1718]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객사로 선조32(1599)년에 지었다 불에 타 숙종44년(1717년~1778년) 이제면 절도사 재임 중 중건되었다. 상량의 목판에는 건축의 일시는 물론 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발견된 목판에 새겨진 '숭정기원후 구십일년 무술중하'라는 연호로 보아 1718년 진남관의 재건 일시를 알 수 있으며 재건한 이유, 참여 인력 등 당시 재건에 따른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진남관 배경을 이해하는데 귀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류상량문 1899]

1898년부터 1899년 1년간 진행한 진남관의 보수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상량문이다. 상량문에는 진남관을 중수한 이유와 중수 시 편액의 위치 조정, 들보의 보수 내용 등 보수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겨 있고, 중수공사에 참여했던 인력과 그들의 역할까지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해전사 출진도]

[1차출진 옥포(浦), 합포(合浦), 적진포(赤珍浦) 해전(5. 4~5. 9)]

임진년 4월 15일 공은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왜선 500여척의 대함대가 침입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이곳 여수 진남관의 진해루에서 작전회의를 가진 후 출전키로 결의, 5월 4일 새벽 2시에 경상도에 침략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출진하였다.

5월 7일 옥포만에서 적선과 처음 마주친 전라좌수영군은 26척의 왜선을 격침하고 세 명의 포로를 되찾는 등 첫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이어 공의 좌수영수군은 합포에서 왜선 5척을 무찌른 후 다음날에는 적진포스에서 적선 11척을 부수었다. 공은 1차 출전의 공로로 가선대부종2품에 오르게 되었다.

[2차출진 사천(河川), 당포(唐浦), 당항포(唐項浦), 율포(栗浦) 해전(5. 29~6. 10)]

일본군 함대는 1차 해전에서의 많은 피해에도 불구하고 거제도 서쪽으로 진출하고 있었으며 5월 29일에는 이미 사천시 곤양 등지의 해안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적의 누각대선 12척을 발견한 좌수영수군은 적을 유도하여 외양에서 싸울 계획을 세우고 뒤쫓아온 적선 12척을 모두 격침시켜버렸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충무공 이순신은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는 부상을 당했다. 특히 이 싸움에서 여수 선소에서 건조된 거북선이 처음으로 참전했다.

이어 좌수영수군은 6월 2일 당포에서 적선 1척을 격침시키고 6월 4일에는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이끄는 전함 25척과 합세한 후 6월 5일에는 충무공의 지휘아래 당항포에서 왜선 26척을 수장시키고 다음날인 7일에는 율포에서 왜선 7척을 격침시켰다. 공은 당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공훈으로 자헌대부로 승진되었다.

[3차출진 한산(閑山), 안골포(安骨浦) 해전(7. 6~7. 13)]

연이어 좌수영수군에게 패한 일본군은 7월 상순에 견내량에 집결하여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공은 연합함대 56척을 이끌고 다시 출전하여 7월 8일 견내량에서 적함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 학익진을 펴적 66척을 단숨에 침몰시키고 조선군 포로 7명을 구출하였다. 이어 7월 10일에는 다시 안골포의 적함대 42척과 접전하여 이들을 한산도 수로에서 모두 격침시켰다. 이 한산도 대첩으로 조선수군은 남해안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으며 일본군의 수륙 양면 북진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4차출진 부산(釜山浦) 해전(8.24~9.2)]

공은 부산포에 숨어버린 일본군 함대의 본거지를 공략하여 본국과의 연락을 단절시키려는 전략으로 9월 1일 일본군전함 430척이 집결되어 있는 부산포로 출진하였으나 일본군은 충무공과 좌수영수군이 두려워 바다에서 싸우려 하지 않고 육지로 올라가 육군과 합세해 저항하였다. 이에 충무공과 좌수영수군은 결사적으로 돌격하여 빈 왜선 100여척을 불살라 버리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 해전을 부산포해전이라고 한다. 이곳 여수에 좌수영 본영이 설치되어 있는 동안 좌수영수군 적함 400여척을 격침시키고 42척을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여수와 거북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2개월 전인 1591 년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 장군은 여수 선소에서 거북선을 건조하고 갖가지 병기를 시험했다. 장군은 마치 일본군의 침입을 예상이라도 한 듯 대비했다.

“일찍 아침을 먹고 배를 타고 소포로 나가 쇠사슬을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며 종일 기둥나무 세우는 것을 보았다. 곁들여 거북선에서 대포 쏘는 것을 시험하였다.” (<난중일기> 임진년 3월 27일)


[거북선 龟船]

이충무공전서에 의하면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길이와 너비 등 치수는 통제영 거북선과 거의 같으나, 다만 거북머리(귀두) 아래에 귀신머리를
새겼다. 거북 잔등 덮개판에는 거북무늬를 그렸고, 좌우에 문이 2개씩 있다. 거북머리 아래에 대포구멍이 2개, 뱃전좌우에 대포구멍 1개씩
있다. 뱃전 난간 좌우에 대포구멍이 10개씩, 덮개판 좌우에 대포구멍이 6개씩, 좌우 노는 8개씩이다' 라고 한다.


[해전전술]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해전에서 다양한 진형을 구사했다. 모든 병법과 전술에 능했고 전투지형과 특성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전투 성향에 맞는 전법을 택하는 유연성까지 갖춘 뛰어난 지휘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이순신을 대표하는 전투 진형은 첨자찰진, 일자진, 학익진 등이 있다.


[철쇄방비시설]

이 방비시설은 전라좌수영의 동쪽 소포(지금의 종포에서) 건너편 돌산도까지 쇠사슬을 걸쳐 매어 적선의 야간통행을 막는 시설이었다. 우선 긴 쇠사슬의 중간중간에 큰 나무를 꿰어 부표로 사용하고, 이 쇠사슬을 바다에 가로질러 설치한 후 이것이 조류에 떠내려 가지 못하도록 수면에 큰 돌을 달아매어 닻으로 사용했다. 「난중일기」에 '돌은 신생포(지금의 율촌)에서 떠왔고, 나무는 두산도(지금의 돌산)에서 베어 왔으며, 공은 거의 날마다 이 쇠사슬을 건너 매는 일을 감독했다'고 적혀있다.


[노량해전]

노량해전은 선조 311598년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이틀간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 도독인 진린陳瑛의 연합군이 노량 앞바다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해전이다. 임진왜란 7년의 전쟁 중 바다에서의 마지막 전투로서 200여척의 연합군이 2배가 넘는 500여척의 일본군을 격퇴하고, 우리 바다 밖으로 밀어낸 쾌거를 거두었다. 하지만 관음포로 도주하는 마지막 일본군을 추격하던 이순신이 일본군의 총에 맞아 전사한 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

이순신은 7년간의 전쟁동안 겪은 모든 일들을 틈나는 대로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겼다. 날짜마다 간지와 날씨도 빠트리지 않고 적었으며 그 내용이 실로 방대하다. 수군을 통제하고 지휘한 내용, 군영 내 일어난 사건사고,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등 폭넓은 분야의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개인적인 일상생활과 친척과의 왕래 교섭까지도 모두 기록하였다. 일기 7 책과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 총 9권이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었으며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

임명장, 난중일기, 서간첩, 좌수영수군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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