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자랑 100가지, 현암사

2023. 6. 4. 04:36청주자랑 100가지/불교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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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달린 천년고찰 현암사"

[청주 구룡산 현암사]

대청댐이 내려다보이는 북서쪽 산기슭에 매달리듯 지은 절이다. 현암사의 뒷산에는 옛 성터가 남아있으며, 현암사에서 바라보는 대청댐과 대청호의 전경이 뛰어나다. 사찰 앞에 커다란 호수가 생길 것이라는 전설과 임진왜란 때 이여송이 구룡산 산줄기의 기상을 끊기 위해 사찰을 없애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하석리

출처:청주시


"청주자랑 100가지, 청주 구룡산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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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교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 내려 현암사까지 3.9km 정도 걸어간다. 현암사 버스 정류장에 문의와 신탄진으로 오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다. 버스 정류장 건너로 현암사를 오르는 계단과 현암사 200m 알림판이 보인다.


"대청댐과 대청호"


"나무와 돌탑"

나무 밑동과 혹등에도 돌이 얹어져 있다. 소원을 빌며 돌은 얹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엿보인다.


계단 끝에 현암사 요사채가 얼핏 보인다. 우측 길로 조금 걷는다. 부처님오신날이 멀지 않아 연등이 달려 있다. 땔감용 나무가 쌓여있는 길을 따라가면 석등과 오층석탑이 나온다. 석탑 앞 나무 사이로 대청호가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다.


[청주 구룡산 현암사]

대청댐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구릉산(九龍山) 혹은 현도산(賢都山)이라 불리는 대청댐 북쪽 산의 정상부 남쪽 암벽에 의지하여 세워진 고찰(古制)이다.

창건연대를 알려주는 문헌기록은 없고 전설(博說)로 전해지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백제 전지왕 3년(407)에 선경대사(仙境大師)가 세웠다고 하고, 또 다른 설에 따르면 신라 성덕왕대(聖德王代, 702~736)에 김선경대사(金仙境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또는 고구려의 어느 스님이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모두 전설에 불과할 뿐이다.

현암사는 정사(正史)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시대의 각종 지리서에는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 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조선초의 기록에는 견불사(見佛寺)라 하였다가 조선후기로 가면서 현사(懸寺)라는 별칭을 부기(附記)하고 있으며, 지금은 현암사(懸岩寺)라고 부른다. 현사(懸寺)는 이 절의 속칭인 "다람절"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서 후에 현암사(懸岩寺)가 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써 현암사는 견불사(見佛寺)-현사(懸寺)-현암사(懸岩寺)로 절이름이 변천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조선초부터 절의 명맥이 이어져 온 사실도 확인시켜 준다.

현암사는 구룡산을 배경으로 대청호반을 내려다 보고 있는 절경을 이루었는데 옛날에도 문의팔경(文義八景) 가운데 하나로 꼽히었으니 "현사모종(懸寺暮鍾)" 혹은 "현사만종(懸寺晩鍾)" 이라 하였다. 현암사의 현재 건물은 1988년에 중건된 정면 3간, 측면 2간의 대웅전과 역시 정면 3간, 측면 2간의 용화전(龍華殿), 그리고 194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각각 건립된 산신각(山神閣)과 요사(寮舍)가 있는데 요사는 콘크리트 건물로 2층은 종루(鐘樓)로 되어 최근에 제작한 대형동종(大形銅鐘)이 걸려있다. 유물로는 용화전 안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과 산신각 뒤편에 있는 석종형 부도(石鐘形浮屠)가 있으며, 사역내(寺易內)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조에 이르는 각종 토기편, 자기편과 와편이 다량으로 산재되어 있다.

출처:청주시

용화전과 석조여래좌상, 대웅보전


"삼성각"


"대청호"


"소나무"


현암사 경내를 둘러보고 요사채 앞 의자에 앉으니 맞아도 기분 좋을 정도로 비가 살짝 내린다. 눈은 물끄러미 앞을 바라본다. 산과 호수의 푸름이 거리를 두고 다르게 펼쳐진다. 마음이 산뜻해진다.

대웅보전 스님의 불경 소리가 살며시 귓전을 맴돈다. 대웅보전 예불이 아직 끝나지 않음을 알아차리며 자연의 흥취를 즐기던 마음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공양간을 찾는다. 공양간 옆 식탁에 식사 공양할 음식과 식기들이 놓여 있다. 빛바랜 작은 의자들도 보인다.


들기름에 볶은 명이나물과 고수, 상추, 부추 등을 갖은양념에 무친 채소 겉절이가 눈에 띈다.


11시 20분 정도 되니 공양간 옆 식탁에 식사 공양할 음식들이 차려진다. 대접에 밑반찬과 쌀밥을 담고 고추장도 한 숟가락 떠 밥 위에 얹는다. 작은 그릇에 물김치를 담고 있는 동안 여 불자님이 대접에 미역국을 넉넉하게 담아 주시며 비가 오니 요사채 방에서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음식 담은 그릇은 풍경을 즐겼던 요사채 앞 식탁에 놓인다. 식욕에 비와 풍경을 즐기려는 욕심때문이다. 비움은 없고 더함만 늘어난다.


식사 공양(대접에 오이소박이, 김치, 상추·고수·부추 등에 갖은 양념한 채소 겉절이, 채소 무침, 들기름에 볶은 명이 나물볶음 등 밑반찬과 따뜻한 쌀밥을 담고 빨간색이 도드라지는 고추장을 떠 하얀 밥 위에 얹는다. 작은 그릇엔 물김치를 담고 또 다른 대접엔 미역국이 담겨 있다.

눈앞의 풍경을 한번 바라보고 물김치를 담은 작은 그릇을 집어 들고 쭉 들이킨다. 마침맞게 익은 물김치 국물이 풍경만큼 상쾌하다. 따라온 채소 건더기는 풋풋함을 막 벗어나고 있다. 

젓가락으로 바꿔 들고 큰 대접에 담은 밑반찬들을 조금씩 맛본다. 상추, 부추, 고수, 배추, 오이, 양파, 파, 명이나물 등 채소와 나물에 들기름, 깨, 고춧가루, 소금 등 양념이 더해졌다. 다양한 식자재에 다양한 양념이 보태졌지만, 음식들은 제각각의 맛과 향, 식감을 잃지 않았다. 간도 알맞다.

다시 숟가락으로 바꿔 잡은 손은 고추장, 밥, 밑반찬이 담긴 대접을 뒤버무린다. 대접속 제각각 색을 내던 먹거리들은 푸름을 빼곤 조금씩 먹음직스러운 빨간 고추장 빛을 닮아간다. 빨간빛이 많아졌지만, 푸른빛은 한결같고 주황과 하얀색도 본연의 색을 조금씩 보여준다.

크게 한술 떠 입에 넣는다. 여러 식자재의 질감과 맛, 향이 한데 어우러지며 입안이 풍성해진다. 밥, 밑반찬, 고추장이 뒤섞이며 제3의 맛을 만들어 낸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비빔밥은 2개 이상의 문화가 같은 공간에서 충돌,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화'를 몇 번 더 맛본다. 서로 다른 문화들이 슬며시 느껴지기도 하다가 새로운 문화로 포개진다.

새로운 문화가 살짝 퍽퍽해진다. 물김치를 한술 떠서 달랜 후 미역국을 대접째 들고 들이킨다. 국물이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들기름 향이 코를 먼저 자극하고 뒤이어 구뜰하고 삼삼한 국물이 뒤를 받친다. 퍽퍽함은 잊히고 한동안 미역국에 숟가락질은 빠져든다. 바다향과 맛을 품은 미역 줄기는 들기름과 채수를 만나 본연의 졸깃함은 간직한 채 부드러워지며 먹는 이의 어금니를 기껍게 해준다.

그릇에 담은 음식들을 싹 비운다.  더함은 없어지고 빈 그릇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나는 산과 호수와 하나가 된다. 식욕이 채워지니 그제야 풍경이 보인다.)


식사 공양 후 앵두나무에서 좀더 붉은빛을 띠는 앵두 두 알을 따서 입에 넣는다. 눈으로 덜 익음을 알아차리고도 먹은 앵두는 눈맛의 예감대로 시큼하다. 경험하고 나서야 다르지 않음을 깨친다.


공양간 일 도우시던 여 불자님 세분은 택시를 불러 문의로 가신다. 현암사 불공드리러 오신 여 불자님 두 분과 함께 미리 시간을 봐두었던 12:50분 문의발 신탄진행 43번 미니버스를 타고 신탄진역에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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