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자랑 100가지, 것대산 봉수

2023. 5. 10. 05:00청주자랑 100가지/역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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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의 초고속 통신체계"

[것대산 봉수]

문화재자료 26호, 청주 것대산 봉수는 청주의 옛 길인 상봉재 남쪽에 자리한다. 봉수에 오르면 와우산에 가려 읍성 자리가 보이지 않으나 대부분 지역은 전망이 뛰어나다. 남쪽으로 문의의 옥녀봉과 양성산 앞쪽으로 소이산이 보이고, 북으로는 뾰족하게 솟은 진천 소을산이 보인다. 문의 소이산 봉수와는 14km, 진천 소을산 봉수와 는 23km의 거리이다.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산107-2

출처:청주시


"청주 것대산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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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청주 것대산 봉수 (淸州 巨叱大山 烽燧)]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경남 남해의 금산 봉수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중간 길목에 자리잡은 이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문의 소이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 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 봉수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서에는 거질대산봉수라고 적혀있다.

봉수대가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봉수제도가 마련된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조선 고종 31년(1895) 봉수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그 기능을 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긴 타원모양으로, 둘레에 보호벽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무덤 1기가 봉수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성의 주변을 살펴 사태를 알리는 통신시설인 봉돈은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없다. 

출처:문화재청


[청주 것대산 봉수]

봉수는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을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이다. 청주 것대산 봉수는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노선 중 문의 소이산과 진천 소이산 사이를 잇는 봉수이다. 조선시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봉군 25명, 봉군보 75명이 소속되어 봉수를 운영하였다.

것대산 봉수는 조선 영조 때 일어난 이인좌의 난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반란을 일으켜 청주성을 점령한 이인좌는 한양으로 소식이 전해지지 않도록 병사를 보내 봉수를 점령하고 봉수지기였던 목 노인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를 본 목 노인의 딸 선이 낭자가 대신 봉수대에 불을 지피려 하였지만, 그녀마저 반란군에게 목숨을 잃었고 결국 그녀의 정혼자 백룡 총각이 반란군과 격투 끝에 불을 지펴 한양으로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청주 것대산 봉수는 1896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졌다. 이후 문화재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09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청주 것대산 봉수"


"청주 것대산 봉수"


"청주 것대산 봉수"


"청주 것대산 봉수에서 바라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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